'1승'에 터진 황선홍의 눈물…사령탑이 짊어진 무게 [임성일의 맥]
황선홍 대전 감독, 3연패 탈출 후 팬들 앞 눈물
통산 200승 베테랑 지도자가 전한 1승의 간절함
- 임성일 스포츠전문기자
(서울=뉴스1) 임성일 스포츠전문기자 = 황선홍 감독(58)은 평생을 롤러코스터에서 사는 축구인이다. 2002 한일 월드컵을 끝으로 마무리한 현역 생활 내내 '영웅'과 '역적'을 오갔고, 2008년 '젊은 기수의 선봉장'으로 시작한 지도자 삶도 팬들의 환호와 비난 사이에서 줄을 탔다.
어느덧 감독으로도 고참인 그가, 어지간한 일에는 심장이 반응조차 하지 않을 것 같은 베테랑이 무수히 많이 겪었을 '1승'을 거둔 뒤 눈물을 훔쳤다. 승리한 날은 지도자 황선홍이 'K리그 감독 통산 200번째 승리'라는 이정표를 세운 날이다. 기록이 기뻐 흘린 눈물은 아니었을 것이다. 벼랑 끝에서 연패를 끊어내야 했던 사령탑은 그만큼 승리가 간절했다.
지난 1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 대전하나시티즌의 K리그1 8라운드가 화제다. 창단 후 최초인 개막 4연승을 포함 7경기 무패(6승1무)라는 기대 이상의 성적으로 선두를 달리던 FC서울과 2026 시즌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라는 세간의 평가와 달리 11위까지 추락(1승3무3패)한 대전의 만남이었다.
아무래도 최근 '무득점 3연패' 깊은 부진에 빠진 대전보다는 전북과 울산 등 강호들까지 잡아내며 기세등등한 서울의 우세를 점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결과는 대전의 1-0 승리였다.
대전은 전반 15분 유강현의 선제골로 잡은 리드를 끝까지 유지, 연패 터널을 빠져나왔다. 점유율은 서울이 높았고 경기 후반부로 갈수록 서울 쪽에 좋은 장면이 많았으나 대전 선수들 모두 집중력을 잃지 않고 승리를 지켜냈다. 몸 던지는 투혼도 마다 않았다.
만약 패했다면 최하위까지 떨어질 수도 있던 위기를 벗어난 대전 선수들은 원정 응원석 앞으로 가 팬들과 함께 승리의 기쁨을 나눴다.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뒤에서 지켜보던 리더의 얼굴은 복잡했다.
무리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있던 황선홍 감독은, 팬들의 연호와 주장 이순민의 손에 이끌려 서포터석 앞으로 나아간 뒤 90도로 인사했다. 어색한 동작으로 팬들과 승리의 세리머니를 펼친 그는 다시 깊게 고개 숙인 후 빠르게 등을 돌렸다. 예상치 못한 눈물이었다.
산전수전 다 겪고 우여곡절로 가득한 황선홍이다. 대학생 때부터 월드컵 본선(1990 이탈리아)을 밟은 화려한 스타였으나 때때로 '국민 욕받이'였다.
대표팀 선봉장으로 나선 A매치만 103회고 총 50골을 넣었다. 차범근(58골) 손흥민(54골 진행중)에 이어 통산 3위 대기록이나 사람들은 넣은 골보다 놓친 골을 더 오래 기억했다. 그래도 "그게 공격수의 숙명"이라던 사람이다.
지도자로도 음지와 양지를 오갔다. 마흔 줄에 접어들던 2008년 프로 첫 사령탑(부산)이 된 그는, 2013년 포항에서 시즌 더블(정규리그+FA컵)을 달성하며 '스타 출신 지도자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편견을 깨뜨렸다. 외국인 선수 1명 없이 국내 선수들로만 대업을 달성한 그에게는 '황선대원군(쇄국정책 흥선대원군과 빗대)'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포항 다음 행선지였던 FC서울 생활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2년도 채우지 못한 채 물러났다. 대표팀 사령탑도 마찬가지다. 2022 항저우 AG에서 3연패를 견인했을 땐 하늘을 날았으나 2024년 4월, 40년 만의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라는 악몽과 함께 나락으로 떨어졌다.
조롱에 가까운 비난을 들으면서도 "실패와 도전이 두렵다면 자격 없는 지도자"라던 황선홍은 주위 만류에도 강등 위기에 처한 대전의 사령탑으로 부임해 재기에 성공했고 지난 시즌에는 클럽 최고 성적인 준우승을 이끌었다.
그렇게 많은 일을 겪은 황 감독인데 정규리그 초반 1경기 승리에 눈물을 뿌렸다. 애가 탔을 속이다. 모두가 우승 후보로 대전을 가리키고 있는 시즌 출발이 엉키고 꼬였다. 실망하는 팬들은 물론이고 의기소침해진 선수와 스태프를 바라보는 사령탑의 심경은 헤아리기도 어렵다.
FC서울전 승리로 K리그 감독 통산 200승 고지를 밟은 황선홍 감독은 "여기까지 오는데 많은 팀, 많은 선수, 많은 스태프가 도움을 줬다. 200승을 완성해준 대전 선수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뒤 "200승을 하는 동안 단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감독의 삶이 그렇다. 멈추지 않고 한발 한발 계속 전진할 것"이라고 새내기 지도자처럼 다시 다짐했다.
현역 시절 지긋지긋한 긴장감에서 벗어나고파 지도자의 길을 택하지 않겠다는 스포츠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축구뿐 아니라 모든 종목들이 대동소이하다.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으나, 아쉬워하는 현장의 목소리가 크다.
뒤에서 젊잖게 훈수 두는 이들만 많아지고 직접 흙 묻히고 함께 땀 흘리는 이들은 줄어들고 있다. 좋은 지도자가 없으면 좋은 선수를 키울 수 없는데 '지도자 환경'은 점점 열악해지고 있으니 악순환이 우려된다. 1승의 가치를 선수들과 팬들에게 알려주는 좋은 감독들이 많이 나와야한다.
선수 시절 국가대표를 지냈고 K리그 감독도 역임한 한 축구인은 "그 어떤 지도자도 계속 성공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끝은 대부분 비슷하다. 아름다운 이별? 어렵다"면서 "어찌 보면 감독은 해피엔딩이 없는 직업"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타들어 갈 것을 알면서도 승부의 세계로 몸 던지는 이들에게, 가뜩이나 외로운데 좀처럼 좋은 소리 듣지 못하는 모든 지도자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lastuncl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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