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혁이 도쿄에서 일궈낸 쾌거…"할 수 있단 자신감" [임성일의 맥]

세계선수권 높이뛰기 은메달…개인 2번째 영예
육상·수영 장벽 높던 종목도 '월드클래스' 배출

스마일 점퍼 우상혁이 세계선수권 높이뛰기 은메달을 차지했다. 그는 우리 모두에게 '할 수 있다'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있다. ⓒ AFP=뉴스1

(서울=뉴스1) 임성일 스포츠전문기자 = 대한민국은 스포츠 강국이다. 동하계 올림픽(1988 서울 하계, 2018 평창 동계)을 모두 개최한 흔치 않은 나라고 이젠 대회 때마다 종합 10위권을 목표 삼을 정도의 실력도 갖췄다. 한반도를 붉게 물들였던 2002 월드컵은 세상을 놀라게 했고 보면서도 믿기지 않던 4강 신화 이후 한국 축구는 16강에 오르지 못하면 전 국민이 분노하는 수준이 됐다.

차범근 홀로 척박한 땅을 일구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젠 축구대표팀에 유럽파가 넘치고 박찬호와 박세리를 보고 자란 야구·골프 키즈들은 어느새 또 다른 꿈나무들의 롤 모델이 돼 세계무대를 누비고 있다. 여왕 김연아가 터 닦은 은반 위에 태극기가 펄럭이는 모습을 보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이렇듯 엄청난 발전을 이뤘으나 아직도 한국 스포츠가 범접하기 어렵다고 여긴 종목들이 있다. '하드웨어' 자체에서 차이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며 한계를 먼저 말한 육상, 수영 등이 그랬다. 하지만, 그 불모지에서도 꽃이 피고 있다.

한국 높이뛰기의 간판 우상혁이 16일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5 도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높이뛰기 결선에서 2m34를 넘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금메달은 2m36을 작성한 '파리올림픽 챔피언' 해미시 커(뉴질랜드)가 가져갔다. 종아리 부상을 이겨내고 투혼을 발휘했는데, 충분히 우승 가능한 기록을 작성하고도 아쉬운 결과가 나왔다.

한국 육상 최초의 세계 실외 육상선수권 금메달은 무산됐으나 우상혁은 2022년 유진 대회 은메달에 이어 다시 한번 세계선수권 메달을 거머쥐며 '월드클래스'임을 재입증했다.

16일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5 도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높이뛰기 결선에서 은메달을 딴 우상혁이 기뻐하고 있다. ⓒ AFP=뉴스1

한국 육상을 통틀어 3번째 실외 세계선수권 메달이다. 3개 중 2개를 우상혁이 획득했다. 2011년 우리나라 대구에서 열린 대회에서 남자 20㎞ 경보 김현섭이 수확한 동메달이 유일한 성과였는데 우상혁이 새 역사를 쓰고 있다.

도쿄에서 우상혁은 2m20과 2m24를 첫 시기에 가볍게 넘었다. 그리고 2m28과 2m31을 두 번째 시기에서 성공, 선두로 올라섰다. 2m34 도전이 백미였다.

우상혁은 1, 2차 시기에 모두 실패해 벼랑 끝에 몰렸다. 그럼에도 특유의 환한 미소를 잃지 않았던 그는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코칭스태프를 향해 몸짓했다. 그리고는 도움닫기 지점에 붙여둔 테이프 위치를 조금씩 조정한 뒤 3차 시기에 나섰다. 주문 같은 '할 수 있다'를 읊조리며 힘차게 발을 구른 우상혁은, 새처럼 날아 올라 바를 넘었다.

운이 따른 결과가 아니라는 상징적 장면이다. 수천, 수만 번 도약을 통해 체득한 감으로 도움닫기 위치를 바꿨고 연습도 없이 훌쩍 넘었다. 실력이다. 배짱도 일품이다. 긴장을 숨기려 억지로 꾸민 표정이 아니다. 연기라도 우상혁급이면 인정해야한다. 자신만 아는 땀의 양을 믿기에 가능한 행동이다.

우상혁의 2025년은 화려한 결실로 이어지고 있다. 그는 2월 체코 실내대회(2m31)를 시작으로 같은 달 슬로바키아 실내대회(2m28), 3월 난징 실내 세계선수권(2m31)에서 모두 우승했다.

이어진 실외 시즌에서도 5월 왓 그래비티 챌린지(2m29), 구미 아시아육상선수권(2m29), 6월 로마 다이아몬드리그(2m32), 7월 모나코 다이아몬드리그(2m34)를 연달아 제패했다. 7전 7승에서 맞이한 세계선수권은 그래서 더 욕심났는데 2cm 부족했다. 물론 이 자체만으로도 경이롭다.

육상은 불가능한 영역으로 간주됐던 종목이다. 하지만 우상혁이 그 벽을 무너뜨렸다. ⓒ AFP=뉴스1

육상이나 수영 같은 종목은 타고난 신체 조건과 탄력에서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에 한국 선수들이 세계 레벨에 오르기 어렵다는 게 체육계 안팎의 중론이었다. 소위 '해도 안 되는' 영역으로 간주했다. 어쩌면 그게 속 편했다. 하지만 도망칠 곳 만들지 않고 묵묵히 행한 이들에 의해 벽이 하나둘 무너지고 있다.

'마린보이' 박태환을 돌연변이라 판단했으나 뒤를 좇은 김우빈과 황선우도 세계 레벨에서 역영을 펼치고 있다. 이 악물고 참고 뛰는 마라톤 정도나 가능하겠다 생각했던 육상계는 이제 필드 종목에서 올림픽 금메달까지 기대하게 됐다.

'열심히 하면 뭐하나' 회의적인 세상에 '스마일 점퍼' 우상혁이 '정말이야. 우리 모두 할 수 있어'라고 몸으로 보여줬다. '불가능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는 명제를 참으로 만드는 스포츠의 건강한 도전 정신이 지금 대한민국 곳곳에 필요해 보인다.

lastuncl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