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규 놀이'에 비친 징그러운 타자와 괴로운 투수
- 이창호 기자
(서울=뉴스1스포츠) 이창호 기자 = 투수들에게 아주 껄끄러운 타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총알처럼 빠른 공을 ‘꽝’ 던져도, 폭포수처럼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뚝’ 변화구를 던져도 ‘톡톡’ 방망이에 맞히면서 파울을 만들어 내는 타자를 만나면 정말 징그럽다. 아예 안타나 홈런을 맞든지, 그냥 볼넷으로 빨리 걸어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니면 몸에다 확 맞춰버리고 싶은 생각까지 떠올릴 것이다.
한국무대에 첫선을 보인 SK 새 외국인 선수 멜리 켈리는 앞으로 KIA 2번 최용규를 만나면 절대 잊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비가 오락가락 2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 첫 등판해 4회초 선두타자로 만남 최용규와 무려 16구까지 승부하다 결국 볼넷을 내줬기 때문이다.
천만다행인 것은 4회를 끝냈을 때 굵은 빗줄기가 마구마구 쏟아져 노게임인 된 점이다. 5회를 넘겨 정식 경기가 됐다면 승패를 떠나 두고두고 팬들의 입에 오르 내릴 외국인 투수로 남을 뻔했다.
최용규와의 16구 승부는 1982년 출범한 한국 프로야구에서 ‘한 타자 상대 최다 투구수’에서 역대 공동 3위에 해당하는 진기록이기 때문이다.
최용규의 끈질긴 승부를 ‘제2의 용규 놀이’라고 불렀다. 지금도 한화 이용규가 KIA에서 뛰던 시절 상대 투수에게 20개의 공을 던지게 한 것이 역대 1위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용규는 2010년 8월29일 광주 무등구장에서 열린 넥센전에서 상대 투수 박준수(현재 박승민으로 개명)를 징그럽게 괴롭혔다. 그냥 물러서지 않았다. 콧수염을 기른 작은 왼손타자가 ‘톡톡톡’ 스트라이크존으로 날아오는 공을 걷어내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공을 골라내다보니 시나브로 20구째를 던지게 했다. 그러나 이용규는 우익수 플라이로 돌아섰다.
투수들을 괴롭히는 ‘못된 타자’ 2위는 김태룡 KIA 수비코치와 은퇴한 정원석이다.
KIA 김태룡은 1994년 6월10일 광주 삼성전에서 이재만을 상대로, 두산 정원석은 2008년 9월24일 잠실 우리 히어로즈전에서 장원삼을 17구째까지 끈덕지게 괴롭혔다. 두 투수에겐 ‘한 타자 상대 최다 투구수 역대 2위’의 불명예를 안겼다.
최용규처럼 ‘16구 승부’를 펼친 타자들은 총 강영수(삼성), 정문언(태평양), 이병규(LG), 박기혁(롯데), 박한이(삼성) 등 5명이다.
강영수는 1990년 6월12일 대구 빙그레전에서 당시 최고의 잠수함 투수였던 한희민을 상대로, 정문언은 1991년 7월6일 인천 삼성전에서 재일동포 언더핸드 투수 김성길과 16구까지 긴 승부를 펼쳤다.
장충고, 단국대를 거쳐 1997년 LG에 입단한 이병규는 다음 해인 1998년 9월26일 잠실 현대전에서 상대 투수 김수경을 16구까지 괴롭히더니 결국 2007년 현해탄을 건너 주니치를 이적했다. ‘한국의 이치로’란 별명으로 불릴 만큼 정확하고 끈질긴 타자라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준 결과였다.
이젠 롯데에서 막내팀 kt로 이적한 박기혁도 한때 아주 끈질긴 모습으로 상대 투수들을 괴롭혔다. 2006년 4월22일 부산 사직구장 마운드에 오른 현대 장원삼을 물고 또 물고 늘어졌다.
가장 최근에 ‘징그러운 타자’로 등록한 선수는 삼성 박한이다. 지난해 7월11일 대구구장에서 SK 고효준을 상대로 16구까지 승부했다. 3-0으로 앞선 2회말 2사 후 끈질긴 승부 끝에 볼넷으로 나가 3번 채태인과 4번 최형우의 연속 안타로 득점을 올렸다.
고효준은 박한이에게 너무 시달린 탓인지 이날 3회까지 104개의 공을 던지면서 10안타와 볼넷 7개로 무려 10점을 내주며 패전투수가 됐다.
투수들은 타석에 쉽게 물러나지 않는 타자들이 싫다. 징그럽다. 올해는 KIA 최용규가 처음으로 보여줬다. 비로 노게임이 되는 바람에 공식 기록으로 남지 못했지만 강한 인상을 준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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