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왕이다" 최고의 복서…"검둥이 취급" 美 인종차별 맞선 '흑인의 영웅'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전설의 복서' 알리 영원히 잠들다
- 권혁준 기자
(서울=뉴스1) 권혁준 기자 = 무하마드 알리가 영원히 잠들었다. 그는 전설의 복서인 동시에 인종차별과 폭력, 전쟁에 저항한 인권운동가였다.
알리 가족 대변인은 3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32년간의 파키슨 병과의 싸움을 끝내고 무하마드 알리가 74세 나이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알리는 전날 파키슨 합병증으로 추정되는 호흡기 질환으로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한 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완벽한 복서
알리는 1960~70년대 복싱계를 풍미한 최고의 스타였다. 12세때 아마추어 복서생활을 시작해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라이트 헤비급 금메달을 딴 그는 이후 프로로 전향해 3차례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19차례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통산 전적은 61전 56승(37KO) 5패였다.
알리는 역사상 가장 완벽한 복서로 통한다. 강력한 펀치는 물론이고 화려한 스탭을 바탕으로 한 빼어난 회피기술까지 갖춰 숱한 강자들을 물리쳤다. 상대의 혼을 빼앗는 연타 기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훗날 래리 홈즈를 비롯한 많은 후배 선수들이 알리의 스타일을 교본으로 삼았다.
18세에 아마추어 선수로 180승을 올린 알리는 올림픽 금메달을 딴 이후 프로로 전향해 19연승을 달렸다. 누구도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고, 20번째 상대는 WBA/WBC통합 챔피언인 소니 리스턴이었다. 리스턴은 이 경기 전까지 34승1패를 기록 중인 무시무시한 완력을 가진 선수였다. 대부분은 경기가 시작된지 얼마되지 않아 쓰러졌다.
이 경기를 앞두고 알리는 "그 녀석을 화성 너머 목성까지 날려버리겠다"며 자극했다. 이어 그 유명한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는 말도 함께 했다.
알리는 자신의 말을 지켜냈다. 빠른 동작으로 리스턴의 강펀치를 피해냈고 상대의 체력을 소진시켰다. 잽 펀치를 부지런히 날리던 알리는 6회전 이후 본격적으로 공세에 나섰고 결국 7회전이 시작되기 전 상대의 항복을 받아냈다.
알리가 첫 번째 챔피언에 오른 순간이었다. 알리는 "나는 위대하다. 내가 왕이다"라며 포효했다. 이후로도 숱하게 많은 승리를 얻어냈지만 알리의 경기 중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는 경기는 첫 챔피언이 된 순간이었다.
◇"흑인에게 음식을 안판다" 인종차별에 맞서…흑인의 영웅
알리는 '챔피언'이기 이전에 흑인의 영웅이자 반전주의자의 상징이기도 했다.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이후 미국에 돌아와 식당에서 "흑인에게 음식을 안 판다"는 인종차별을 당하자 메달을 강에 던져버렸다. 당시 알리는 "로마에서 가졌던 '미국을 대표한다'는 환상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가 본명 캐시아스 클레이를 버리고 이슬람교로 개종해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미국인들이 흑인 노예에게 부여한 성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1967년에는 베트남전 참전을 거부하기도 했다. 알리는 "베트콩은 나를 검둥이라고 무시하지 않는다. 내가 왜 베트남 사람들을 죽여야하나"라고 반발했다. 그는 챔피언 타이틀을 빼앗겼고 선수 자격정지를 받았고 법정에서 5년의 실형을 선고받기까지 했지만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링에 돌아온 알리는 1972년 조 프레이저에게 생애 첫 패배를 당했다. 그러나 곧바로 훈련에 매진한 끝에 타이틀을 복귀했고 1974년 복수전에 성공했다. 이어 32세의 나이로 전성기의 조지 포먼을 KO 시키면서 WBC, WBA 통합 챔피언에 오르게 된다.
그는 이후로도 39세의 나이까지 현역 복서로 활동하며 영원한 전설로 남았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 부터 36년전 강으로 던져버렸던 올림픽 금메달을 다시 수여받기도 했다. 당시 파킨슨병을 앓고 있던 그는 성화 점화자로 나서 전세계를 감동시키기도 했다.
starburyny@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