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노동도 불사했던 김상겸…'비인기' 설움 딛고 400번째 메달[올림픽]
선수생활 길었지만 오랜 무명…"힘든 시간 많았다"
"체력되는 한 운동 하고파…올림픽 두 번 더 목표"
- 권혁준 기자
(리비뇨=뉴스1) 권혁준 기자 = 지원도 여건도 막막한 종목의 선수로 살아가는 것은 고됐다. 무엇보다 먹고 사는 현실적인 벽이 크게 다가왔다. '타협'을 고려할 만도 했지만 김상겸(37·하이원)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생계를 위해 막노동을 하면서도 '스노보더'의 꿈을 놓을 수 없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꿈은 4번째 도전, 만 37세의 나이에 이뤄졌다. 뜨거운 눈물과 포효, 시상대 위에서의 큰절은 '비인기종목' 선수로 살아온 지난날의 설움을 씻어내는 것이기도 했다. 김상겸은 대한민국 동·하계 올림픽 통산 400번째 메달리스트 자격이 충분했다.
김상겸은 8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 파크에서 열린 대회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 결승전에서 칼 벤자민(오스트리아)에 0.19초 뒤져 은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한국 선수단에 이번 대회 첫 메달을 안긴 김상겸에게 그동안 힘든 순간을 묻자 "너무 많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오랜 시간 활동하면서도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했으니 당연히 힘든 일을 숱하게 겪었을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스노보드 종목은 '불모지'나 다름없다. 2018년 평창 올림픽 남자 평행대회전의 이상호(31·넥센)가 은메달을 땄고, 이번 대회에선 최가온(18·세화여고)과 이채운(20·경희대)이 메달에 도전할 정도로 성적했으나 다른 종목과 비교하면 지원이나 관심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기에 '비인기종목' 선수들의 경우 올림픽 무대가 더욱 중요하다.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고 기량을 증명해 보일 수 있는 가장 큰 기회이기 때문이다.
김상겸도 2011 유니버시아드 평행대회전 금메달, 2017 삿포로 아시안게임 동메달 등 국제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붙박이' 국가대표지만, 선수 생활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김상겸은 "대표팀 생활은 오랫동안 했지만, 실업팀에 들어간 건 서른살이 넘어서였다"면서 "그전까지는 돈을 벌지 못했기 때문에 부모님도 정말 많이 걱정하셨다"고 했다.
매번 부모님에게 손을 벌릴 수는 없었기에 자체적으로 방법을 강구해야 했고, 김상겸은 아르바이트로 막노동을 하기도 했다.
그는 "대표팀 훈련을 1년에 300일을 하다 보니 아르바이트도 제한적이었다"면서 "할 수 있는 게 결국 일용직 막노동밖에 없었다. 자주는 아니고 시간이 날 때 한 번 씩 인력 파견 회사에서 보내는 곳으로 가서 일을 했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운동만 해도 쉽지 않은데 생계를 걱정해야 하니 몸도 마음도 힘들었다"고 덧붙였다.
지칠 법도 했지만 그래도 김상겸은 스노보드를 놓지 않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것을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보드를 너무 좋아한다.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에서 응원해 주고 서포트해 준 것도 컸다"고 했다.
4번의 도전 끝에 올림픽 메달의 성과를 이뤘지만, 김상겸의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체력이 되는 한 운동을 계속하고 싶다"면서 "오늘 경기만 봐도 40대 중반의 선수들이 많이 나왔다. 체력 관리를 잘 해서 더 하고 싶다"고 했다.
이미 4번의 올림픽 무대를 밟았지만, 5번, 6번째 올림픽 무대도 바라보는 그다.
김상겸은 "두 번 정도 더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면서 "앞으로 몇 년은 괜찮겠지만 40대 이후가 걱정이다. 나를 고용해 줄 실업팀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starburyn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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