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열 39주기, 캠퍼스 채운 추모 행렬…"두려움 이겨냈던 평범한 청년"

중국인 여행객도 추모…"영화 '1987'로 알게 돼…천안문 사태 연상"
연세대 이한열동산서 추모식…추모객 분향소 발길 이어져

9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이한열동산에서 열린 제39주기 이한열 추모식에서 이승찬 제39주기 이한열학생추모기획단장을 비롯한 학생들이 이한열 열사 영정을 옮기고 있다. 20256.6.9 ⓒ 뉴스1 김진환 기자

(서울=뉴스1) 권준언 기자 윤지오 수습기자

"이한열이 최루탄을 맞고 동료 학생에게 부축받는 장면이 중국 천안문 사건 당시 탱크를 막던 학생들과 시민들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1987년 6월 항쟁의 상징, 고(故) 이한열 열사의 39주기인 9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학생회관 앞 분향소에 발걸음을 멈춘 중국 허베이성 출신 장창수이(30)는 이같이 말했다. 한국 여행 중 우연히 연세대를 찾았다는 그는 영화 '1987'을 보고 이 열사를 처음 알게 됐다고 했다.

이날 연세대 캠퍼스 곳곳에 마련된 이 열사의 분향소에는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점심시간인 오후 1시쯤 학생회관 계단을 오가던 학생들은 분향소에 들러 책자를 살펴보거나 이 열사의 사진 앞에서 묵념했다. 학생회관 인근 분향소 방명록에는 '마음속에 잊지 않겠습니다' '빚지고 살아갑니다. 영면하소서' '민주주의를 위해 감사합니다' 등 문구가 적혀 있었다.

장난을 치며 분향소 앞을 지나던 학생들도 책상 앞에서는 진지한 표정으로 추모 문구를 남겼다. 외국인 유학생들도 멈춰 서 사진을 찍거나 안내 문구를 번역해 읽었다.

연세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신주은 씨도 친구와 함께 분향소를 찾았다. 신 씨는 "6월 9일이 일상 중 하루라고 생각했는데 학생회관에 크게 걸린 포스터를 보고 오늘이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은 날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민주화를 위해 힘써주신 분이기 때문에 모두 빚지고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이날 오후 2시에는 연세대 이한열동산에서 '제39주기 이한열 추모식'이 열렸다. 추모식은 검은 옷을 입은 연세대 재학생들의 입장으로 시작됐다. 이 열사의 학과 후배인 연세대 상경대학 학생들이다. 매년 6월이면 상경대학 학생들이 모여 '이한열추모기획단'을 꾸린다.

제39주기 이한열학생추모기획단장을 맡은 이승찬 씨가 선두에서 이 열사의 영정을 들고 추모식장으로 들어섰고, 검은 티셔츠를 입은 학생 30여 명이 뒤따랐다. 이들은 이한열동산 기념비 앞에서 조용히 묵념했다.

윤동섭 연세대 총장은 추모사에서 "이한열 열사의 삶과 희생은 한 개인의 아픔에 머무르지 않고 이 땅의 민주주의를 자라게 할 생명의 씨앗이 됐다"며 "연세대는 이 열사의 뜻이 캠퍼스 안에 머무르지 않고 학생들의 삶과 우리 사회의 미래 속에서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우상호 강원도지사 당선인이 9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제39주기 이한열 추모제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2026.6.9 ⓒ 뉴스1 김진환 기자

6월 항쟁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우상호 강원특별자치도지사 당선인도 추모사를 했다. 우 당선인은 이한열기념사업회 전직 이사장이기도 하다. 우 당선인은 "오늘 우리가 추모하는 것은 단순히 이한열 군의 죽음이 아니라, 이 사람으로 인해 우리가 두려움을 이겨냈던 그 시기에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것이 이 나라 민주주의 회복에 어떤 역할을 했는가를 느끼는 일"이라고 말했다.

1966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난 이 열사는 광주 진흥고를 졸업한 뒤 1986년 연세대 상경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해 이듬해 동아리 '만화사랑'에서 활동했다. 그는 1987년 6월 9일 연세대 정문 앞에서 열린 '6·10 총궐기를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직격 최루탄에 맞아 쓰러졌고, 최루탄 파편에 의한 뇌 손상으로 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같은 해 7월 5일 숨졌다.

이 열사의 피격과 투병 소식은 전국적인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고, 6·29 선언과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됐다. 이 열사는 1987년 7월 9일 '애국학생 고 이한열 열사 민주국민장'을 치른 뒤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됐다. 2005년 9월 30일에는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됐다.

e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