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서 드러난 '기초연금안 결정 과정'
청와대, 보건복지부안 묵살하고 직접 개입
결정과정서 진영 장관 배제, 사퇴로 이어져
- 고현석 기자
(서울=뉴스1) 고현석 기자 = 14일과 15일 이틀 동안 열린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기초연금안 확정 과정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현재까지 가장 개연성 있는 시나리오는 '박 대통령, 65세 이상 모든 노인 기초연금 20만원 지급 공약' , '복지부, 국민연금과 연계하지 않는 기초연금안 작성', '청와대 보고', '청와대, 복지부 연금안 사실상 묵살', '청와대 복지수석 직접 개입' , '국민연금 연계안으로 급선회'로 요약될 수 있다.
복지부는 지난 8월 30일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연계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을 청와대에 보고했다. 진영 당시 장관은 이날 박근혜 대통령을 면담한 자리에서 평소 소신대로 국민연금의 불안정성 등의 이유를 들어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연계하면 안된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지만 박 대통령은 "다시 검토해보라"는 취지의 지시를 했다.
박 대통령의 원래 공약이 기초연금-국민연금 연계를 토대로 만들어져 있는데 반해 진 장관이 추진한 방안은 공약의 토대를 크게 흔들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한 듯하다.
이태한 복지부 인구정책실장이 14일 복지부 국정감사에서 한 발언에 따르면 당시 박 대통령은 진 장관에게 연금연계형과 소득액인정 방식 두 가지의 장단점을 "잘 고려해 잘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사실상 국민연금과 연계하지 않는 방식을 내친 셈이다.
그로부터 2주 뒤인 9월 13일 복지부 실무자들은 국민연금과 연계하는 내용의 기초연금안을 확정해 만들어 청와대 행정관에게 이메일로 보고했다. 또 25일에는 언론을 통해 정부의 최종안을 공식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복지부 수장인 진 장관의 서면 결재는 없었다.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 9월25일 확정발표된 기초연금안을 진 장관이 동의해서 만든 것이 확실한지에 대해 따져 물었다. 이영찬 복지부 차관, 양성일 복지부 연금정책관 등은 "장관에게 보고했으며 해당 안을 청와대로 보내겠다고 했을 때 이를 동의했다"고 하면서도 장관의 최종 서면결재는 받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남윤인순 민주당 의원은 진 장관이 사퇴한 이유에 대해 "청와대에 최종보고된 기초연금안에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며 "결국에는 청와대의 최원영 고용복지수석과 복지부 담당 실국장이 장관을 배제하고 이번 일을 만들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2주 사이에 기초연금안이 완전히 뒤집어진 배경에는 복지부 실무자들에 대한 청와대의 압력이 존재했다는데 목소리를 모았다.
최원영 청와대 고용복지수석과 박민수 청와대 행정관이 진영 장관을 제치고 이 2주 동안 이영찬 차관 및 복지부 실무자들과 수시로 접촉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영찬 차관은 최원영 수석과의 전화통화를 비롯한 접촉 여부를 묻는 민주당 김용익 의원의 질문에 처음에는 부인하다가 결국 수차례 통화한 사실이 있다고 인정했다. 이 기간 동안 박민수 행정관이 직접 복지부로 찾아와 실무자들을 만난 사실도 국감에서 밝혀졌다.
김용익 의원은 "딱 2주 사이에 확정되지 않았던 정부안 논의가 끝났다"면서 "장관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지휘하지 않았으면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없다"고 청와대 실세 개입을 강조했다.
민주당 남윤인순 의원도 이 기간 동안 진영 장관이 배제되고 사실상 최원영 수석이 장관 노릇을 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기초연금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복지부 실무자들이 주무 장관을 배제하고 청와대 실세의 압력에 굴복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기초연금 설계 방안에 대한 여론수렴을 하기 위해 구성된 국민행복연금위원회도 4개월 동안의 논의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기초연금을 소득인정 방식(소득과 재산을 모두 고려한 소득환산액에 기초연금지급 기준을 두는 방식)이 아닌 국민연금 연계방식으로 구성할 것을 제의했다.
실제로 국정감사에서도 국민행복연금위 가입자단체들은 국민연금 연계안을 지지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영찬 차관은 최종 정부안이 어느 단체에서 나온 안인가를 묻는 민주당 김성주 의원의 질문에 "국민행복연금위원장이 마지막에 권고했다"고 답변했다.
기초연금안 의견수렴을 맡았던 김상균 국민행복연금위원회 위원장은 "위원회의 기초연금 지급방안 논의는 처음부터 인수위 안에 기초를 둔 것이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일부 위원들은 기초연금을 소득하위 70%에게만 지급하고 국민연금에 연계한다는 내용이 아예 논의된 적이 없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이목희 민주당 의원이 국민연금 연계와 소득하위 70% 지급안이 "위원회에서 논의된 적이 있냐"고 질의하자 김경자 전 국민행복연금위원회 위원은 "정식 위원이나 단체에서는 없었다"고 답변했다.
김 위원은 위원들이 처음부터 국민연금 연계안에 반대의사를 표명했고 위원이 아닌 자문위원이 안을 내서 삭제를 요청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고 당시 과정을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갈등을 빚어 자신을 포함한 일부 위원들이 위원회를 탈퇴하기도 했다고 김 위원은 말했다.
이와 관련해 양성일 복지부 연금정책국장은 정부안 의견을 낸 인물에 대해 의원들이 추궁하자 실명을 밝히는 것은 곤란하다고 답변해 개운치 않은 여운을 남겼다.
김상균 위원장은 자문위원이 안을 낸데 대해 "자문위원은 대안을 제안할 수 있는 권한은 있다"며 "그 안은 자문위원 또는 단체 실무자회의를 거쳐 올라왔기 때문에 제안하는데 대해서는 제한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65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20만원 지급' 공약이 선거용이었느냐"는 민주당 김성주 의원의 질문에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또 국민행복연금위원회가 제시한 복수의 안 중에서 정부가 채택한 안이 수용되면 국민연금 가입자의 반발을 불러온다는 것을 우려했느냐는 김 의원의 물음에도 "그런 우려가 있을 거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민주당 이언주 의원은 김상균 위원장의 대답에 "온 몸에 힘이 빠진다. 이제와 '선거용이었다' 고백할 게 아니라 선거 때 솔직했어야 한다. 지금은 약속을 지키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고 노력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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