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지고 과격해진 '개표소 봉쇄 시위'…일대 '요새화' 흐름

필요 물자·인력 상황 온라인으로 공유하며 조직화
체육단체 업무마비, 현장 갈등 커져…"폭행 엄중 조치"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집회가 계속되는 1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개표소 앞에 시민들이 모여 재선거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6.6.10 ⓒ 뉴스1 이호윤 기자

(서울=뉴스1) 권진영 유채연 기자 김범수 수습기자 = 출구마다 쌓인 1.5리터 생수팩, 모기 퇴치제 등이 놓인 천막, 쓰레기통과 화장실 방향을 가리키는 팻말들…. 야영장이 아닌 서울 송파구 개표소로 지정된 올림픽공원 핸드볼 경기장 일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12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인한 개표소 봉쇄시위가 일주일 넘게 지속되며 경기장 일대가 요새화되고 있다.

생수 지원은 너무 많아 '포화'…온라인 타고 조직화

경기장 일대에는 시위를 지속하기 위한 일상 인프라가 속속 갖춰지고 있다. 현재 시위자들은 10개 출구 앞에서 쪽잠을 자며 철야 농성을 벌이고 있다.

시위 첫날이었던 지난 5일까지만 해도 시위자들은 근처 편의점에서 산 음료와 아이스크림 등을 나누던 수준에 그쳤으나 며칠 새 푸드트럭·커피차·의료부스·냉난방 쉼터 차량까지 등장했다.

시위자들은 온라인을 통해 필요 인력과 물자를 공유한다. 지난 10일 기준 1-3 출구 앞 물품지원소 수량 목록을 살펴보면 물·핫팩·포도당 캔디·모기 기피제·일반쓰레기봉투·의료용품 등은 '포화' 상태였다. 반면 돗자리·태극기·모기 패치·담요 등은 '부족'으로 분류됐다.

지난 11일에는 "봉사자 활동에 쓰는 핸드폰·전자기기 충전이 많이 필요하다. 올림픽공원 내 전기를 함부로 끌어다 쓸 수 없어 보조 배터리 충전으로 연명하고 있다. 전기 충전 지원 많이 해주시길 바란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 밖에도 경기장 출입자에 대처하기 위한 △현장 대응 지침 △부당한 경찰과의 대응 방법 등 매뉴얼 등이 공유됐다.

문제는 이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불확실한 정보 역시 사실인 양 유포된다는 점이다.

지난 9일 경기장 내 사무실에서 노트북을 가져가기 위해 2-4 출구로 진입을 시도했다가 발길을 돌린 체육단체 관계자는 커뮤니티상에서 '무단 침입자', '선관위 직원'으로 신분이 와전됐다.

시위자 커뮤니티에 공유된 현장 물자 상황과 경찰대응 매뉴얼 갈무리
"재선거" 단일 구호 다변화…위협 사례도 늘어

시위자들의 메시지에도 변화가 생겼다. 당초 이들은 지난 5일 "재선거" 단일 구호로 시위를 시작했지만 이후 "부정선거" 등이 추가됐다. 2일차인 지난 6일에는 참정권 수호에 집중해야 한다는 내부 여론에 구호가 '재선거'로 통일되는 듯했으나 주말을 지나 평일로 접어들며 "부정선거·재선거, 당일 투표·수개표"로 정착했다.

시위자들이 작성한 '2026.06.10 안내'에는 "현장에서는 참정권·재선거·수개표·부정선거 등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한다. 결론은 참정권을 지키기 위한 외침이니 각자의 표현 방식을 존중하며 서로를 향한 비난은 삼가달라"라고 적혀 있다.

개표소 봉쇄 시위자들이 '멸공', '스탑 더 스틸' 등 피켓을 들고 일대를 걸어다니고 있다.

이런 까닭에 현장에는 종종 "X재명 사형" "CCP OUT(중국 공산당 물러가라" "멸공" 등을 외치는 이들도 등장한다. 성조기는 물론 미국 부정선거론자들의 구호인 'Stop the Steal(스탑 더 스틸)' 피켓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과격한 구호보다는 참정권 수호에 집중해야 한다는 시위자들도 일부 존재한다. 지난 10일 경기장 내 사무실에서 노트북을 가지고 나오려던 한 체육단체 관계자가 시위자들에게 막히자 한 30대 남성은 "이러면 우리가 그냥 극우집단이 돼버린다"고 중재에 나섰다.

이를 지켜보던 대학생 오 모 씨(25·남)는 "우리가 폭도가 되지 않으려면 경찰과의 협상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갑자기 웬 유튜버가 깽판을 쳐 무산되고 또 싸움이 났다"고 푸념했다.

11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열린 핸드볼경기장 입주 체육단체 직원들의 업무 정상화 호소문 발표 기자회견 도중 한 여성이 기자회견을 가로막으며 항의하고 있다. 2026.6.11 ⓒ 뉴스1 오대일 기자

특히 출입자들에게 신원 확인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시위자들은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대진연(한국대학생진보연합) 소속으로 몰려 '프락치'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실제로 경찰은 지난 7일 시위 도중 다른 시위자에게 "너 대진연이지?"라고 의심하며 얼굴 등을 때린 60대 남성을 폭행 및 명예훼손 혐의 진정 건으로 조사 중이다. 지난 8일에는 시위 현장에서 여성을 불법 촬영한 남성이 현행범 체포됐으며, 지난 11일에는 체육단체들의 출입 요구 기자회견 중 여성 시위자가 난입했다가 이격조처됐다.

현장 경찰에 대한 공격도 이어지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8일까지 시위 현장 근무 중 부상한 경찰은 5명으로, 시위자들에게 '중국 공안', '가짜 경찰' 취급을 받았다.

경찰 내부적으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송파경찰서장은 11일 "경고 후에도 과도한 폭행 등 물리력(유형력)을 행사하는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현행범 체포를 포함한 현장 검거를 적극 검토하는 등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히 조치하도록" 일선에 지시했다.

realk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