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내거야" 엇나간 가족주의…韓 '왕따 부모' 특히 많다

[왕따부모] ②2년간 아들과 2박3일 만남 갑작스레 끊겼다
자녀 정기적 만남 비양육 부모 11.8%…면접교섭 논의 필요

편집자주 ...이혼했다고 자녀와 천륜이 끊기는 건 아닌데, 어느날 '왕따'가 된 부모들이 있다. "너 아빠랑 놀면 엄마 죽어" "엄마가 너 버린 거야" 양육부모의 갖가지 가스라이팅 속에 아이들은 비양육부모에게서 등을 돌린다. 원인도 모르는 '부모 따돌림' 속에 혼자가 된 부모는 여전히 아이를 사랑하지만 만날 수가 없다. '엄마·아빠를 보기 싫다'는 아이의 말은 진심일까? 아이도, 부모도 불행한 세상의 이야기. 뉴스1이 한국의 부모따돌림 실태와 원인, 개선 방안을 심층 취재했다.

ⓒ 뉴스1 김지영 디자이너

(서울=뉴스1) 유채연 신윤하 강서연 기자

"천륜을 하루아침에 지울 순 없는 거잖아요."

박정태 씨(가명·45)가 친구 같은 아들과 만나지 못하게 된 것은 아들의 성(姓)을 바꾸겠다는 전 아내의 요구를 거절하면서부터였다. 3년 전 정리한 아내와의 관계와는 별개로 2년간 꾸준히 아들과 면접교섭을 진행해 온 박 씨에게 '면접교섭을 안 해주겠다'는 일방적인 통보는 청천벽력 같았다.

박 씨와 아들은 함께 살지 않아도 마음만은 가까웠다. 그림에 재능 있는 아들이 카톡으로 그림을 자랑하면 박 씨는 아들의 그림을 영상으로 제작해 보내주곤 했다. 박 씨의 사진첩엔 함께 게임을 하거나 극장, 놀이공원, 수영장, 축구장, 전시회에 놀러 간 사진이 빼곡하다.

가족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아내의 채무 문제로 이혼하게 됐지만, 이혼 후에도 자녀의 학업 문제에 관해 시시때때로 논의했고 가족 행사에도 함께했다. 양육비는 물론 이혼 후에도 월급의 70~80%를 전 아내의 생활비, 보험료, 공과금 등으로 성실히 지급해 왔다.

계속될 줄 알았던 일상은 아내가 유산 상속을 위해 아들의 성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 순간 뒤틀리기 시작했다. 아이와 떨어져 지내는 박 씨에게 성(姓)은 그와 아이를 잇는 천륜의 징표와도 같았지만 아내는 막무가내였다. <em class="article_content_endem">'아이를 소유물로 보고 있구나, 아이를 도구화해서 재산 싸움을 하려는 거구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아들이 성을 변경하는 걸 정말 원하는지 본심조차 물어볼 수 없었다. 박 씨가 끝까지 반대하자, 2년간 계속해 오던 2박 3일 '숙박면접'이 한순간 뚝 끊겼기 때문이다. 카톡으로 자신이 그린 그림을 자랑하던 아들은 어느 순간 박 씨의 카톡에 답장하지도, 전화를 먼저 걸어오지도 않기 시작했다.

제도까지 침투한 가족주의…이혼 후 유독 자녀 못 만나는 한국 부모

양육부모가 아이를 소유물처럼 뺏어가며 비양육부모와 만나지 못하게 하는 박 씨의 사례는 유별난 게 아니다. 한국의 부모따돌림 피해 부모들이 비슷한 경험을 한다.

지난해 3월 성평등가족부가 발표한 '2024년 한부모가족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양육부모 대부분 법적인 양육권(97.8%)을 가지고 있으나 자녀와 비양육부모가 '정기적으로 만난다'는 비율은 11.8%에 불과하다.

정당한 권리가 있음에도 자녀를 정기적으로 만나는 부모는 10명 중 한명 수준인 셈이다.

다만 이마저도 양육권과 양육비 지급에 초점을 맞춘 조사로 '부모따돌림'에 관한 구체적인 통계는 부재하다. 박 씨의 사례처럼 양육비를 내고, 자녀와 원만한 관계를 맺고 있었음에도 자녀와 만나지 못하는 부모가 얼마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이와 관련한 통계를 관리하고 있는 해외의 사례를 보면 이혼 가정이더라도 부모와 자녀와의 정기적인 만남을 가지는 비율이 한국 대비 수 배 높다.

영국 켄트대학 티나 혹스(Tina Haux) 연구팀은 2015년 영국에서 별거 중인 가정의 아버지(separated fathers) 60%는 최소 1~2주에 한 번씩 그들의 자녀를 본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아일랜드 중앙통계청이 아일랜드 거주 3세 아동과 그 부모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비거주 부모의 절반 이상(51.8%)이 한 달 중 7박 이상을 자녀와 보낸 것으로 파악됐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면접교섭 이행률이 낮은 데에는 사법 제도적 요인과 한국의 가족주의 특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송미강 부모따돌림방지협회 대표는 "우리나라는 제도적으로 단독 양육 제도를 더 지향하고 있다"며 "제도적으로 한쪽 양육자를 지정하게 돼 있다 보니 부부 간 갈등이 깊거나 아이에 대한 소유 욕구가 강한 배우자는 다른 배우자를 아이의 삶에서 떼어내고 자신의 원가족(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같이 보낸 가족)으로 편입시키려는 생각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박정태 씨가 아들에게 보낸 메시지. 답장은 받지 못했다. (박정태 씨 제공)
'부모와 자식은 한몸' 아이 행동 통제…면접교섭 논의 시작할 때

이는 우리나라의 문화적 특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부모와 자식이 독립된 하나의 존재라기보다는 같은 몸이라고 생각해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기보다 부모가 자식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며 부모의 기대를 강요하다 가정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특성이 한국에서 강하게 나타나는 편이라는 것이 허 교수 설명이다. 그는 "가족은 완전히 한 몸체라는 유교주의적 전통과 가부장적인 문화, 한국 사람들의 정의적(emotive meaning·정서유발하는 기능을 하는 말, 문장)인 특성 등이 작용했다"며 "이러한 특성이 아직 우리 사회에 작동하다 보니 부모가 아이의 자기결정권을 인정 안 하고 아이들의 행동을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혼 과정에서 자녀에게 로열티를 받으려 요구하는 행위들이 비일비재하다. 자녀가 누가 더 친밀한지가 양육권 경쟁에서 중요한 내용"이라며 "우리나라의 경우 이혼이 많아지고 있음에도 이혼 이후 과정에 대해 모른 척하는 문화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정 교수는 "그 과정에서 양육비 문제가 먼저 공론화되기 시작했으나 어떻게 보면 아동 권리 측면에서는 면접 교섭이 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아직 '면접 교섭'을 위한 논의 제반조차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 교수는 "부모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아이 입장에서 굉장히 치명적인 권리 침해"라며 "아이들이 주체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면접 교섭에 대한 논의가 너무 적게 다뤄져 왔다"고 했다.

그는 "급한 것들부터, 성인 위주로 하다 보니 양육비가 먼저 고려됐으나 부부간 양육비 싸움이 있다 보니 면접교섭까지 (논의가) 가지 못했다"며 "양육비 이행관리원에서 선지급제를 시행하고 있으니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은 마련된 셈"이라고 했다.

허 교수는 "항상 몸과 마음을 같이 하는 것이 가족주의가 아니다"라며 "부모의 사회적 관계가 변화했다고 해서 자식한테 부모의 의미가 달라지는 게 아니다. 두 사람의 사회적 관계는 변했어도 제삼자인 아이와의 관계는 유지가 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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