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워서 눕지도 못해" 쪽방촌 폭염 지옥…에어컨은 그림의 떡
서울 낮 최고 37도·밤에는 열대야…"잘 때도 문 열어놔"
집주인 눈치·전기세 부담…쿨링포그·무더위 쉼터도 한계
- 신윤하 기자, 한수민 수습기자
(서울=뉴스1) 신윤하 기자 한수민 수습기자
"너무 더워서 잘 때도 집 문을 그냥 열어 놔."
서울 낮 최고 기온이 37도에 육박한 3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이곳에 사는 김선학 씨(52·남)는 "창문도 다 떼어 두고 선풍기를 계속 틀고 지낸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김 씨의 방문은 문고리에 끈을 매달아 계속 열려 있도록 고정된 상태로, 하루종일 방문을 연 채 생활한다고 했다. 외부인의 침입에 대한 걱정보단 지금 당장 더위로 인한 고통이 더 컸기 때문이다.
이날 취재진이 찾은 동자동 쪽방촌 방들은 환기가 되지 않아 외부보다 내부가 덥고, 퀘퀘한 냄새가 진동했다. 에어컨 없는 방들이 대부분이었고 오래된 선풍기가 달달 돌아가는 소리만 울렸다. 쪽방에 들어앉은 주민들 얼굴엔 하나같이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환기되지 않는 쪽방촌에서 선풍기는 무용지물이었다. 주민들은 어떻게든 내부 열기를 내보내고자 방문을 활짝 열어둔 채 생활하고 있었다. 방문을 열어둔 이 모 씨(42·남)는 "여기 바닥이 보일러 틀어놓은 것처럼 뜨거워서 누울 수가 없다"며 "샤워실에서 하루에 4~5번씩 씻는다"고 했다.
쪽방촌 주민들에게 에어컨은 '그림의 떡'이었다. 14세대가 사는 한 건물에서 에어컨이 설치된 방은 단 3곳 뿐이었다. 낡은 건물 구조상 설치가 어렵기도 하고 집주인의 눈치가 보여 에어컨 설치를 포기한 세대가 많았다. 막상 에어컨이 설치된 집도 전기세가 부담이라 자유롭게 틀기엔 한계가 있었다.
한 쪽방촌 주민은 "여기 사는 사람들이 다 약 먹고 허리 아픈 환자들이라 1년에 30명은 죽어나간다"며 "(집주인이) 벽도 못 뜯게 하고 에어컨을 설치 못하는 집이 많으니까 국가에서 의무적으로 에어컨 설치를 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에어컨이 설치된 쪽방에 사는 이금철 씨(79·남)는 "현찰로 직접 48만원 주고 에어컨을 설치했는데, 여기 건물엔 (14세대 중) 세 개 방만 에어컨이 설치돼 있다"고 설명했다. 에어컨이 없는 집에서 지내는 주민들은 각자 더위를 날 공간을 찾아간다고 했다. 이 씨는 "지하도 아래 교회에 에어컨이 틀어져 있어서 예전엔 나도 거기서 쉬곤 했었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동자동 쪽방촌에 쿨링포그를 설치하긴 했지만 많은 주민들이 이용하진 않았다. 쿨링포그는 미세한 물안개를 분사해 주변 온도를 낮추는 기계다. 쪽방촌 쿨링포그는 계속 물을 뿜어내는 게 아니라 몇 초간의 정지 시간이 있어, 바로 밑에 서있어도 땀이 연신 났다. 주민들은 쿨링포그가 더위를 식히기엔 역부족이라고 설명했다.
쪽방촌 인근 새꿈 어린이공원에서 더위를 식히던 주민 50대 A 씨는 "쿨링포그 쪽으로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이 다 날아가 버리고 말아서 시원하지 않다"며 "완전 찜통이고 더우니까 바깥으로 많이 나오는데 국가에서 에어컨 설치 좀 해줬으면 한다"고 토로했다.
인근엔 에어컨이 가동되고 샤워실·세탁실을 사용할 수 있는 무더위 쉼터가 있었지만 이를 이용하는 주민들도 별로 없었다. 쪽방촌에 거동이 불편한 주민들이 많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쪽방촌 주민들 특성상 공동공간을 찾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이용시간이 낮에만 한정돼 있단 점도 한계로 꼽혔다.
50대 주민 이 모 씨는 "이사 온지 얼마 안돼 주민들도 잘 모르고, 무더위 쉼터는 좀 어색해서 잘 안 간다"며 "방 안은 공기가 너무 답답해서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고 문을 열어둘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다른 주민은 "무더위 쉼터는 운영 시간이 정해져 있어 잘 안간다"고 했다.
특히 회원제로 이용되는 경로당과 복지관 등은 무더위쉼터로 운영되더라도 쪽방촌 주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기엔 심리적 장벽이 있어보였다. 무더위쉼터로 지정된 남영동 동자경로당에서 만난 80대 B 씨는 "여긴 거의 경로당 회원들이 오고, 쪽방촌 주민들보단 집 주인들이 온다"고 설명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서울의 밤 기온은 전날(2일) 오후 6시부터 이날 오전 6시까지 26.5도를 기록하며 12일 연속 열대야가 나타나고 있다. 서울은 지난달 23일부터 폭염특보가 이어지고 있으며, 전날 오후 4시 기준 서울에서 발생한 온열질환자는 총 162명이다.
한편 서울시는 시내 5개 쪽방촌에 무더위쉼터 7곳과 밤더위대피소 6곳을 운영하고, 노약자와 만성질환자 등 특별보호대상 주민 141명을 집중 관리하기로 했다. 7~8월에는 주말과 공휴일에도 무더위쉼터도 개방한다.
sinjenny9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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