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소 분리' 숙원 눈앞…경찰, 檢과 자존심 싸움 그만둘 때[이승환의 로키]

편집자주 ...영어 단어 로키(lowkey)는 '사실은' '은근히' '조용히' 등을 뜻합니다. 최근 영미권 MZ세대들 사이에선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은근히 표현할 때' 쓰입니다. 솔직하되 절제된 글을 쓰겠습니다.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기자: 검찰에서 경찰의 영장을 반려했는데 영장을 재청구할 계획이십니까.

경찰 관계자: '반려'란 단어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과 검찰이 '대등한 관계'가 됐는데 반려란 단어를 쓰지 마십시오.

지난 2021년 초, 경찰청에서 열린 '한국토지주택공사'(LH) 발 부동산 투기 사건 백브리핑 당시 질문과 답변이다. 경찰은 전국적인 관심을 받던 이 사건을 수사했다. 경찰은 주요 피의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은 그 영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이 경찰의 영장을 수용하지 않을 때 통상 '반려'라고 표현한다. 반려란 주로 윗사람 또는 상급기관이 아랫사람 혹은 하급기관이 제출한 문서를 처리하지 않고 되돌려준다는 의미로 쓰인다. 경찰 관계자가 '반려'란 표현에 정색한 것은 법률상 검찰이 경찰의 상급기관이 더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경찰로서의 자존심과 자부심이 담긴 모습이었다.

경찰 수사에 대한 검찰의 지휘권을 폐지하고 검경을 대등한 관계로 설정한 수사권 조정(개정 형사소송법·검찰청법)이 그해 시행됐다. 수사권 조정은 수사·기소 분리를 완성하기 위해 주축돌을 놓는 '검찰 개혁 시즌 1'이었다. 경찰 수뇌부는 "수사·기소 분리는 경찰의 숙원"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1954년 제정 당시 검사의 수사·기소권이 명문화된 형사소송법을 대수술하는 수사 구조 개혁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시즌 1'이 마무리됐고, 5년 뒤인 이재명 정부에서 '시즌 2'가 본격화해 결실을 봤다. 검찰청 폐지법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공소청 설치법, 공소청 검사의 보완수사권 폐지법 등 이른바 '검찰개혁 4법'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모두 넘으면서 수사·기소 분리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그렇다면 검찰개혁 시즌 2는 마무리된 걸까.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법조계에선 기대보다 우려가 훨씬 크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물론 이재명 대통령 또한 검찰개혁의 마지막 퍼즐인 보완수사권 폐지에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낸 바 있다. 검찰개혁을 주도했던 여권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번 형사소송법 개정안에는 수사·기소 분리에 따라 검찰의 수사권을 폐지하고 '경찰로 수사 주체를 일원화한다'는 조항이 있다. 여기서 질문을 하나 던져야 한다. 경찰은 '수사 주체'로서 검찰개혁에 따른 수사 공백을 메울 준비가 돼 있을까.

'검찰 개혁 시즌 1' 이후 어땠는지 살펴보면 간단한 문제가 아님이 확인된다. LH발 부동산 투기 사건 등 경찰의 권력형 비리 수사가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책임 수사 권한은 커졌는데 수사 인력이 부족하다는 내부의 하소연이 터져 나왔다. 수사에 잔뼈가 굵은 수사관들이 잇달아 경찰을 떠났다. 2024년 9월엔 업무 부담을 호소하는 수사 부서 경찰관이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경찰과 사건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수사 보고서를 받아 봤는데 경찰도 기가 막히게 보고서를 잘 쓰더라고요. '이 정도면 구속영장 쳐도 되겠다' 싶었죠. 그런데 경찰은 영장을 치지 않고 사건을 끌더라고요. 윗선에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느낌이었습니다."

현재 경찰은 13가지 의혹에 휩싸인 '김병기 의원 사건'을 1년째 수사하고 있다. 증거 인멸 가능성이 있는 주요 사건의 경우 통상 신병 확보 시도가 신속히 이뤄진다. 그러나 김병기 사건 수사는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 경찰이 여당 원내대표 출신인 김 의원에게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고개를 든다.

부실 수사 의혹을 받는 '장윤기 사건'(광주경찰청 관할 사건)은 검찰개혁 시즌에 도리어 경찰 개혁의 필요성을 부각하는 계기가 됐다. 경찰의 수사 전문성 부족과 암장 우려를 강하게 제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설득력을 더해줬다. 경찰 내에서도 "수도권과 지방 경찰 간 수사 전문성과 직업의식 수준의 간극이 너무 크다. 이건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모 시도경찰청장)는 지적이 제기됐다.

오는 10월 검찰개혁 법이 시행되면 검찰청 폐지와 함께 수사와 기소가 분리돼 경찰은 책임 수사를 해야 한다. 숙원을 이룬 경찰은 앞으로도 검찰과 자존심 싸움을 이어갈 것인가. 검찰개혁에 반대하다 법안 통과 직전 찬성으로 돌아선 한 여권 인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검찰의 보완수사권이 유지되면 검사가 직접 수사할 여지도 남는다. 그렇게 되면 검찰이 수사 노하우를 쥐고 경찰에 전수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2021년 수사권 조정 이후에 그랬다. 그래서 이번에 보완수사권 폐지에 찬성했다. 경찰도 보완수사 요구권을 가진 검찰과 사건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검찰로부터 배울 건 배워야 한다."

mrle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