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위해 쏘고, 엄마 보며 버텼다'…메달 뒤 빛난 가족의 힘[AG]
봉서린, 출산 후 실력 일취월장…극적 은메달 주인공
강준이, 1·2차 실패 후 관중석에서 엄마 찾아
- 안영준 기자
(나고야=뉴스1) 안영준 기자 = 딸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겠다며 묵묵히 노력해 태극마크를 달고 극적인 은메달을 이끈 사격의 봉서린(33·광주광역시체육회). 앞선 두 번의 실패로 '멘붕'에 빠졌다가 관중석의 어머니를 보고 마음을 다잡은 강준이(18·대한롤러스포츠연맹)까지.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태극전사들이 따낸 값진 메달 뒤에는 든든한 버팀목이 된 '가족의 힘'이 있었다.
'엄마 사수' 봉서린은 지난 28일 일본 아이치현 종합사격장에서 열린 대회 여자 25m 권총 단체전에서 양지인(우리은행), 오예진(IBK기업은행)과 힘을 합쳐 값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봉서린은 2024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수확한 양지인과 오예진 등 쟁쟁한 후배들에 가려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선수다. 하지만 이번 대회 단체전에서는 동생들의 실수를 만회하는 '깜짝 활약'으로 탈락 위기에 놓였던 한국을 은메달까지 끌어올렸다.
봉서린은 2015년 국가대표 후보 선수를 처음 경험했고 2021년 처음 국가대표가 됐지만 여전히 스포트라이트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에게 전환점이 된 것은 출산이었다. 2023년 딸 아윤이를 낳고 어머니가 된 뒤 마음을 더욱 다잡았고, 집중력과 기량도 일취월장했다. 마침내 올해 생애 첫 아시안게임 출전 기회를 잡았고, 어렵게 찾아온 무대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봉서린은 은메달을 목에 건 뒤 "(이)아윤아, 너를 낳고 난 뒤 내가 더 열심히 했고, 그 덕분에 이렇게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딸 수 있었어"라며 울먹였다.
이어 "네가 나중에 커서 나를 꼭 자랑스러운 엄마로 생각해 주면 좋겠다"고 딸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어머니를 보며 무너졌던 마음을 다잡아 극적인 금메달을 일군 아들도 있다.
강준이는 지난 27일 일본 아이치현 도코나메의 아이치 스카이 엑스포홀에서 열린 스케이트보드 남자 스트리트 결선에서 총점 180.85점을 기록, 정상에 올랐다.
과정은 극적이었다. 트릭 세션 1·2차 시기에서 모두 넘어져 0점에 그쳤던 강준이는 벼랑 끝에 몰린 마지막 3차 시기에서 92.40점의 최고점을 기록하며 짜릿한 역전극을 완성했다.
반전의 힘은 관중석에서 나왔다.
강준이는 "2차 시기까지 실패한 뒤 '멘붕' 상태로 출발대에 섰는데, 그때 눈에 엄마가 들어왔고 눈물이 났다. 그러자 마음이 안정됐다"며 "'그동안 해 온 게 있는데 엄마 앞에서 이렇게 무너질 수는 없다. 까짓거 해 보자'는 마음으로 3차 시기에 임했다"고 돌아봤다.
국내에는 제대로 된 스케이트보드 훈련장조차 많지 않다. 강준이는 어머니와 함께 이 도시 저 도시를 오가며 훈련해야 했다. 아들의 꿈을 위해 함께 고생했던 어머니가 있었기에 포기하지 않고 아시안게임 정상까지 오를 수 있었다.
금메달이 확정된 직후에도 강준이는 가장 먼저 관중석의 어머니를 향해 달려갔다.
그는 "이제야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기뻐서 눈물이 났다. 엄마를 부른 뒤 '내가 해냈어'라고 외쳤다"고 회상했다.
자칫 1~3차 시기를 모두 실패하며 허무하게 대회를 마칠 수도 있었던 18세 소년. 무너질 뻔한 마음을 붙잡아 준비한 기량을 모두 쏟아내게 만든 것은 곁에서 묵묵히 응원해 온 어머니였다.
이번 대회에서 처음 정식 종목이 된 테크볼의 '초대 챔피언' 이준석(27)에게도 어머니는 특별한 존재다.
이준석은 지난 20일 일본 나고야 히가시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테크볼 남자 단식 결승에서 알리 자릴 메제르 알렐라야위(이라크)를 2-0(12-11 12-5)으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준석이 생소한 종목인 테크볼에 뛰어들어 아시안게임 챔피언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어머니 윤순정 씨의 지원이 컸다. 윤 씨는 불확실한 꿈을 향해 도전하는 아들을 위해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수백만 원에 달하는 테크볼 전용 특수 테이블을 마련해 줬다.
이번 대회에서도 이준석의 모친은 매 경기 경기장을 찾아 아들을 응원했다. 이준석 역시 승리할 때마다 가장 먼저 어머니에게 달려가 포옹하며 기쁨을 나눴다.
마침내 금메달까지 목에 건 이준석은 "나보다 나를 더 믿어주는 엄마가 있었기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며 자신의 금메달을 어머니의 목에 걸어줬다.
'셔틀콕 여제' 안세영에게도 가족은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안세영은 29일 일본 아이치현 이치노미야 시민체육관에서 열린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에서 일본의 야마구치 아카네를 2-0(21-17 21-9)으로 완파하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평소 좀처럼 표정 변화를 드러내지 않고 코트 위에서도 냉철함을 유지하는 안세영이지만 우승이 확정된 순간만큼은 달랐다.
안세영은 가장 먼저 관중석의 어머니에게 달려가 와락 품에 안겼다. 평소 감정 표현이 크지 않은 딸이 오랜 시간 자신을 묵묵히 뒷바라지한 어머니에게 전한 뜨거운 감사의 표시였다.
수영에서 값진 은메달을 목에 건 박시은(19·강원체육회)은 자신을 응원하는 가족을 떠올리면서도 운동선수의 길을 함께 걷고 있는 남동생부터 챙겼다.
박시은은 지난 24일 일본 도쿄 아쿠아틱스센터에서 열린 여자 평영 200m 결선에서 2분22초69를 기록해 은메달을 차지했다.
경기를 마친 박시은은 "가족들이 나를 위해 늘 희생한다"며 펑펑 눈물을 쏟았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야기보다 남동생 박하은을 꼭 기사에 담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내 동생 박하은이 강원체고 수구 골키퍼로 이번 전국체전에 나서고 청소년 대표에도 뽑혔다"며 "한 시간마다 연락이 와서 귀찮기도 했지만, 누나를 따라 국가대표가 되고 싶어 하는 동생에게 이번 은메달로 자랑스러운 누나가 된 것 같아 기쁘다"고 웃었다.
tr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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