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남원 매직? 몇 경기 지면 욕먹는 게 사령탑 운명"

서남원 감독의 KGC인삼공사, 3위까지 도약

서남원 감독이 8일 대전충무체육관에서 열린 흥국생명과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뒤 알레나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한국배구연맹 제공). ⓒ News1

(서울=뉴스1) 이재상 기자 = "'서남원 매직'이요? 몇 경기 지면 또 욕먹을 텐데…."

여자 프로배구 KGC인삼공사의 서남원 감독은 '서남원 매직'에 대해 묻자 "허허" 웃었다. 서 감독은 9일 "팬들이 칭찬해 주시는 게 나뿐만 아니라 선수들에게도 큰 힘이 된다"면서도 "서남원 매직이라고 하다가도 몇 경기 지면 욕먹는 게 감독의 숙명이다. 그런 주변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시즌 인삼공사의 기세가 뜨겁다. 초반 '단순 돌풍' 정도로 예상했지만 '태풍'이 됐다. 인삼공사는 8일 대전충무체육관에서 열린 선두 흥국생명과의 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1로 승리했다. 10승9패(승점 30)가 된 인삼공사는 현대건설(승점 29·10승7패)를 4위로 끌어 내리고 '봄 배구'가 가능한 3위로 올라섰다.

서남원 감독은 "우리가 현대건설보다 2경기를 더 했기 때문에 며칠 가지 않아 순위가 바뀔 것"이라면서도 "그래도 중반을 넘어서 3위를 찍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다. 선수들 모두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인삼공사는 시즌 뚜껑을 열기 전 하위권으로 분류됐다. 주전 레프트였던 이연주와 백목화가 지난 시즌이 끝나고 팀을 옮겼고, 전체 1순위로 뽑았던 용병 미들본은 임신을 하면서 팀을 떠났다. 궁여지책으로 세터 한수지가 센터로, 센터였던 장영은이 레프트로, 리베로였던 최수빈이 레프트로 포지션을 변경했지만 얼마나 해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2016 청주 KOVO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장기레이스에서 어느정도까지 버텨줄 수 있을지 물음표였다.

하지만 4라운드 종료까지 1경기를 남겨둔 인삼공사에 대한 평가는 확 달라졌다. 이젠 더 이상 약체란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 서남원 감독은 "이젠 패배의식을 완전히 떨쳐낸 것 같다. 어느 팀과 붙어도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올 시즌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KGC인삼공사. (한국배구연맹 제공) ⓒ News1

▲ "발상의 전환? 잘한 선수에게 기회 줄 뿐"

서남원 감독은 당초 이번 시즌 레프트로 장영은-지민경 조합을 구상했다. 둘 모두 180㎝가 넘는 신장으로 높이가 좋아 공격적인 면에서 해볼만 하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최근 인삼공사는 '단신 듀오'인 김진희(176㎝)와 최수빈(175㎝)이 주전레프트로 나서고 있다. 서 감독은 "처음엔 장신 둘로 가려고 했는데 발상을 바꿨다"며 "지금은 반대로 작은 선수들이 선발로 나가고 전위로 갈 때 지민경을 투입해 높이를 강화하는 식으로 변화를 줬다"고 설명했다.

작전을 바꾼 이유는 간단했다. 지민경과 장영은이 시즌 중반 컨디션이 좋지 못했고, 코트에 들어갔던 최수빈과 김진희가 모두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줬다.

둘이 들어간 뒤 인삼공사는 3연승을 거뒀다. 서 감독은 "모든 것을 만족할 순 없지만 단신 레프트를 투입해 효과를 봤다"면서 "잘했으니 계속 기회를 주는 것이 당연하다. '잘한 선수를 출전시킨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밝아진 표정의 KGC인삼공사 선수단. (한국배구연맹 제공). ⓒ News1

▲ 달라진 팀 분위기, 밝아진 서남원 감독

서남원 감독은 원래 코트 안팎에서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 시즌 인삼공사 지휘봉을 잡은 뒤 표정이 많이 바뀌었다. 경기 전후에 열리는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에게 농을 건네는 등 달라진 면모를 보여줬다.

서남원 감독의 밝아진 표정은 현재 인삼공사의 분위기를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삼공사 선수들은 하나같이 "팀 분위기가 너무 좋다. 감독님께서 웬만하면 선수들에게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조언해주신다"고 했다. 인삼공사의 '야전사령관'인 세터 이재은은 "지난 시즌 끝나고 은퇴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서남원 감독님이 오셔서 '다시 해보자'고 하셨다. 지금은 배구가 즐겁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배구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서남원 감독은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그냥 선수들이나, 취재진에게도 이야기를 숨기고 보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하는 지금이 가장 좋다"고 웃었다.

그는 "예전보다 성적에 대한 압박이 덜하고, 인삼공사란 팀 자체가 우승보단 만년 하위권이라는 팀 컬러를 바꾸는 과정"이라며 "밝게 해주는데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는 크지 않다. 오히려 선수들이 너무 잘 따라와 주고 있어서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서남원 KGC인삼공사 감독. (한국배구연맹 제공). ⓒ News1

▲ "서남원 '매직'보다 선수들 칭찬해주세요"

최근 인삼공사 경기가 끝나면 포털사이트나 댓글 등에는 서남원 감독의 지도력을 칭찬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온다. 만년 하위권이었던 팀이 중위권을 넘어 상위권을 위협하는 팀으로 변모시킨 데 대해 '서남원 매직'이란 말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서남원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2라운드에 4승(1패)을 했을 때도 그런 얘기를 들었는데 몇 경기 지니까 싹 사라지더라"고 웃은 뒤 "경기에서 이기면 '매직'이라고 칭찬하다가도 몇 경기 지고나면 욕먹는 자리가 감독이다. 잘하면 칭찬을 듣는 것이고, 못하면 비판의 목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다. 이젠 그런 외부 평가보다 꾸준히 잘하는 팀을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서남원 감독이 올 시즌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는 "감독 말고 우리 선수들 칭찬을 많이 해달라"는 말이다. 이날도 "저보다 코트에서 뛰는 선수들이 신나야 한다"면서 이재은, 김해란, 유희옥, 김진희 등 거의 모든 선수들에 대한 칭찬을 잊지 않았다.

흥국생명과의 경기가 끝나고 19일(현대건설)까지 경기가 없는 인삼공사 선수들은 8일 경기가 끝나고 투박(이틀 외박) 휴가를 받았다. 서남원 감독은 "선수들이 힘들게 달려오느라 좀 지친 상태였다. 푹 쉬고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구단도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을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선수단 전체가 11일 대천해수욕장에서 기분 전환을 할 예정이다. 서 감독은 "하루 정도 머물면서 바다 바람을 쐬려고 한다. 잠깐 쉬고 후반기를 위해 또 열심히 달려보겠다. 끝까지 많은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alexei@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