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수영장 이용 막고는 "정당한 거부"…반복되는 체육시설 차별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법인 줄 알면서 "사람 가려받을 권리 있다" 억지
인권위·법무부 등 구제 절차 더 적극적이고 신속해져야…인식 개선도 필수
- 권진영 기자
(서울=뉴스1) 권진영 기자 = 초등학생과 대학생 시절을 합쳐 총 4년의 수영 경력을 가진 서 모 씨(20대)는 최근 서울시 관악구의 한 스포츠센터 내 수영장에서 강습 등록을 거부당했다. "시각 장애인이 다치면 책임질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미 첫 강습을 마친 상태였다. 그는 "환불 요구를 받기 전 첫 수업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같이 수영했던 분들이 옆 레인에서 같이 수영하자고 했다"며 "장애인이라 안 된다는 말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고 말했다.
5일 뉴스1의 취재를 종합하면 시각장애인이 체육 시설에서 이용을 거부당하는 불법적 실태는 공공연히,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해당 수영장 관계자는 "저희는 안전상의 이유로 못 받는 것이다. 우리도 어차피 정당하게 거부한 것이니 나중에 문제가 되더라도 어쩔 수가 없다"고 당당히 말했다.
서 씨는 지난달 관계자들로부터 "눈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수영을 하겠다는 거냐", "우리는 민간 시설이라서 사람을 가려 받을 권리가 있다"는 말까지 들었다고 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장차법) 제25조는 체육활동을 주최·주관하는 기관이나 단체, 체육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체육시설의 소유·관리자는 체육활동 참여를 원하는 장애인을 장애를 이유로 제한·배제·분리·거부해서는 안 된다.
만약 장애를 이유로 참여를 거부할 경우에는 시설 측이 그에 상응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 과거 서 씨는 암벽등반에 도전했다가 난이도가 색깔로 표시돼 있다는 설명을 듣고 바로 수긍했다.
관계자의 말처럼 손님의 출입을 정당하게 거절할 수 있는 경우도 상대방이 신체적 △신체적인 폭행 △협박 행위 △소란·위력·점거 등으로 영업 방해를 할 소지가 있을 때뿐이다. 장애를 이유로는 그 어떤 민간 시설과 국공립 시설도 합당한 이유 없이 '손님 가려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서 씨는 무엇보다도 "날 범죄자 취급한 것에 기분이 너무 나빴다"고 했다.
장차법이 시행된 지 어느덧 17년이 지났지만 현실에서는 패럴림픽을 준비하는 운동선수조차 체육시설 이용을 퇴짜맞기 일쑤다.
현재 육상 선수로 활동하는 중증 시각장애인 A 씨(30대) 역시 필라테스·수영·헬스 등 숱하게 많은 체육 시설에서 이용을 거절당해 왔다.
육상을 선택한 이유도 달리기는 '입장을 거부당하지 않는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니 재활 운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그렇게 다시 찾은 수영장·헬스 등 재활 운동 시설 관리자들은 "당신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이용을 거부했다. 하나같이 "당신이 다칠까 봐 안 된다. 우리 입장이 난처해진다"고 입을 모았다.
A 씨는 "왜 시각장애인만 다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그는 "오버트레이닝으로 부상을 입거난 블랙아웃 되는 분들도 많다. 신체적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안전을 고려한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발표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일반 국민 생활체육 참여율은 60.7%였지만 장애인 참여율은 35.2%에 불과했다. 국민 평균의 절반 수준인 셈이다.
체육 시설 이용 차별을 겪은 장애인의 권리를 구제받기 위해서는 긴 싸움을 각오해야 한다.
대표적인 구제책은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진정을 접수하는 것이다. 접수 후 조사를 거쳐 권고가 내려지면 법무부가 시정명령을 이행할 수 있다. 만약 해당 체육 시설이 시정 명령에 불응할 경우 최대 3000만 원의 이행강제금이 부과된다.
뉴스1이 김예지 국민의힘 국회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인권위 자료에 따르면 2022~2024년까지 3년간 체육시설 이용을 거부당한 장애인이 낸 진정은 총 35건이었다. 이 중 인권위가 권고 조치한 사례는 총 13건으로 집계됐다. 권고가 내려지지 않은 사례 중에는 조사 중 문제가 해결된 건과 취하 건이 포함돼 있다.
김 의원은 "법이 존재하더라도 법원이나 법무부, 지자체가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어 차별받은 장애인들은 차별 구제 과정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장애인 차별 구제 수단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실행될 수 있게 함과 동시에 장기적으로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모든 영역에 있어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생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권위에서 장애인차별시정소위원회를 이끌었던 남규선 전 상임위원은 "문제는 신속성"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비교적 이른 시일 안에 문제를 해결한 사례로 '조사 중 해결'된 진정 건을 들었다. 남 위원에 따르면 과거 강원도 소재의 한 수영장은 시각장애인의 이용을 거부하며 동반인 입장을 요구했다가 인권위 조사가 개시되자 입장을 번복하고 시정한 바 있다. 권고 단계까지 나아가지 않더라도 변화를 끌어낸 것이다.
그 전제 조건으로 남 전 위원은 "인권위가 신속히 진정 절차를 진행할 수 있도록 제도를 뒷받침할 인력이 보강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역시 가장 빠른 길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무너지는 것이다. A 씨가 퇴사를 결심한 이유도 하루라도 더 빨리 변화를 불러오기 위해서다.
A 씨는 "죽어라 일해서 승진하고도 여전히 헬스장에서 거부당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내 미래가 더 무서웠다. 나는 정치인도 법조인도 아니니 법이나 제도를 바꿀 수는 없지만 최고의 선수가 된다면 더 이상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목소리를 낼 힘이 생길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운동선수로 전직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로 주변인들의 지지와 연대를 꼽았다.
A 씨는 "(선수로) 전향하기에는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일부 회사 분들은 '무언가를 하고 싶은 의지나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움직임들이 분명히 결실을 볼 것이다'라고 응원해 줬다"고 말했다.
차별과 거부라는 허들을 넘어 A 씨는 오늘도 달린다.
realk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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