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2시간 벽 깼는데"…한국 마라톤은 26년 동안 '스톱'
[한국 마라톤, 희망의 씨앗은①]
- 권혁준 기자
(서울=뉴스1) 권혁준 기자 = 2026년, 세계 마라톤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지난 4월 26일 열린 런던 마라톤에서 세바스티안 사웨(케냐)가 1시간59분30초에 주파하며 사상 최초로 '2시간 벽'을 깬 것이다. 사웨에 이어 2위인 요미프 케젤차(에티오피아)도 1시간59분41초로 '서브 2'를 기록했다.
훈련 방식의 고도화와 과학에 기반한 식습관, '기술 도핑' 논란이 불거질 정도로 진화한 카본화 등이 집약된 결과물이었다.
반면 이를 바라보는 한국 마라톤은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한때 주요 국제마라톤과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다투며 '마라톤 강국'으로 군림하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을 논하기조차 어려운 수준이 된 지 오래다.
'황금세대'로 불리던 황영조와 이봉주가 은퇴한 이후 한국 마라톤은 급격한 쇠퇴기를 걸었다. 기록으로 보면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정도다. 이렇다 할 반전의 씨앗도 찾지 못하는 실정이다.
현재 남자 마라톤 한국기록은 이봉주가 보유한 2시간7분20초다. 2000년 도쿄 국제마라톤에서 이 기록이 세워진 이래 26년 동안 누구도 이봉주를 넘지 못했다.
이봉주의 한국기록을 넘지 못하면 세계 레벨은 '언감생심'이다. 2000년 당시 이봉주의 기록은 당시 세계기록(2시간5분42초)과 비교하면 1분38초 뒤처진 정도였으나, 지금 기준으론 100위권에도 들지 못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 마라톤은 이봉주의 기록은커녕 2시간10분 안에 들어가는 것도 버겁다. 2024 파리 올림픽에선 기준 기록(남자 2시간 08분 10초, 여자 2시간 26분 50초)에 미달해 남, 여 단 1명도 출전권을 확보하지 못했다.
한국 선수가 마지막으로 2시간10분 이내에 완주한 건 2019년 '특별 귀화 선수'로 케냐에서 국적을 바꿨던 오주한의 2시간8분42초였다.
최근 4년 연속 '연간 한국 최고 기록'을 마크한 박민호(국군체육부대)의 개인 최고 기록은 2023년 서울 마라톤에서 세운 2시간10분13초다. 박민호는 올 3월 서울 마라톤에선 2시간11분05초를 기록했고, 9월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나설 예정이다.
사웨의 세계신기록과 박민호의 올해 기록 간 격차는 무려 11분35초에 달한다. 이봉주가 한국기록을 세울 때와 비교해 10분이나 벌어진 것이다.
아시아에서도 '변방'으로 밀려난 모양새다. 현재 아시아 기록은 엘하산 엘아바시(바레인)의 2시간4분43초고, 일본의 수구루 오사코는 지난해 12월 2시간4분55초, 중국의 펑페이유는 올 3월 2시간5분58초의 자국 신기록을 세웠다.
세계 마라톤이 끝없이 발전하는 사이 한국 마라톤은 제자리걸음, 아니 오히려 퇴보했다.
최근 몇 년 사이 '러닝 열풍'이 불어 러닝 인구가 폭증했지만, '엘리트 마라톤'은 점점 외면받고 있다. '운동부' 자체가 줄어든 데다 운동을 하려는 이들도 상대적으로 덜 힘들고 더 대중적인 종목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40년간 마라톤 꿈나무를 육성해 온 조남홍 배문고 총감독은 "어린 선수들에게 이제 마라톤은 돈은 안 되고 힘만 든 '메리트' 없는 종목으로 여겨진다"면서 "마라톤이 인기가 좋을 땐 1년에 10명씩 신입생이 들어온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많아야 5명이고 보통은 2~3명 정도 들어온다"고 했다.
얼마 되지 않는 선수들조차 종목을 전향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조 감독은 "장거리로 들어왔던 선수들도 점점 거리를 줄여 종목을 전향하려 한다"면서 "5000m, 1만m에서 성과를 내던 선수들이 1500m, 800m에서도 성적이 좋다면 훈련이 힘든 장거리를 굳이 고집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얇아진 선수층은 한국 마라톤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일 수밖에 없다.
육상계 관계자는 "아마추어 러너들의 기록이 점점 향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역시 인구가 많아지면서 돋보이는 선수들이 늘어나는 것"이라면서 "엘리트 육상에서도 단거리가 상대적으로 두각을 드러내는 것도 선수층의 차이가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재룡 한국전력 감독도 "우리나라에선 1년에 완주하는 남자 선수가 100명도 안 되는데, 세계기록이 나온 케냐는 100명이 넘는 선수를 보유한 클럽만 한 도시에 15개 이상"이라며 "아프리카 선수들의 타고난 피지컬도 있지만, 선수 저변 자체가 비교되지 않는다. 선수층이 두꺼우니 좋은 선수가 나올 가능성도 그만큼 높지 않겠나"라고 했다.
25년간 한국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이봉주는 "한국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는 긍지는 크지만, 마냥 좋을 수는 없는 일"이라며 "내 기록이 깨져야 한국 마라톤이 더 발전하는 것인데, 오히려 퇴보하고 있으니 안타깝다"고 했다.
한국 마라톤은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starburyn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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