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일의 맥] ‘경기’보다 ‘중계’를 더 기다리는 한국 축구
- 임성일 기자
(서울=뉴스1스포츠) 임성일 기자 = 이영표를 비롯해 안정환, 송종국, 박지성 등 2002월드컵 멤버들이 이제는 해설위원이 됐다. 브라질 월드컵 축구 경기보다 그들이 진행할 방송중계가 더 기대된다는 팬들의 반응은 왠지 씁쓸하다. ⓒ News1 TV를 비롯한 각종 매체에 축구 선수들이 수시로 등장하는 것을 보니 바야흐로 월드컵 시즌이다. 4년 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그 계절이 돌아왔다. 그런데 지금이 2002년인지 2014년인지 헷갈린다. 브라질 월드컵에 ‘선수’로 출전할 이들보다 다른 ‘선수’들이 더 많이 조명되고 있는 까닭이다. 안정환, 송종국, 이영표, 김남일, 차두리 그리고 박지성.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만들어낸 주역들이다. 그리고 동시에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해설위원(혹은 방송위원)으로 참가하는 명단이기도 하다. 팬들에게는 ‘영원한 현역’ 같은 느낌이나 세월은 벌써 그렇게 흘렀고, 강산도 바꾸는 시간 속에서 ‘필드의 피터팬’들은 이제 축구공 대신 마이크를 잡고 있다. 이 흥미로운 변화를 팬들과 함께 바라보다 고개를 갸웃하게 됐다. 팬들의 시선은 살아있는 2014년 필드로 되돌아오지 않고 2002년의 필드에서 멈춰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올해 월드컵은 경기보다 중계가 더 기대된다.” 한 포털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차두리 해설위원의 기고 글에 어느 누리꾼이 남긴 댓글이다. 그 네티즌만의 특별한 반응은 아니다. 적잖은 축구 팬들이 비슷한 속내를 전하고 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현재 대표팀이 월드컵 본선이 임박해서까지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는 답답함과 맞물려 이런 반응은 점점 커지고 있다. 부추기고 있는 영향도 배제할 수 없다. 지상파 방송국들은 홍명보호 멤버들보다 자신들이 섭외한 2002월드컵 멤버 해설진을 부각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마 23명의 브라질 월드컵 최종 엔트리는 몰라도 해설자 라인업을 모르는 팬들은 없을 것이다. 2014년 월드컵을 기다리면서 2002년을 사는 맛은 썩 좋지 않다. 돌이켜 흐뭇할 수 있는 과거가 있다는 것은 살아가는데 분명 큰 동력이다. 인간은 추억의 힘으로 사는 동물이다. 하지만 자꾸 과거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결국 현실이 썩 만족스럽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아직도 2002월드컵 틀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은 한국 축구의 성장이 그만큼 더디다는 뜻이다. 인지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번 브라질 월드컵은 2002월드컵 멤버가 선수로 출전하지 않는 첫 번째 월드컵이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만해도 '캡틴' 박지성을 비롯해 안정환, 김남일, 이영표, 차두리, 이운재 등 ‘피터팬’들이 현실에서 함께 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없다. 팬들은 아직 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모습이다. 2002월드컵 이후 가장 분위기가 살아나지 않는다는 평가와 2002월드컵 멤버들의 부재는 무관하지 않다. 필드에는 없지만 브라운관에는 아직 그들이 있기에, 월드컵보다 방송 중계를 더 기다린다는 이야기는 마냥 빈말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전 세계가 열광하는 생생한 월드컵이 라이브로 다가오고 있다. 대한민국 축구 팬들만 과거의 추억 앨범만 붙들고 ‘그 때가 좋았지’를 외치고 있는 모습이라 왠지 씁쓸하다. 아마도, 2014년 월드컵 결과에 따라 현실 부정은 더 강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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