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연승' 고영표 "2승5패로 시작했는데, 어느덧 13승5패 됐네요"

2년째 팀 에이스 역할 톡톡…6일 이기면 조계현과 어깨 나란히
"다승왕 욕심보단 QS 목표로…'강한 선발' 일원에 자부심 느껴"

KT 위즈 고영표. /뉴스1 DB ⓒ News1 김진환 기자

(서울=뉴스1) 권혁준 기자 = "2승5패로 시작했는데, 어느덧 13승5패가 됐네요."

KT 위즈의 에이스 고영표(31)가 미소지었다. 시즌 초반만 해도 잘 던지고도 승운이 따르지 않아 패배를 쌓는 일이 많았지만, 최근 들어 그는 '패배를 모르는 투수'가 됐다.

고영표는 군 복귀 후 첫 시즌이던 지난해 11승6패 평균자책점 2.92를 기록하며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였다. 한국시리즈에서는 불펜 투수로 활약하며 팀의 사상 첫 통합 우승에 기여했다.

올 시즌엔 확고한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시즌 초반 주전들의 줄 부상으로 하위권에 처져있던 KT가 치고 올라올 수 있었던 힘도 고영표를 비롯해 소형준, 배제성, 엄상백 등 국내 선발진이 탄탄하게 받쳐준 것이 크게 작용했다.

팀 전력의 상승은 선발투수의 승패 성적과 곧장 직결된다. 시즌 첫 8경기에서 6차례의 퀄리티 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 이하)를 기록하고도 2승5패를 떠안아야했던 고영표는 이후 팀의 상승 곡선과 함께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5월19일 LG 트윈스전이 마지막 패전이었으니 패전투수의 기억은 벌써 세 달도 넘은 일이 됐다.

그 사이 14번의 등판에서 11승을 쓸어담았다. 특히 7월 이후 8번의 등판에선 '노디시전' 조차 없이 8번 모두 승리를 기록했다. 이 중엔 5실점한 경기가 두 번이나 있었지만 팀 타선의 도움을 받아 승리를 챙기기도 했다. 에이스 등판 때 어떻게든 승리를 챙기려는 KT의 저력을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고영표는 "사실 승리는 투수의 힘만으로 올릴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승리를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면서 "퀄리티스타트만 하자, 6~7이닝만 던지고 내려오자는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나섰는데 승리를 많이 챙기게 됐다. 얼떨떨하지만 어쨌든 팀이 승리했으니 기분은 좋다"며 웃었다.

6일 홈에서 열리는 한화 이글스전에 등판이 예정된 고영표는 이날 이기면 9경기 연속 선발승과 더불어 선발 12연승을 달성하게 된다. 이 부문 최다 기록인 정민태(현대)의 21연승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조계현(해태)이 1996년에 기록한 12연승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된다.

여기에 더해 '다승왕' 타이틀도 도전장을 내밀게 됐다. 현재 케이시 켈리와 아담 플럿코 등 LG 트윈스의 외국인 듀오가 14승으로 공동선두인데, 켈리와 플럿코가 등판하지 않는 이날 경기서 승리를 거두면 공동선두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고영표는 타이틀 욕심을 경계했다. 그는 "다승왕에 대한 큰 욕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면서 "11연승을 해왔을 때처럼 6~7이닝을 던지면서 선발로 역할을 해낸다면 승수는 자연히 쌓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KT 고영표와 이강철 감독. /뉴스1 DB ⓒ News1 김진환 기자

'마음 비우기'는 고영표가 군 입대 후 반등할 수 있었던 계기 중 하나다. 그는 군 입대 전인 2017~2018년에도 좋은 구위와 무브먼트를 바탕으로 선발 한 자리를 꿰찼지만 평균자책점은 항상 5점대에 머물렀다. 그는 원인을 심리적인 부분에서 찾았다.

고영표는 "그때는 경기마다 투구 밸런스가 불안정했다. 잘 던져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커서 심리적인 불안을 달고 있었던 것 같다"면서 "군 전역 후엔 불필요한 생각은 최대한 줄이기로 했다. 그러면서 공을 던지는 딜리버리가 일정해졌고, 제구가 좋아지는 등 도미노처럼 순리대로 맞아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이제는 오히려 상대 타자들의 심리를 읽고 '수싸움'을 펼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그는 "내가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타자들이 어떤 걸 노리고 있다는 게 보이더라"면서 "그럴 때마다 (장)성우형과 의논해가면서 어떻게 풀어갈 지 대처를 한다"고 말했다.

군 전역 후 이강철 감독을 만난 것도 고영표에게는 큰 전환점이었다. '잠수함 전설'인 이 감독은 같은 사이드암 투수에게는 좀 더 디테일한 '원포인트 레슨'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일깨워주고 있다. 고영표를 비롯해 엄상백, 이채호 등 이 감독 밑에서 '일취월장'한 사이드암 투수들이 많다.

고영표도 "감독님을 만나게 된 것은 정말 큰 영광"이라면서 "같은 유형으로 배울 점이 정말 많은 분이다. 투수들에 대한 눈높이가 더 높아서 엄격하시지만 그만큼 한 단계 더 오를 수 있는 바탕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KT는 올 시즌 현재까지 팀 평균자책점이 3.44로 리그 1위, 선발 평균자책점은 3.47로 SSG(3.44), 키움(3.45)에 이은 3위다. 국내 선발로만 한정한다면 고영표(2.85)와 소형준(2.94) 등 2명의 2점대 평균자책점 투수에 엄상백(3.24)까지 갖춘 KT를 따라올 팀은 없어보인다.

고영표는 그중에서도 '맏형'이자 에이스로 선발진을 이끌고 있다. 그는 "(소)형준이는 정말 배우려고 하는 자세가 남다른 후배이고, (엄)상백이와 (배)제성이도 마찬가지"라면서 "내가 선배지만 후배들에게도 배울 점이 많다. 서로 그런 부분을 관찰하고 공유하고 조언하면서 같이 발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강철 감독은 이 같은 선발진을 두고 "타이거즈 향기가 난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예전 '해태 왕조' 시절, 좋은 투수들이 많아 내부에서도 서로 잘하기 위해 경쟁했던 그때의 모습이 KT 선발진에서 보인다는 이야기다.

고영표는 "'타이거즈'에 소속된 적이 없어 그때의 향기는 잘 모르겠다"면서도 "확실히 우리 팀 선발이 가장 강하다는 자부심이 있고, 내가 거기에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하다. 앞으로도 나를 필두로 더 막강한 선발진이 됐으면 좋겠다"며 웃어보였다.

starburyn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