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동양챔프 정재광, 지도자로 제2의 복싱인생 출발
- 온라인뉴스팀
(뉴스1스포츠) 온라인뉴스팀 =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의 아마추어복싱은 전 체급 석권이란 대기록과 함께 전성기를 누리면서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서 권투는 한국의 전통적인 메달밭이었다.
이로 인해 많은 복서들이 세계챔피언을 꿈꾸었으며, 우상을 뽑는 질문을 하면 열에 아홉은 다른 국가의 챔피언이 아닌 한국의 챔피언들을 우상으로 답했을 정도로 한국 프로복싱의 황금기였었다.
홍수환의 4전5기 신화를 지켜보며 챔피언의 꿈을 키웠고, 그 외에 염동균, 유제두, 김태식 등 기라성 같은 챔피언들이 한국 프로복싱의 전성기를 이끌며, 뒤 이어 유명우, 장정구, 박종팔 등과 같은 세계 프로복싱계가 기억하는 위대한 한국인 챔피언을 배출할 수 있었다.
영세민 집안, 9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난 정재광(전 동양챔피언)은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하루 빨리 세계챔피언이 되어 집도 일으키고, 불편한 어머니의 다리도 고쳐드리겠다는 생각으로 양말공장에서 일도 하면서 대천중학교, 대천고등학교에서 아마추어 선수 생활에 전념하며, 세계챔피언의 꿈을 향해 피나는 노력을 하였다.
"노력은 배신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듯 19살의 어린 나이에 프로에 대비하여, MBC신인왕전에서 우승을 거머쥐는 등 여러 곳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2000년대 당시 정재광 선수는 페더급 세계챔피언으로서 손색이 없는 선수라는 말이 여러 권투 관계자들로부터 절로 나올 정도로 세계챔피언의 기대주이자, 유망주였다.
정재광 선수는 기대에 부응하듯이, KBC 슈퍼밴텀급 챔피언에 이어 한국복싱위원회(KBC, Korea Boxing Commission) 페더급 챔피언까지 이루며, 한국 챔피언을 두 체급 석권했으며, 2005년에는 TKO승으로 범아시아(PABA 동양챔피언)챔피언에 등극했다.
하지만 세계챔피언을 꿈꾸며 승승장구 하던 정재광 선수에게도 한국권투위원회(KBC)의 오랜 내분의 여파는 피부로 느끼게 되며, 원하던 김지훈과의 방어전이 다섯 차례나 연기되면서 세계 챔피언의 꿈을 버리고 링을 떠나게 되었다.
그 뒤에 불어나는 빚과 사랑하는 아내와 팬들을 위해 30이란 나이에 다시 한번 링 위에 올라 세계 챔피언의 도전하였으나, 링을 떠나 있었던 2년여의 시간과 경기 감각, 흐른 세월의 나이는 그를 세계챔피언으로 이끌어 주지 못했다.
하지만, 정재광은 포기하지 않았으며, 링을 떠나지 않았다. “복싱은 내 인생의 전부”라는 그는 무등체육관 트레이너로 활동하며, 자신이 이루지 못한 세계챔피언의 꿈을 후배들을 통해 이루려고 다시 한번 도전하고 있다.
한국권투위원회(KBC)는 오랜 내분을 겪었고, KBC 체제에 불만을 품은 권투인들이 새로운 단체를 만들어 프로복싱 부활을 위한 활동을 펼쳐 보이며, 역부족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세계챔피언을 꿈꾸는 후배들을 위해 전통복싱을 지도를 하며 선수 양성하고 있다.
정재광복싱클럽에서 운영중인 "뮤직복싱"은 스트레이트와 훅, 어퍼컷 등 다양한 팔 동작이나 다양한 스텝을 조합하여, 목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사용하는 유산소 운동이기 때문에 온몸의 군살을 없애주고 탄력 있는 몸매로 가꿔준다. 살빼기 가장 힘든 팔 안쪽과 허벅지 군살을 매끄럽게 빼주는 것도 장점이다.
정재광은 “후배들을 지도하여 세계챔피언이라는 못 이룬 꿈을 이루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한국프로복싱의 부흥과 대중들의 관심과 재미를 갖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먼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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