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경건함? '검은 물결' 아자디는 원정팀 지옥다웠다
- 김도용 기자

(테헤란(이란)=뉴스1) 김도용 기자 = 종교적 추모일에 대한 경건함은 없었다. '원정팀의 지옥'이라 불리는 아자디 스타디움의 분위기는 익히 알려진 대로 열광적이었고 위압적이었다.
한국 축구대표팀이 11일 오후(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의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이란과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A조 4차전을 치렀다.
경기 시작 3시간 정도를 앞두고 취재진을 태운 버스가 아자디 스타디움으로 향했다. 킥오프까지는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았지만 경기장 주변에는 이미 많은 홈팬들이 자리했다. 추모 행사를 위해 검정색 옷을 입은 홈팬들은 취재진 버스 주변으로 몰려들어 엄지를 치켜세우거나 가운데 손가락을 내밀었다.
이란 팬들의 격한 환영을 뒤로하고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자 종교적인 추모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검정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경기장 한편에 자리했고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추모 깃발을 들고 경기장 주변을 행진했다.
이날은 이슬람 시아파의 추모일인 '타슈아'였다. 타슈아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손자 압바스 이븐 알리를 추모하는 날이다. 이 때문에 테헤란 거리 곳곳에는 애도의 의미인 검은 깃발이 걸려있다. 병원과 호텔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상점들이 문을 닫는 중대한 날이다.
추모행사는 경기를 한 시간 앞두고까지 이어졌다. 추모 행사 도중 조금씩 들어서던 관중은 행사가 끝남과 동시에 물밀 듯이 경기장 안으로 쏟아졌다. 검은 옷을 입은 이란 팬들로 인해 관중석은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관중들이 불어나면서 이란 홈팬들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도타기를 하면서 경기장 분위기를 끌어 올렸다. 방금 전까지 추모하던 분위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경기장 분위기는 빨리 변했다. 전날 이란 기자들이 예상했던 '조용하고 경건한' 분위기는 없었다.
이후 한국 선수들이 몸을 풀기 위해 경기장에 입장하자 홈팬들은 야유를 퍼부었다. 이어 이란 선수들이 경기장에 들어오자 환호를 보내면서 힘을 불어 넣었다. 이란은 그들의 응원가를 부르면서 자신들의 선수들을 응원했다. 아자디 스타디움은 타슈아와 상관이 없는 곳이 됐다.
경기가 시작되고 난 뒤 관중석은 검정색으로 가득했다. 한국 원정팬들을 위해 내준 좌석을 제외하고는 이란 홈팬들이 가득했다. 검정색으로 뒤덮인 경기장은 그야말로 지옥 같았다.
이란 팬들은 자발적으로 나선 몇몇 응원 단장을 중심으로 자국 선수들을 응원했다. 전반 25분 이란이 선제골을 넣자 경기장은 환호로 가득했다. 이란 팬들은 웃음을 가득 담은 얼굴로 한국 취재진을 향해 주먹 감자를 날렸다.
이란이 리드를 잡으면서 아자디 스타디움의 열기는 계속됐다. 이청용의 말대로 90분 동안 아자디 스타디움에는 큰 응원소리와 담배 연기로 가득 찼다.
경기가 1-0 이란의 승리로 끝나자 이란 관중들은 기쁨을 만끽하면서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관중들이 빠져나간 뒤 경기장은 고요해졌지만 그들이 채워놓은 열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왜 이곳이 '원정팀들의 무덤' '원정팀의 지옥'으로 통하는지, 5시간의 체험으로도 어느 정도 감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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