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은 성숙의 필수조건…"'한창 일할 나이에 왜?'라는 질문부터 바꿔야"

[쉬었음 청년]④ 전통적 통계 설문이 놓친 다양한 '쉼'의 이유
'성찰과 성숙'의 계기 되도록 유형별로 상담~일경험 기회 제공할 수 있어야

편집자주 ...30대 '쉬었음' 인구가 31만 4000명(2025년 11월 고용동향 기준)으로 집계됐다. 2003년 통계 작성 이래 11월 기준 역대 최대 규모이다. 이들은 육아나 가사, 취업·진학 준비도 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그냥' 쉰다. <뉴스1>은 한창 일할 나이의 청년들이 왜 쉬는지 진단하고, 이들이 경제활동인구로 거듭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고민해 총 4편의 기사로 내보낸다.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 일자리정보 게시판의 모습. 2025.12.15/뉴스1 ⓒ News1 이호윤 기자

(서울=뉴스1) 권진영 기자

하다못해 네모도 꿈을 꾸는데아무도 꿈이 없는 자에겐 기회를 주지 않아하긴 무슨 기회가 어울릴지도 모를 거야…왜 그렇게 봐? 난 죄 지은 게 아닌데

청년들의 솔직한 심정을 담담히 풀어내 주요 음원차트 상위권을 휩쓴 악동뮤지션의 '후라이의 꿈' 가사 일부분이다. 특히 '날 재촉한다면 따뜻한 밥 위에 누워 자는 계란 후라이 같이'라는 가사에는 성적·스펙·취업 과정에서 틀에 박힌 성공 공식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개인이 느끼는 부담감이 녹아 있다.

이 부담감은 곧 불안과 저활력으로 이어져 통계 지표상 '쉬었음 청년'으로 나타나고 있다. 뉴스1은 이들이 쉼을 선택하는 진짜 이유와 이들을 위한 맞춤형 정책은 어떻게 설계돼야 하는지 전문가와 짚어봤다.

'쉬었음 청년', 이름은 같아도 상황은 다르다

국가데이터처가 공개한 지난해 8월 '비경제활동인구' 중 쉬었음 인구 가운데 15세 이상 39세 미만은 총 77만 명을 넘어섰다

같은 달 공개된 '경제활동인구조사 비임금근로 및 비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결과'상 청년들이 쉰 이유 1위는 "몸이 좋지 않아서(34.9%)"였다. 2위를 차지한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서(19.0%)"의 두 배 가까운 비율이다.

연령대별로 쉬었음을 선택한 이유는 조금씩 달랐다.

보통 첫 직장에 취직하는 15~29세의 가장 큰 이유는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서"였으며 2위는 "다음 일 준비를 위해 쉬고 있음"이었다.

반면 30대로 넘어가면 1위는 "몸이 좋지 않아서', 2위는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서"로 달라진다.

일선에서 쉬었음 청년과 고립·은둔 문제에 천착해 온 모세종 지속가능경영재단 함께상생본부장은 통계상 "몸이 좋지 않아서"라는 선택지 하나에 다양한 성격의 이유가 존재한다며 "신체적·심리적·정신적으로 어떻게 몸이 안 좋은지 더 세부적으로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는 선택지도 급여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인지, 회사의 비전이 보이지 않아서인지 구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현행 통계가 "전통적인 질문만 해마다 되풀이하고 있다"며 "청년을 잘 이해하고 아는 사람(청잘알)과 함께 설문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문제를 정확히 짚는 질문이 선행돼야 그에 맞는 맞춤형 정책도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작성한 자료에 따르면 쉬었음 청년은 크게 5개 유형으로 분류된다. 취업 준비생과 이직 희망자, 적극형과 소극형, 취약형 여부로 나뉘는데 유형별로 지원 방향성도 달라진다.

대표적으로 가장 정책 수요가 낮은 유형은 '이직-적극형'이다. 경력개발을 위해 퇴직한 후 시간을 두고 재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이다. 해당 쉬었음 청년의 경우는 이직 보편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경우인 만큼 정책 수요나 개입 필요성이 낮다.

반면 '취준-소극형' 청년은 지속적인 취업 실패 등으로 구직 의욕이 감소하고 도전 자체가 어려워진 경우에 해당한다. 이 경우는 단순히 일자리 제공만이 능사가 아니다.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는 일 경험·진로탐색에 더해 자존감과 사회성 회복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맞춤형 지원 나선 지자체…'청년 도전 지원사업' '현장형 청년인턴제'

지방자치단체들 역시 이런 상황을 파악하고 맞춤형 지원에 나서고 있다. 경남도는 지난해에 이어 심리 회복·직무역량 강화·취업 연계로 이어지는 4대 핵심 사업을 추진한다.

4대 핵심 사업은 △청년 도전 지원사업 △청년 성장 프로젝트 △청년 일 경험(인턴) 지원사업 △대학생 현장실습비 지원사업으로 구성된다.

특히 도전 지원사업과 성장 프로젝트는 암묵적으로 가정과 학교에만 맡겨져 온 '진로설계' 과정을 행정이 보조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도전 지원사업은 심리상담과 자기 탐색 중심의 회복 프로그램이다. 그동안 무엇을 원하는지, 뭐가 되고 싶었는지 충분히 고민할 기회가 없던 청년들에게 진로설계를 할 수 있는 제반을 마련해준다.

성장프로젝트에서는 구직 청년이 기업에서 요구하는 실무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교육과 훈련을 제공한다. 본격적인 일 경험에 앞서 업계 상식을 익히고 기본기를 다질 수 있다.

경남도 청년 도전지원 사업 담당자는 "2026년도 참여자는 1월 1일부터 신청 가능하지만 현재(2025년 12월 31일 기준) 192명이 사전 신청을 마쳤다"고 밝혔다. 이 프로그램의 정원은 총 364명이다.

충북도는 경력자를 우선시하는 시장의 경향성을 고려해 '현장형 청년인턴 제도'를 시행하기로 했다.

단순 사무보조 수준이 아닌 정책 기획·데이터 분석·프로그램 운영·도정 홍보 등 양질의 실무를 익힐 수 있도록 한다. 이 밖에도 전문가 특강과 우수기업 현장 방문 기회를 제공할 방침이다.

충북도의 청년인턴 제도 역시 지난 1일부터 모집을 시작했으며 정원은 도청 35명, 공공기관 30명이다. 19세 이상 39세 이하 미취업 청년이라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

"쉼은 성장의 필수 조건"…시선 바꿔야

실질적 지원 외에 사회적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창 일할 나이에 쉬어서 어떡하니"라는 무례한 걱정보다는 쉼의 시간을 어떻게 성찰과 성숙의 계기로 전환할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2024년 11월에 발간한 '쉬었음 청년 지원 방안' 지방자치 정책 브리프에 따르면 청년들은 '쉬었음' 기간을 불안하면서도 필요한 시기로 인식하는 반면, 부모들은 이를 무의미한 시간으로 인식한다.

모 본부장은 쉬었음 청년이 사회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공감-객관적 수용-긍정적 수용의 단계를 잘 거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첫 번째 공감 단계는 "네가 힘들어서 쉬는구나"라고 감정적 연대를 표하는 것이다. 두 번째 객관적 수용은 "쉬는 것도 괜찮다"고 현 상황을 인정하는 것, 세 번째 긍정적 수용은 "쉼이 너를 더 성숙하게 하겠구나"라고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모 본부장은 "쉼이 없는 성찰은 없다"며 "쉼은 성숙의 필수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realk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