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페인은 안전하다'는 착각…대가는 태아가 치른다[메디로그⑫]

잔류량 '제로' 아닌 3%…제품별 검출량 상이
카페인, 태반 통과해 태아 성장 저하 가능성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서울=뉴스1) 김학진 기자

디카페인 커피, 임신 중에도 정말 안전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카페인을 줄였다고 안심하기엔, 아직 확인할 게 많다.

커피는 하루의 시작을 여는 가장 익숙한 습관이지만, 임신이 시작되면 대부분의 여성은 커피잔을 내려놓는다. 카페인이 태아 성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디카페인 커피(decaf)'가 대체 음료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최근 해외 보건 매체와 연구기관의 분석을 종합하면 '카페인이 거의 없다'는 문구만으로는 안심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카페인 97% 제거"…하지만 완전 '無'는 아니다

최근 미국 건강 전문매체 헬스라인(Healthline)은 "디카페인 커피는 생두의 카페인을 약 97% 제거한 커피지만, 잔류 카페인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밝혔다.

디카페인 커피 한 잔(240mL)에는 평균 2.4mg 정도의 카페인이 남아 있으며, 이는 일반 커피(96mg)의 약 1/40 수준이다. 하지만 브랜드나 로스팅 방식에 따라 최대 14mg까지 검출된 사례도 보고됐다.

미국산부인과학회(ACOG)는 임신 중 하루 카페인 섭취량을 200mg 이하로 제한할 것을 권장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일반 커피는 하루 두 잔 정도로 제한되고, 디카페인 커피는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일반 사람이 카페인을 섭취하는 경우는 오직 커피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하루 여러 잔의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며 기타 카페인 함유 식품(초콜릿, 홍차 등)을 함께 섭취하는 경우에는 누적 섭취량이 권장치를 초과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1'제20회 임산부의 날 기념행사'에서 임산부가 배를 만지고 있다. ⓒ News1 황기선 기자
카페인은 태아 성장 저하 가능성…디카페인도 예외 아냐

임신 중 카페인 섭취 제한의 근거는 존스홉킨스대 연구팀이 'American Journal of Obstetrics and Gynecology'에 발표한 논문에서 비롯됐다.

연구진은 "일반 커피(카페인 함유)를 하루 3잔 이상 마신 임산부에게서 출생아 체중이 다소 낮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고 보고했다.

즉 카페인이 태반을 통과해 태아의 대사 속도를 지연시키고, 성장 호르몬 분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이후 여러 보건 지침에서 인용되며 '임신 중 하루 200mg 이하'라는 기준을 세우는 핵심 근거가 됐다.

다만 존스홉킨스 연구는 '일반 커피'를 대상으로 한 결과로, 디카페인 커피의 직접적 유해성을 입증한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카페인 함량이 낮은 디카페인 커피는 일반 커피보다 위험성이 훨씬 적다"고 강조하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무제한 섭취가 안전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화학 용매 성분 논란"…디카페인 커피의 또 다른 변수

카페인 외에도 제조 과정의 화학 용매가 새로운 논란이 되고 있다. 호주 공영방송 ABC News의 지난해 7월 보도에 따르면, 한 환경단체(EWG)는 디카페인 커피 생산에 사용되는 화학 용매 염화메틸렌(methylene chloride)의 식품 사용을 금지해 달라고 미국 식품의약청(FDA)에 공식 청원했다.

이 물질은 원래 페인트 제거제나 접착제에 쓰이는 산업용 화학물질로, 인체에 다량 누적될 경우 신경독성과 발암 위험이 보고된 바 있다. 일부 디카페인 제조업체는 생두를 찌고 염화메틸렌 용액으로 반복 세척해 카페인을 추출하는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에 노출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다만 호주 RMIT대학교 올리버 존스(Oliver Jones) 화학과 교수는 "염화메틸렌이 해로운 물질인 것은 맞지만 중요한 건 노출량"이라며 "디카페인 커피에 남는 양(2mg/kg 이하)은 건강에 영향을 줄 수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 FDA 역시 염화메틸렌에 대해 "소비자가 통상 섭취하는 양에서는 인체 유해성이 보고된 바 없다"고 밝혔다.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디카페인 캡슐커피 15개 제품 ⓒ News1 김기남 기자
한국 임산부의 현실 "디카페인은 마음껏 마신다? 금물"

국내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카페인이 태반을 통과하는 성질을 가진 만큼 임신 초기에는 가능하면 섭취량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특히 한국 임산부는 평균 체중이 서양 여성보다 적게 나가고 평균 커피 섭취 빈도는 상대적으로 높아 상대적으로 카페인 노출량이 더 클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관계자는 "디카페인 커피라도 완전 무카페인은 아니기 때문에 커피의 완전한 대체제는 아니며, 복용을 최소화하고 식사 직후나 철분제 복용 직전엔 피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철분 흡수를 방해하는 카페인의 특성은 디카페인 커피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완전한 '무카페인' 음료를 원한다면 임신 중 안전한 허브티(루이보스·생강·카모마일)나 레몬워터, 꿀물, 커피가 첨가되지 않은 라떼 등을 대체 음료로 권장한다.

결국 디카페인 커피는 커피의 향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임신부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절충점이 될 수 있다. 적정량의 섭취는 안전하나 "카페인이 없으니 마음껏 마셔도 된다"는 인식은 버리는 것이 태아와 엄마 모두를 위한 가장 현명한 커피 습관이다.

khj80@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