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 모텔 살인'처럼 약물 음료…스크린골프장 '승부 조작' 전말

내기 골프 전 향정신성의약품 탄 음료 먹여 피해자 무력화
화면 원격 조작으로 7400만원 탈취…9명 검거·2명 구속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서울=뉴스1) 권준언 기자 = 내기 스크린골프를 하면서 향정신성의약품을 탄 음료를 몰래 먹이거나 화면 방향을 원격으로 조작하는 수법으로 승부를 조작해 수천만 원을 가로챈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약물을 탄 음료로 피해자의 집중력을 떨어뜨리거나 타격 직전 스크린 방향을 바꾸는 방식으로 내기판 승부를 조작한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는 사기와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9명을 검거하고, 이 중 범행을 주도한 2명을 구속 송치했다고 12일 밝혔다. 이들은 지난해 2024년 12월부터 약 3개월간 수도권 일대 스크린골프장에서 내기 게임을 하며 10차례에 걸쳐 총 7400여만 원을 편취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골프 동호인 모임이나 단골 골프장 등에서 재력이 있어 보이는 피해자를 물색했다. 같은 취미를 매개로 자연스럽게 접근해 판돈을 거는 내기 게임 관계로 발전한 뒤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일당은 사전에 약물과 리모컨 등을 준비하고 역할을 나눠 범행했다. 일부 피의자들은 불면증 등을 이유로 향정신성의약품인 로라제팜을 처방받아 범행에 사용했다. 로라제팜은 벤조디아제핀계 약물로, '강북 모텔 연쇄살인 사건' 피의자 김소영이 남성들에게 건넨 약물과 같은 성분이다.

게임이 시작되면 공범 3~4명이 함께 들어가 피해자의 시선을 끌거나 자리를 비우게 해 틈을 만든 뒤 음료에 약물을 타거나 미리 약물이 든 컵으로 바꿔치기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USB 형태 수신기를 컴퓨터에 미리 연결한 뒤 피해자가 타격을 위해 고개를 뒤로 돌리는 순간 리모컨으로 스크린 방향을 좌우로 조작해, 화면이 움직이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게 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이들이 내기 도박의 특성을 이용해 피해자의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승부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조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피해자들이 '본전 찾기' 심리에 빠지면서 피해가 한 차례로 끝나지 않고 반복된 것으로 판단했다.

경찰은 게임 도중 무기력함 등 신체 이상 반응을 느끼고, 평소보다 저조한 결과가 반복되자 승부 조작을 의심한 피해자의 제보로 지난해 5월부터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추가 피해자와 여죄가 있는지도 계속 수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친목 도모를 빙자한 과도한 내기 스포츠는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으며, 타인으로부터 식음료 등을 건네받은 후 평소와 다른 증상이 발생한 경우 마약류 사용 등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면서 "앞으로도 경찰은 국민의 건강과 재산을 해하는 유사 범죄를 엄정 단속하겠다"고 말했다.

e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