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썬' 이후 강남서 대폭 물갈이…"보여주기식 인사만으로 해결 안 돼"
강남서 청탁 등 문제 반복…경찰 수사 신뢰 확보부터
반복되는 유착 끊기엔 역부족…구조적 해결책 모색해야
- 권진영 기자
(서울=뉴스1) 권진영 기자 = 서울 강남권 수사과 지휘부가 대거 물갈이됐다. 2019년 '버닝썬' 사태 이래 가장 큰 규모다. 특히 '인플루언서 수사 무마 의혹'이 불거진 강남경찰서는 수사·형사과장 전원이 지방청 인사로 채워지는 초강수 조치가 이뤄졌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보여주기식 인사만으론 반복되는 수사 비위를 끊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은 지난 12일 '2026년 상반기 경정급 정기인사 발령'을 내고 강남서·서초서·송파서·수서서 수사과장을 전원 교체했다. 지난 2024년 강남서 소속 송 모 경감이 유명 인플루언서 양정원 씨의 남편 이 모 씨로부터 수사를 무마시켜달라는 청탁을 받았다는 의혹이 보도된 지 40여 일 만이다.
앞서 국가수사본부(국수본)는 "유착 의혹과 관련, 강남권 수사 부서에서 경정·경감급에 대한 근무 기강을 포함한 내부 평가를 고려해 순환 인사를 실시하겠다"고 예고했다. 대상자로는 강남서·서초서에서 2년 이상 근무한 경정, 강남서에서 3년 이상 근무한 경감 등이 거론됐다.
가장 고강도 인사가 이뤄진 강남서의 경우 수사1과장에 경북경찰청에서 전입한 손재만 경정이, 수사2과장·3과장은 경기남부청에서 전입한 유민재·채명철 경정이 임명됐다.
배상훈 우석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청과 청 사이 이동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수사 무마 사건과) 무관한 이들을 데려왔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라며 "수사 전문성보다는 보여주기식이다"라고 평가했다.
김영식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조직 내부적으론 청탁 등 관행에 대한 경고 시그널을 주는 효과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버닝썬 사건·룸살롱 황제 이경백 사건 등 강남서는 그동안 여러 번 (쇄신) 타깃이 돼 왔지만 문제가 반복되는 걸 알면서도 이 정도 수준의 조처밖에 하지 않는 것은 실망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강남서는 지금까지 여러차례 수사 비위·유착 의혹에 휘말렸다. 경찰은 그때마다 책임자를 처벌하고 때로는 대규모 인사 교체를 단행했지만 조직 기강은 잡히지 않았다.
1998년엔 강남서 전·현직 경찰관 5명이 유흥업소 불법 영업 단속 정보를 흘려준 대가로 금전 상납을 받았다가 적발돼 경위·경사 총 902명이 전보됐다. 2009년에는 안마시술소 단속을 무마 사건이 터져 600여 명이 타서로 인사 조처됐다.
이어 2011년엔 '룸살롱 황제'로 불리던 이경백 씨에게 뇌물을 받은 전·현직 경찰관 18명이 구속되는 등 유착 의혹이 불거졌다. 2015년에는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정운호 게이트' 사건을 맡은 지능범죄수사과장이 법조 브로커에게 수사 무마를 대가로 뒷돈을 받았다가 징역형에 처했다. 2019년엔 경찰 8명이 미성년자 출입 사건을 묻는 대신 버닝썬 등 클럽들로부터 금전을 수수했다가 100명이 물갈이됐다. 각종 수사 무마의 악몽은 2024년 인플루언서 양정원 씨의 사기 혐의 수사 무마 사건으로 되살아났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올해는 수사권 조정과 관련된 구도 변화를 시행해야 할 첫 해"라며 "경찰이 수사를 실제로 효율적이고 공명정대하게 잘 한다는 국민의 신뢰 수준이 높아지지 않는다면 경찰 조직 전체가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검찰개혁으로 인해 공소청 신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이 설립 준비 단계를 밟는 등 경찰 수사권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빠른 신뢰 회복에 조직의 명운이 달려 있다는 것이다.
곽 교수는 "지방청에서 바로 강남서 수사라인 과장으로 온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영광일 수도 있지만, 조직의 한 사람으로서는 독배를 든 심정일 수 있다. 국민의 눈높이, 법 감정을 항상 염두에 두고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수사를 하겠다는 각오를 행동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경찰 개인의 청렴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각종 유착에 노출되기 쉬운 강남서를 감시할 구조적 해결책도 함께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최근 모 경찰 전용 커뮤니티에는 "우리 팀장은 삼성동 소고깃집도, 프랜차이즈 소고깃집도, 가락시장의 소고깃집도 좋아한다. 그중에 제일 좋아하는 것은 사건관계인이나 변호사가 사주는 것"이라며 "나는 1과에도 2과에도 3과에도 있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김영식 교수는 "계급정년제 영향으로 승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재력가나 정치권력에 가까운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하는 것은 본능"이라며 이는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적 현상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수사·기소가 분리된 후 대한민국 경찰은 청탁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며 "특히 수사 부서에 있어선 소신껏, 독자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외부 영향력을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일환으로 제시한 것이 국수본의 독립적 인사권 확보다. 현재 경찰 인사는 형식적으론 국수본이 주도권을 잡고 있지만 경찰청장 지휘하에 있기 때문에 시·도청장의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건수 백석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외부 심의제도·사건 절차 점검 위원회 등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점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감시의 눈을 경찰 내부뿐 아니라 외부에 둬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런가 하면 배상훈 교수는 "경찰이 서류를 조작하지 못하도록 최소한 기본적인 수사 기록은 공개하는 디스커버리 제도(증거 개시 제도), 경찰 승진 시 담당 사건 목록 및 경력 공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realk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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