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한 '당구여제' 확인·새로운 '10대 왕중왕' 등장[월드챔피언십 결산]

김가영·김영원 우승
관중 증가 등 제주 '당구 열풍'도 수확

프로당구 왕중왕전에서 우승한 김가영(왼쪽)과 김영원(PBA 제공)

(제주=뉴스1) 안영준 기자 = 지난 6일부터 15일까지 제주 한라체육관에서 치러진 하나카드 하나캐피탈 제주특별자치도 PBA-LPBA 월드챔피언십 2026이' 특별한 챔피언'을 배출한 뒤 막을 내렸다.

여자부에선 당구여제 김가영(하나카드)의 건재함을 확인했다. 김가영은 15일 한지은(에스와이)와의 결승전서 세트스코어 4-1로 승리, 트로피를 들었다.

2019-20시즌 처음 우승했던 김가영은 이로써 통산 18회 우승이라는 전무한 대업을 달성했다. 남녀 통틀어 최다다. 2위 스롱피아비(우리금융캐피탈)의 기록 9회와 격차가 꽤 크다. 이미 남들이 넘어서기 힘든 기록을 쌓은 상태였는데 이번에 별 하나를 더 추가했다.

이번 대회인 월드챔피언십으로 놓고 보면 더 의미 있다. 6년 전 월드챔피언십이 창설된 이래 한 번도 놓치지 않고 결승전에 진출, 우승 4회 준우승 2회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달성했다.

또한 2023-24시즌부터 왕중왕전 최초의 3연속 우승이자 이 대회가 제주에서 열린 2024년 이래 매년 우승을 기록했다.

왕중왕전 정상을 3년 연속 놓치지 않았으니 사실상 독주 체제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당구여제' 김가영(PBA 제공)

사실 그러지 않을 것이란 조짐도 있었다. 8회 연속 우승을 했던 전 시즌과 달리, 이번엔 김가영에게 기복이 다소 있던 게 사실이었고 조별리그에선 한지은에 패해 탈락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그러나 김가영은 김가영이었다. 경험 많은 김가영은 중압감 큰 결승 무대에서 펄펄 날았다. 상대에게 기회조차 넘어가지 않는 압도적 경기가 이어졌다. 반면 선배의 기세에 한지은의 샷은 흔들렸다.

첫 우승을 노렸던 한지은이 "결승전인 것만으로도 떨리는데 상대가 김가영이라 더 떨렸다. 보스전의 보스였다"고 말했을 만큼, 김가영은 한국 당구계에서 누구도 넘보기 힘든 존재다. 이번 왕중왕전은 이를 새삼 느낀 무대였다.

김가영은 스스로 그런 존재가 될 자격을 만들었다. 그는 "잘 되건, 잘 안되건, 성적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내 할 일을 꾸준하게 했다"며 주변에 울림을 줬다.

올해 윤곡여성대상을 받는 등 뜻깊은 시간을 갖기도 했던 그는 우승 기자회견에서 "내가 선수로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 대중들이 당구를 보는 시각이 달라지리라 믿었다. 30년 동안 많은 환경을 겪으며 이 자리까지 왔는데, 나중에는 여자당구 후배들이 스포츠로 대접받기를 바란다"며 이 분야 '맏언니'다운 견해도 밝혔다.

덕분에 우리는 한국 여자당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역사를 써 내려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

우승 후 기뻐하는 김영원(PBA 제공)

남자부는 정반대 성격의 우승자가 나왔다.

18세4개월25일 나이의 김영원(하림)은 조건휘(SK렌터카)를 4-2로 제압, 프로당구 남녀 최초의 '10대 왕중왕' 자리에 올랐다.

그래서 이번 월드챔피언십은 PBA에 김영원의 시대가 새롭게 도래했음을 공식적으로 알린 무대가 됐다.

2021-22시즌 드림투어에서 데뷔한 뒤 2024-25시즌 PBA로 올라온 김영원은 2년 동안 가파르게 성장, 한 시즌 상금 랭킹 상위 32명만 출전할 수 있는 최고 권위 대회에 출전했고 심지어 우승까지 일궜다.

김영원의 정상 등극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아직 앳된 얼굴과 달리 강력한 멘털로 결승전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결승전에선 승부처였던 5세트에서 정교한 뱅크샷을 앞세워 1-9로 뒤지던 경기를 뒤집는 저력을 보였고, 특유의 차분한 계산 능력으로 장기인 '인공지능 샷'도 선보였다.

왕중왕전에서도 통하는 그의 실력은 앞으로 PBA 헤게모니를 바꾸기에 충분하다. 그동안 남자 프로당구의 국내 선수는 조재호나 강동궁 등 베테랑들이 주도했는데, 10대 김영원의 우승으로 이제는 젊은 선수들과 기존 선수들 간 더욱 건강한 경쟁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아울러 김영원이 3부 투어부터 시작해 드림 투어를 거쳐 1부 투어 우승과 왕중왕전 우승까지 차근차근 밟아온 만큼, PBA의 육성 시스템이 잘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도 유의미하다.

10대 당구 왕중왕전 챔피언 김영원(PBA 제공)

결승전에서 김영원을 상대한 조건휘는 "(김)영원이는 받아들이고 흡수하는 속도가 다르다. 잘 치는 건 알고 있었다. 아마 혼자서 연습도 많이 했을 것"이라며 후배의 성장에 박수를 보냈다.

김영원은 "오랫동안 꾸던 꿈이 이뤄졌다"면서도 "비시즌 동안 상박이 흔들리는 문제점을 개선해 더 잘하고 싶다"며 곧바로 다음을 바라봤다. "일 년에 세 번씩 우승하겠다"는 패기 넘치는 포부도 슬쩍 공개했다.

한편 이번 대회는 두 챔피언의 배출 외에 또 다른 수확도 있다. 2024년부터 왕중왕전을 개최, 이제는 완전히 자리를 잡은 제주에 '당구 열풍'이 불었다는 점이다.

결승전이 열린 15일에는 준비된 가변 좌석에 더해 기존 체육관 좌석 한쪽 스탠드까지 꽉 들어차는 등 축제 분위기가 연출됐다.

PBA 관계자는 "제주에서 프로당구 왕중왕전을 꾸준히 개최하면서 제주 시민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관중 역시 계속 증가 추세"라고 설명했다.

tre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