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J의 야구수첩] 한신의 'KBO 출신' 수집으로 떠올린 용병의 의미

한신, 샌즈·로하스 영입 이어 알칸타라에도 눈독

멜 로하스 주니어가 KT 위즈에서 한신 타이거스로 소속을 옮긴다. /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서울=뉴스1) 정명의 기자 = 1998년 KBO리그에 도입된 외국인 선수 제도. 야구의 본고장에서 찾아온 이방인들은 한국 프로야구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초창기에 그들은 '용병(傭兵·mercenary)'이라 불렸다.

용병은 보수를 받고 복무하는 군인이라는 뜻으로, 고대 오리엔트 시대부터 시작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이들은 돈에 의해 소속을 옮겨 다니며 전쟁에 참여하는, 어찌 보면 냉혹한 존재였다.

그래서인지 외국인 선수 제도 도입 후 시간이 흐르면서 '용병'이라는 표현은 터부시됐다. 선수들은 "국내 선수와 다르지 않은 우리의 동료"라며, 팬들은 "한 인격체를 향한 부적절한 표현"이라며 용병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보였다. 미디어에서는 아예 사라진 표현이 됐다.

그러나 여전히 프로야구를 비롯한 프로 스포츠계에서는 용병이라는 표현이 곳곳에서 쓰이고 있다. 감독들이 '용병'이라고 말하면 언론이 알아서 '외국인 선수'라고 고쳐 적는다. 짧은 음절 탓에 언어적 편의성 측면에서 용병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용병의 의미 그대로를 담아 부르기도 한다.

제리 샌즈(33)와 멜 로하스 주니어(30)가 일본 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스에서 한솥밥을 먹는다. KT 위즈는 지난 9일 "로하스 측에서 한신과 계약했다는 통보가 왔다"며 "더 큰 무대에서 뛰고 싶었다는 입장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KBO 역대 외국인 타자 최고 수준의 금액을 제시했지만 계약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원소속구단 KT를 비롯해 메이저리그 구단, 일본 구단 등 한미일의 러브콜을 받던 로하스는 결국 한신의 줄무늬 유니폼을 입게 됐다. 거액의 몸값이 포함된, 한신의 공식 발표가 조만간 나올 것으로 보인다.

샌즈는 지난해 키움 히어로즈에서 타점왕을 차지한 뒤 한신과 계약했다. 올 시즌 타율 0.257 19홈런 64타점으로 초반 부진을 딛고 연착륙에 성공했다. 한신은 올 시즌 4관왕(홈런, 타점, 득점, 장타율)이자 MVP인 로하스와 함께 'KBO 출신 쌍포'를 기대하고 있을 터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더불어 막강한 자금력을 갖춘 구단이 바로 한신이다. 팀의 역사도 깊고 '일본 야구의 성지'라고 불리는 효고현의 고시엔구장을 홈구장으로 쓰고 있다. 팬덤 또한 가장 강하다. 1985년 이후 일본시리즈 우승이 없다는 건 옥에 티다.

KBO리그에 가장 큰 관심을 두는 일본 구단도 한신이다. 거의 매년 KBO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는 선수를 영입 리스트에 올린다. 한국인 선수, 외국인 선수를 가리지 않는다. 그런 과정을 거쳐 오승환(38), 윌린 로사리오(31)가 한신에 몸담았다.

올 시즌 'KBO리그 다승왕, 승률왕' 라울 알칸타라(28) 역시 한신에 합류할 가능성이 있다. 한신에서 알칸타라 영입에 거액을 준비 중이라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알칸타라가 한신 유니폼을 입는다면 KBO리그 출신 외국인 선수(용병) 3명이 한꺼번에 일본 프로야구단에서 활약하는 진기록이 탄생하게 된다.

키움 히어로즈에서 타점왕을 차지한 뒤 한신 타이거스에 입단한 제리 샌즈. /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샌즈, 로하스, 알칸타라의 공통점은 KBO리그의 소속팀에 큰 애정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로하스는 심지어 MVP 수상 후 미리 준비한 영상을 통해 "내년에도 KT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잔류 의지를 드러냈다.

결국 '돈'을 보고 움직이게 돼 있다. '용병'이라고 불러도 틀리지 않은 이유다. 보수를 받고 복무하는 군인처럼 보수를 받고 야구를 하는 외국인이다. 더 많은 돈을 주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소속을 옮긴다. "그동안 행복했고, 좋은 경험을 쌓았다" 정도로 립서비스를 남기면 그만이다.

성적이 좋지 않으면 가차 없이 목이 날아가기 때문에, 챙길 수 있을 때 최대한 챙겨야 하는 게 그들의 운명이다. 전쟁터를 누비던 고대의 용병과도 어떤 의미에서는 비슷한 처지다. 그렇기 때문에 용병다운 선택을 비난할 수 없다.

일본으로 떠나는 외국인 선수를 바라보며 아쉬워하는 팬들이 많다. 종종 욕을 하기도 한다. 안타깝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그들이 돈을 따라 더 좋은 환경으로 옮겨가는 '용병'이기 때문이다. 한신도 가까운 한국에서 검증을 마친 선수들을 자금력을 앞세워 영입하는, 똑똑한 비즈니스를 할 뿐이다.

doctor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