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어설픈 행정' KBL, 스스로 팬 내쫓고 있다
챔프전 2차전 평일 오후 5시…일방적으로 시간 변경
'불통' 외국인 선수 제도까지…팬들 원성 높아져
- 권혁준 기자
(서울=뉴스1) 권혁준 기자 = "아이반, 니가 경기를 망치고 있어."
지난 2008-09시즌 창원 LG의 사령탑을 맡았던 강을준 감독이 '독불장군' 플레이를 펼치는 외국인선수 아이반 존슨에게 했던 '어록'이다.
올 시즌 한국프로농구연맹(KBL)의 행정을 보고있자면 이 말이 떠오른다. '독불장군' 행정으로 스스로 판을 망치는 모양새다.
울산 모비스와 원주 동부의 챔피언결정전 1차전이 벌어진 지난 29일, 울산동천체육관에는 성난 농구팬들이 현수막을 펼쳐보였다.
"먹고살기 바쁜 평일 5시가 왠말이냐", "더 이상은 못참겟다 KBL의 무능행정", "소통없는 독재정치 김영기는 물러가라" 등 KBL을 겨냥한 직격탄이었다. KBL 직원들이 급하게 투입돼 제지했지만, 농구팬들의 성난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각종 포털 사이트와 스포츠 커뮤니티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KBL이 챔피언결정전 시간을 갑작스럽게 변경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KBL은 지난 27일 보도자료를 내고 "31일 열리는 2차전 경기를 오후 7시에서 오후 5시로, 다음달 4일 열리는 4차전 경기를 오후 2시에서 오후 4시로 변경한다"고 밝혔다. "방송사의 편성 사정"이 그 이유였다.
프로농구는 매시즌 시작과 끝 무렵 경기 시간을 놓고 고심한다. 개막은 프로야구의 포스트시즌과 겹치고, 플레이오프는 프로야구 개막과 겹치기 때문에 중계 편성을 잡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에 갑작스레 시간을 변경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문제는 이미 예매가 시작된 이후 경기 시간을 변경했다는 점이다. 오후 7시로 알고 예매 했을 많은 팬들은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게다가 평일 오후 5시는 직장인은 물론 고등학생들도 관람이 어려운 시간이다. 경기장을 찾는 팬들의 발걸음을 가로막는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이 시각에 TV중계가 편성된다고 해도 높은 시청률을 담보할 수도 없다. 프로농구는 최근 야구, 축구는 물론 프로배구에도 시청률이 밀리고 있는 신세이기 때문이다. 결국 KBL은 현장 관중과 시청률, 두 마리 토끼를 아무것도 잡지 못할 처지에 놓였다.
KBL측은 "공중파 중계 사정상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KCC와의 타이틀 스폰서와의 계약 당시 중계횟수 등에 대한 옵션도 걸려 있었기 때문에 중계를 포기할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프로농구 한 시즌의 가장 중요한 경기인 챔피언결정전을 관람이 지극히 어려운 시간에 편성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스폰서 계약 문제로 인해 불가피했다고 해도 최소한 티켓 예매가 이뤄지기 전에 공지를 했어야 했다.
KBL의 이같은 '독불장군'식 행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시즌 시작 전부터 변경을 예고한 외국인 선수 제도도 시즌 내내 잡음을 빚었다.
KBL은 2015-16시즌부터 외국인 선수를 단신/장신으로 나눠 선발하기로 결정했다. 단신선수는 신장 193cm이하로 제한하고, 2, 4쿼터에 두 명의 선수를 모두 뛰게 하는 방식이다. KBL은 "테크니션 용병들의 득세로 농구의 인기를 되살리기 위한 것"이라 설명했다.
이 역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신장으로 포지션을 구분할 수 있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고, 외국인 선수 두 명을 동시 투입하게 하는 것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왔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비난을 산 것은 기존 외국인선수에 대한 재계약이 불가한 것이다. 올 시즌까지 뛰었던 외국인 선수들이 다시 KBL에서 뛰려면 트라이아웃, 드래프트 절차를 다시 거쳐야 한다. KBL측은 이에 대해 "각 구단들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한 것"이라면서 "이전에도 외국인선수 제도가 변경되면 재계약없이 새로 시작했던 전례가 있었다. 단장 이사회에서도 각 구단들이 동의한 바"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기 이전에도 KBL은 '외국인선수, 혼혈선수는 같은 팀에서 4시즌 이상 뛸 수 없다'는 규정을 두고 있었다. 역시 '형평성'이라는 구실 때문이었다. 이는 모두 외국인 선수를 단순히 '용병'으로만 규정하는 시각에서 비롯된 생각이다. 외국인 선수 역시 국내 선수들과 충분히 융화될 수 있고, 팬들의 사랑을 얻을 수 있다.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되지 못하리라는 법도 없다.
인천 전자랜드의 리카르도 포웰이 대표적인 예다. 포웰은 지난해부터 팀의 주장을 맡아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경기 2시간 전부터 코트에 나와 어린 선수들과 함께 슛 연습을 하는가 하면 코트 밖에서는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국내선수와 전혀 이질감이 없다.
포웰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전자랜드는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파란을 일으키며 4강까지 올랐다. 뛰어난 경기력에 인천 팬들은 열광했다. 평일 경기에 7000명 이상의 관중이 몰리며 이례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그러나 포웰은 다음 시즌부터 전자랜드 유니폼을 입을 가능성이 낮다. 다시 트라이아웃에 나와 드래프트에 나선다 해도 전자랜드의 차례에 뽑힌다는 보장이 없는데다, 단신자를 한 명씩 뽑는 규정상 197cm의 애매한 키 덕에 뽑히기가 어려운 처지다. 서울 SK에서 3시즌을 동고동락한 애런 헤인즈와 코트니 심스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를, 리그의 규정에 의해 떠나 보내야 한다는 것은 어떤 스포츠리그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허무하게 팀 간판을 떠나보낸 구단의 팬들이 다시 농구장을 찾고 싶어질까.
농구의 인기는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있는 추세다. 선수들의 경기력 하락, 스타 부재 등 많은 이유가 있지만, KBL의 행정력 부재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보인다.
특히 올 시즌을 앞두고는 대표팀이 12년만의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면서 농구 열기를 불지필 수 있는 적기로 평가됐다. 하지만 KBL은 어설픈 행정으로 스스로 기회를 놓치고 있다. 차갑게 식은 팬심을 다시 돌리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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