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주연보다 빛난 '조연' 한유미 "참 먼 길 돌아왔네요"

21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수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NH농협 2015-2016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3차전 현대건설과 IBK기업은행의 경기에서 우승 트로피를 받은 양효진(왼쪽부터), 한유미, 김세영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6.3.21/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21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수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NH농협 2015-2016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3차전 현대건설과 IBK기업은행의 경기에서 우승 트로피를 받은 양효진(왼쪽부터), 한유미, 김세영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6.3.21/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서울=뉴스1) 이재상 기자 = 한 때 V리그 여자부 최고의 레프트였다. 화려한 외모와 호쾌한 스파이크로 언제나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그는 "팀을 위해 희생해 달라"는 감독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팀을 박차고 나갔다.

시간이 흘러 2015-16시즌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에서 주연 못지않은 '특급 조연'이 된 한유미(34·현대건설)는 마침내 친정팀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뒤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한유미는 "난 언제나 에이스이고 싶었다. 예전에는 '희생을 하라'는 말이 그렇게 싫었었는데 그땐 참 철이 없었다"고 해 큰 울림을 안겼다.

2000년 현대건설에 입단한 한유미는 V리그 출범 이후에도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 동생 한송이(31·GS칼텍스)와 함께 자매가 모두 국가대표 레프트로 이름을 날렸다.

2009-10시즌이 끝난 뒤 해외 진출을 추진했던 그는 적지 않은 마찰 끝에 현대건설을 떠나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한유미는 2011-12시즌 현대건설이 아닌 KT&G(현 KGC인삼공사)로 복귀했고, 그해 우승을 차지한 뒤 은퇴를 선언했다.

마음 한 구석에 아쉬움이 남아있던 한유미에게 손을 내민 건 양철호 현대건설 감독이었다. 양 감독은 "다시 한번 해보자"고 했고, 2014-15시즌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친정팀에 돌아왔다.

지난해 아쉽게 플레이오프에서 기업은행에 패했던 한유미는 올 시즌에는 염혜선, 황연주, 양효진 등 팀 동료들과 힘을 합쳐 현대건설의 'V2'를 이끌었다.

13일 오후 인천계양체육관에서 열린 NH농협 2015-2016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플레이오프 2차전 흥국생명과 현대건설의 경기에서 현대건설 한유미가 스파이크 공격을 하고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현대견설이 세트 스코어 3-1로 승리해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다. 2016.3.13/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예전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진 못했지만 이번에는 '특급 조커'로 빛을 냈다. 특히 '봄 배구'에서 한유미는 주전 레프트로 나가 공수에 걸쳐 좋은 활약을 펼쳤다.

한유미는 "솔직히 숟가락만 얹은 느낌"이라면서 "시즌 내내 (정)미선이가 잘 뛰었는데 마지막 5경기에서만 내가 뛰었다. 칭찬들을 많이 해주시니 부담스럽다"고 웃었다.

그 동안 스타플레이어로 빛과 어둠을 모두 경험했던 한유미는 우승에 대한 축하에 감사함을 표하면서도 비교적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한유미는 "스타가 화려하지만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취하진 않는다.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2010년 현대건설의 첫 우승 당시 팀을 떠나 함께 하지 못했던 한유미는 비로소 올해 한을 풀었다. 인삼공사 시절 이미 우승을 경험했던 한유미였지만 친정 팀에서의 첫 정상 등극은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한유미는 "참 먼 길을 돌아온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오래 전부터 간절히 원했던 것인데 몇 년 만에 팀에 돌아와서 힘들게 우승을 했다. 기분이 묘하다"고 했다. 한유미는 이어 "인삼공사에서 은퇴를 할 때도 마음 속 어딘가에 미련이 있었다. 그런데 마침내 이번에 우승하고 나니 후련하다"고 웃었다.

한유미는 우승 시상식이 끝난 뒤 공식 기자회견에서 故 황현주 감독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려 눈길을 모았다. 스승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이제야 철이 든 자신에 대한 후회의 눈물이었다.

한유미는 "솔직한 마음을 전한 것 같다. 줄곧 에이스 역할만 했기 때문에 '팀을 위해 희생해 달라'는 감독님의 말을 들었을 때 내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고 내려가야 한다고만 생각했다"며 "'충분히 더 할 수 있는데 왜 나한테만 그럴까'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내려오는 게 아니었는데 그땐 그 의미를 잘 몰랐다"고 설명했다.

21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수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NH농협 2015-2016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3차전 현대건설과 IBK기업은행의 경기에서 득점을 획득한 현대건설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2016.3.21/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은퇴를 선언하고 코트를 떠났던 한유미는 그때서야 스승이 말했던 참 뜻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한유미는 "좋은 영화에도 주연만큼 그것을 뒷받침 해줄 조연이 필요하다"면서 "감초 같은 조연이 얼마나 중요한 지 뒤늦게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제 목표로 했던 친정 팀에서의 우승을 맛 본 한유미는 은퇴 시점에 대해서도 고민 중이다.

한유미는 "아직 구단과 (은퇴)이야기는 한 번도 하지 않은 것 같다"면서 "앞으로 생각을 좀 더 해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현재 한유미는 무릎 상태가 썩 좋진 않다. 4차례나 수술을 받았던 왼쪽 무릎이 그를 힘들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한유미는 "무릎만 괜찮다면 더 하고 싶은데…"라며 "선수로 뛴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잘 알고 있기에 더 신중하게 생각해 볼 것"이라고 전했다.

한 시즌 내내 쉼 없이 달려온 한유미는 오는 3일 유럽으로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그는 "여행을 가서 생각도 더 해보고 과연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해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alexe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