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총과 대포만 쏘지 않을 뿐

베네수엘라, '마두로 악연' 미국 잡고 WBC 우승
이란, 미국 본토서 월드컵 경기…이미 장외 전쟁

이상철 스포츠부 차장

(서울=뉴스1) 이상철 기자 = 작은 공은 그 크기보다 훨씬 큰 힘이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는 손에 땀을 쥐고 각본 없는 드라마가 펼쳐지는 스포츠의 감동과 재미에 열광하며, 슈퍼스타의 탄생에 사회적 신드롬이 일어난다.

스포츠는 전쟁의 대리전이기도 하다. 특히 정치, 경제, 역사, 종교 등 복합한 관계로 맞물린 라이벌과 국가대항전에서는 총과 대포만 쏘지 않을 뿐,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로 '혈투'가 펼쳐진다.

선수는 몸이 부서질 때까지 뛰겠다는 각오로 투혼을 발휘하고, 국민은 이들을 위해 더더욱 열렬한 응원으로 힘을 불어넣는다. 승전고를 울린다면 모두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에 흠뻑 젖으며, 정부는 이 경사스러운 일을 기념하기 위해 국경일을 선포하기도 한다.

베네수엘라와 미국이 맞붙은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결승은 최근 가장 큰 이목이 쏠린 스포츠 경기였다.

양국은 27년간 악연 관계였던 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 1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축출하는 군사작전을 승인하면서 상황이 더더욱 악화했다. 이 때문에 둘의 맞대결을 두고 '마두로 더비'로 불렸다.

더욱이 단순한 경기가 아니라 우승컵을 놓고 맞붙는 한판이었다. '야구 종주국' 미국은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로 대표팀을 구성할 정도로 우승에 목말랐다. 국민스포츠인 야구에선 질 수 없었던 베네수엘라가 그런 미국의 콧대를 꺾고 감격스러운 첫 우승 축포를 쐈다.

월드컵 본선은 한 번도 나간 적이 없고, 올림픽에서도 큰 성과를 낸 적 없던 베네수엘라가 '미국 본토'에서 열린 WBC에서 미국을 잡고 우승을 일궜다.

이 역사적인 승리에 어두운 나날이 많았던 베네수엘라는 모처럼 축제가 펼쳐졌다. 지름 약 7.5㎝의 야구공이 만든 기적이다.

3개월 뒤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가 공동 개최하는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에서도 '총성 없는 전쟁'이 펼쳐진다.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축제인 월드컵을 향한 관심은 늘 뜨거웠지만, 이번 대회는 '장외 전쟁'으로 시끄럽다.

미국이 이스라엘과 손잡고 이란을 공격하면서 중동 화약고에 불이 붙었다. 이란도 보복 공격을 펼치면서 중동 전쟁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지는 중이다.

한때 이란의 월드컵 불참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이란은 이를 일축하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대신 미국에서 열릴 예정인 조별리그 3경기를 멕시코로 옮겨 치르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FIFA는 '안전한 월드컵'을 강조하면서도 이를 배제했다.

불편한 건 이란만이 아니다. 미국 역시 수많은 변수가 내재한 이란의 참가가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작은 사고 하나가 확대돼 미국에 큰 오점이 될 수도 있다. 이란 축구대표팀이 예정대로 미국 땅을 밟는다면, 그 일거수일투족에 웬만한 우승 후보보다 훨씬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터다.

앙숙이 실제로 맞붙을 가능성도 있다. D조의 미국과 G조의 이란이 나란히 조 2위에 오를 경우 32강에서 격돌하게 된다. 미국과 이란은 1998년 프랑스, 2022년 카타르 대회에서 대결한 적도 있지만 이번 월드컵에서 또 만난다면 전 세계의 주목 아래 치열한 전쟁 같은 경기가 펼쳐질 것이다. 스포츠만이 만들 수 있는 그림이다.

rok1954@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