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국제 경쟁력 잃은 한국야구의 퇴보…'들러리' 신세 전락

순혈주의 깨고 공 들여 준비했지만 1R 탈락 유력
호주·일본 상대로 연이은 충격패…마운드 초토화

10일 오후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B조 1라운드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 4대13 대패를 당한 대표팀 이정후를 비롯한 선수들이 관중석에 인사 후 그라운드를 빠져나가고 있다. 2023.3.10/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서울=뉴스1) 이상철 기자 = 최근 국제대회 경쟁력을 잃은 한국야구는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통해 재도약을 다짐했지만, 퇴보한 현주소만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한국은 10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WBC 1라운드 B조 2차전에서 일본에 4-13으로 크게 졌다.

전날 호주에 7-8로 패한 한국은 2연패로 사실상 1라운드 탈락이 무산됐다. 남은 체코전(12일)과 호주전(13일)에서 모두 이겨도 2승의 일본과 1승의 호주가 각각 1승, 2승만 추가하면 탈락이 확정된다.

2006년 4강, 2009년 준우승을 거두며 WBC를 빛냈던 한국은 이제 들러리 신세로 전락했다. 2013년과 2017년에 이어 3개 대회 연속 1라운드 통과조차 벅차다.

결과뿐 아니라 내용이 너무 참담하기 때문에 이번 대회의 조기 탈락은 더욱 충격이 크다. 우리나라가 방심한 것도 아니고 준비가 소홀했던 것도 아니다.

허구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는 지난해 3월 취임하면서 대표팀 경쟁력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고, WBC를 발판삼아 반등을 꾀했다.

전력 강화를 위해 순혈주의를 깨고 한국계 미국인 메이저리거 토미 현수 에드먼을 발탁하는 강수까지 뒀다. 또한 대표팀은 미국 전지훈련까지 실시하며 대회 준비에 열을 올리는 동시에 호주와 첫 경기에 사활을 걸고 전력분석에도 힘을 쏟았다.

조 편성도 일본, 호주, 중국, 체코와 함께 B조에 속해 네덜란드, 대만, 이탈리아, 쿠바, 파나마가 모인 A조에 비해 수월하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이강철 감독과 선수들 역시 "목표는 4강 진출"이라며 자신감을 표하기도 했다.

10일 오후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B조 1라운드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 이강철 대표팀 감독(왼쪽부터), 진갑용 코치, 정현욱 코치가 더그아웃에서 굳은 표정으로 8회초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2023.3.10/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하지만 뚜껑을 열었더니 한국야구의 민낯이 드러났다. 단 2경기 만에 한국은 1라운드 탈락 위기에 직면했고, '우물 안 개구리'라는 현실을 자각해야 했다.

한국은 대회 첫 경기부터 한 수 아래로 봤던 호주에 홈런 세 방을 맞고 7-8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8강 진출의 분수령이 될 이 경기를 위해 1년 가까이 공을 들였음에도 덜미를 잡혔다.

일본과의 2차전은 더 참담했다. 양국의 수준 차이는 컸고, 한국은 7회 콜드게임 패배를 걱정해야 할 처지까지 놓였다.

WBC 1라운드에선 5회말 15점 차, 7회말 10점 차가 나면 콜드게임이 선언된다. 한국은 7회말 4-13으로 뒤진 상황에서 2사 만루 위기까지 몰렸다. 박세웅이 추가 실점을 막지 못했다면 '대회 첫 콜드게임 패배'라는 수모를 당할 뻔했다.

한국은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현재 경기가 진행 중인 A·B조 10개 팀 중에서 팀 타율은 0.200으로 9위, 평균자책점은 11.12로 10위다.

확실한 해결사나 듬직한 에이스가 없으며 흐름을 뒤바꿀 '미친 선수’도 나오지 않았다. 벤치 역시 선발 투수의 투구 수 제한, 최소 상대 타자 수 등 규정이 있는 WBC에서 가장 중요한 마운드 운용의 묘가 떨어졌다.

특히 마운드는 절망적인 수준이다. 한국은 2경기에서 무려 21실점을 기록, 참가팀 중 경기당 평균 최다실점(10.5점)을 하고 있다.

미국 전지훈련에서 쌀쌀한 날씨 탓에 투수들이 준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지만, 누구 하나 제대로 공을 던지지 못했다. 미래를 이끌어가야 할 젊은 투수들은 큰 무대에서 제구 난조를 보였다. 한국은 일본전에서 무려 9개의 4사구를 남발하며 자멸했다.

10일 오후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B조 1라운드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4대13 대패를 당했다. 2023.3.10/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이런 경기력이라면 오는 12일 체코와의 3차전 승리도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일본을 상대로 6회까지 끈끈한 맞붙었던 중국과 마지막 경기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더 큰 망신을 당할 수 있다.

한국은 2006년 WBC 4강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년 WBC 준우승으로 황금기를 보냈다. 벌써 10년도 훨씬 지난 일이다.

이후 한국야구는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2015년 프리미어12에서 우승하고 아시안게임에서 3연패를 이뤘지만 속은 곪아가고 있었다.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WBC에서 1라운 통과는커녕 1승조차 버거워졌고, 6개 팀이 참가한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선 노메달에 그쳤다.

10일 오후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B조 1라운드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 대표팀 포수 양의지가 5회말 1사 3루에서 요시다 마사타카의 희생 플라이로 3대6으로 점수가 벌어지자 아쉬워 하고 있다. 2023.3.10/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퇴보하는 한국은 야구의 변방국이 됐다. 또 국제대회 경쟁력을 상실한 한국 야구는 내수 종목으로 전락했다. 일부는 한국 야구가 위기에 처했다는 목소리를 냈지만 야구계는 진짜 심각한 상황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당장 오는 13일부터는 KBO리그 시범경기가 열릴 예정이다. KBO는 WBC의 선전과 맞물려 열기를 띄울 계획이었지만 역풍을 맞을 기세다. 대대적인 개혁이 없다면 한국 야구는 진짜 공멸할 수 있다.

rok1954@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