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변하는데 여전히 빅맨에 의존…한국 농구, 끝 없는 낭떠러지로[항저우AG]

열악한 지원+국제 경험 미숙=항저우 참사
외국인 의존하는 리그 분위기도 바꿔야

한국이 조별리그 D조 일본과 경기에서 패한 뒤 경기장을 나서고 있다. 2023.9.30/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서울=뉴스1) 문대현 기자 = 세계의 흐름에서 동떨어진 남자 농구대표팀이 결국 역대 아시안게임 최악의 성적을 냈다.

추일승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4일 중국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 체육관에서 열린 대회 남자 농구 5-8위전에서 이란에 82-89로 패했다.

앞서 중국과 8강전에서 70-84로 대패하며 2006년 도하 대회(5위) 이후 17년 만에 메달권 진입에 실패했던 한국은 순위 결정전 첫 경기에서도 역전패하면서 7·8위전으로 떨어졌다. 그야말로 '항저우 참사'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2014년 인천 대회 이후 9년 만에 금메달을 노렸다.

강력한 우승후보 중국은 저우치, 왕저린 등이 제외돼 전력이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았고 일본, 이란도 주력 선수의 차출 거부 등으로 화력이 다소 떨어졌다.

한국 역시 일부 주력 선수들이 부상으로 합류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KBL 스타급 선수들이 대거 포함돼 국제 무대에서 성과를 낼 절호의 기회로 여겨졌다.

그리고 조별리그 D조 첫 두 경기에서 인도네시아(95-55 승)와 카타르(76-64 승)를 연파하며 순항하는 듯 했다.

그러나 2진급을 파견한 일본과 경기에서 일본의 스페이싱 농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77-83으로 진 이후 모든 것이 꼬였다.

한국은 바레인과 12강전을 거쳐 겨우 8강에 올랐는데 바레인전 후 14시간 만에 최강팀 중국과 8강을 치러야 하는 강행군을 펼쳐야 했다.

한국은 스타급 선수들이 빠진 중국을 상대로 주전을 총동원했지만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완패를 당했다. 이후 이란에도 졌다. 아직 일본과 최종전이 남았지만 이미 동기 부여를 잃었다.

중국과 남자 농구 8강전에서 진 한국 선수들이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2023.10.3/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한국 농구의 이번 결과는 예고된 비극에 가깝다는 평가다. 한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국제농구연맹(FIBA) 월드컵 지역 예선에 불참해 국제 무대 감각을 잃었다.

7월 일본과 국내 두 차례 평가전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평가전도 갖지 못했다.

유니버시아드 대표팀, 상무 등 국내 팀들과 연습 경기를 하는 데 그치면서 세계 농구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대회에 나섰다.

이 점은 한일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일본은 끊임 없는 움직임으로 공간을 창출한 뒤 정확한 외곽슛으로 득점을 이어간 반면 한국은 빅맨 라건아를 활용한 2점 플레이만을 고집했다.

계속되는 3점슛 허용으로 큰 점수 차로 밀리는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은 원래 하던 2점 농구 밖에 없었다.

코칭스태프 구성도 원활히 이뤄지지 못했다. 협회는 추일승 감독, 이훈재 코치의 많은 경험을 믿었지만 이들은 위기 타개책을 세우지 못했고 선수단 장악도 실패했다.

이 모든 것이 겹치면서 한국 농구는 국제 무대 경쟁력을 완전히 잃었다.

쓰라린 결과지만 앞으로라도 세계 농구의 흐름을 수용하며 대표팀 운영에 장기적인 비전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잖다. 협회 역시 긴 안목으로 장기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리그에서도 외국인 빅맨에만 의존하는 패턴을 버리고 지도자나 선수 모두 창의적인 플레이를 시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파격적인 변화 없이 앞으로도 '한국식 농구'만 고집한다면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중국과 남자 농구 8강전에서 진 한국 선수들이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2023.10.3/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eggod6112@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