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원 빈소, "600만 관중 소식도 못듣고 가시다니.."

14일 낮 12시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지하 3층 17호실에 고인의 빈소가 마련됐다. 빈소가 차려진 이후에는 고인이 세례를 받고 다녀왔던 평강교회 김명수 목사와 신도들이 유가족과 함께 임종예배를 봤다.

예배 이후에는 고인의 부인 신현주씨와 아들 기호씨를 비롯한 유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드는 조문객들을 맞았다. 오랜 투병생활로 마음의 준비를 한 탓인지 유가족들은 대체로 차분한 모습을 보였다.

고인의 동생이자 KBO(한국야구위원회) 심판인 최수원씨는 "형님은 의식을 잃는 순간까지 야구를 보셨던 분으로 다시 운동장에 서고자했던 의지가 대단했던 사람"이라며 "팬들의 가슴 속에 영원한 에이스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언에 대해선 "갑자기 의식을 잃어 따로 유언을 남기시진 못했다"며 "다만 의식이 있었을 때 군 복무 중인 아들과 아내에게 '건강해라'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했다.

이날 장례식장에는 빈소가 차려지기도 전인 오전 11시께부터 취재기자와 카메라 기자를 비롯한 30여명의 취재진이 모여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다.

오후 2시 40분쯤 빈소를 찾은 허구연 MBC해설위원은 "얼마 전 통화에서 최 감독이 운동장에 나가고 싶다고 해 얼른 나아서 오라고 했는데 그게 마지막 통화가 됐다"며 "하늘나라에서 먼저 간 장효조 감독과 함께 감독을 하면서 지도자로서의 원을 풀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역 야구선수들의 모습은 오후 4시가 넘어갈 때까지 보이지 않았다. 조문객들은 주로 김경문 NC다이노스 감독과 선동렬 전 삼성 라이온즈 감독, 이광환 전 한화 이글스 감독 등 지도자급 야구계 인사들과 고인이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들이었다.

1987년 5월 16일 롯데-해태전에서 2대 2무승부로 고인과 나란히 1승 1무 1패씩을 나눠가졌던 선동렬 전 감독은 "동원이 형은 내가 감히 따라갈 수 없는 선배이자 우상이었다"며 "프로야구 사상최초로 올해 600만 관객을 돌파했는데 그런 좋은 소식을 듣고 가지 못했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최 감독의 어머니 김경자 여사는 조문온 선 감독의 얼굴을 어루만지면서 아들의 잃은 비통함을 드러내 주위를 숙연하게 만들기도 했다.

빈소 출입구부터 복도까지는 김성근 SK와이번스 감독과 하일성 KBSN 야구해설위원 등 야구인들이 보낸 조화들이 즐비했다. 이명박 대통령,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 김정권 한나라당 사무총장 정계 인사들의 조화도 답지했다. 계속 조화가 배달돼 오자 유가족측은 조화에 달린 리본들만 따로 떼어 조문객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곳에 줄지어 붙였다.

괴물투수라는 별명을 가진 최동원 감독은 1958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경남고 2학년 시절 전국우수고교초청대회에 나가 당시 최강팀이던 경북고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해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83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해 프로야구에 발을 들였고 84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 상대로 혼자서만 4승을 이끄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88년 프로야구 선수들의 복지를 위한 선수협의회를 만들려다 구단과 갈등을 빚고 삼성으로 트레이드 됐다. 2001년부터는 한화 이글스로 둥지를 옮겨 투수코치로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2007년 대장암 수술을 받고 투병생활을 계속해오다 14일 새벽 2시 경기도 일산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발인은 16일 오전 6시 30분이며 장지는 경기도 자유로 청아공원이다.

k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