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앞 142m 빌딩 '제2 왕릉뷰'…"문화유산인데" vs "구도심 살려야"

35층 높이 세울 수 있게 허용…종묘와 200m 떨어진 재개발 구역
"경관 해친다" "평생 개발 안 할 수도 없는 노릇" 의견 엇갈려

2025 봄 궁중문화축전 이틀째인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묘 영녕전에서 인원황후의 묘현례를 주제로 의례 재현과 뮤지컬을 결합한 창작극 '묘현, 황후의 기록'이 펼쳐지고 있다. 2025.4.27/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서울=뉴스1) 신윤하 유채연 기자 = 서울시가 종묘 맞은편 '세운4구역'에 최고 높이 142m의 고층 빌딩을 지을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제2의 왕릉 뷰 아파트'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시민들과 상인들은 "문화유산의 경관을 해친다", "사람이 많아져 상권이 활성화돼서 좋다"는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문화재 경관 가려져…세계 문화유산인데 서울시가 밀어붙일 일 아냐"

서울시는 지난달 30일 높이 계획 변경을 골자로 한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및 4구역 재정비촉진계획 결정(변경) 및 지형도면'을 고시했다. 이에 따라 세운4구역 종로변 건물은 기존 55m에서 98.7m로, 청계천 변 건물은 71.9m에서 141.9m로 높이가 조정됐다.

청계천 변 기준으론 건물의 최고 높이가 기존의 2배 가까이 높아지는 것으로, 35층 빌딩을 지을 수 있는 수준이다. 세운 4구역의 높이 기준이 변경되는 건 2018년 이후 7년 만의 일이다.

문제는 세운4구역이 종묘 바로 맞은편에 있는 재개발 지구라는 것이다. 종묘는 1995년 우리나라 최초로 등재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왕실 제례가 이어져 온 독자적 경관 가치로 알려져 있다. 높이 계획 변경이 고시된 세운4구역과 종묘 담장은 약 200m 떨어져 있다.

전날(4일) 종묘 인근에서 만난 시민들은 세계적 문화유산의 경관을 고층 빌딩이 해칠 거란 우려를 내놓았다. 4년 전 경기도 김포의 장릉 근처에도 고층 아파트가 지어지면서 이른바 '왕릉 뷰 아파트' 논쟁이 일어난 바 있다.

직장 동료와 산책하던 30대 권 모 씨(여)는 "건물이 높아지면 문화재를 볼 수 있는 경관이 가려진다"며 "회사가 이 앞이고 종묘가 고즈넉하고 좋아서 점심시간마다 산책 오는데, 건물이 들어서면 아무래도 보이는 경관이 달라지지 않냐"고 말했다.

종묘에 데이트하러 온 한 커플은 "세계 문화유산인데 서울시에서 자기들 마음대로 밀어붙일 일은 아닌 것 같다.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한다"고 비판했다.

대전에서 상경해 딸과 종묘를 찾은 이종경 씨(67·남)는 "40층 좀 안 되는 높이면 꽤 높은 거라 반대한다"며 "종묘에 우리 얼들이 살아 계신데 건물이 들어서면 뻗어나가는 민족의 기운도 막힐 것 같다"고 우려했다.

4일 서울 종로구 세운4구역의 모습. 2025.11.4/뉴스1 ⓒ News1 유채연 기자
"평생 개발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재개발 안 하면 상가 다 죽어"

2006년부터 20년 넘게 표류 중인 재개발에 대한 기대감을 내놓는 시민들도 있었다.

서울 강동구에서 종묘로 나들이 온 박 모 씨(20·여)는 "어차피 노른자 땅이라고 불리는 구역인데 평생 개발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결국 도시는 시민이랑 문화가 어우러져서 만들어지는 것이니 빌딩이 들어오는 건 괜찮을 것 같고, 건물이 새로 들어와도 스카이라인을 그렇게 해치진 않을 것 같다"고 봤다.

매주 하루는 모임 때문에 종묘를 찾는다는 70대 조 모 씨(남)도 "파고다 공원, 덕수궁 전부 다 주변에 건물 줄줄이 있는데, 여기도 건물을 지어야 구도심이 살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조 씨와 함께 종묘를 찾은 이 모 씨(남)는 "좋은 건물이 들어서면 관광객이 많이 찾기도 해서 좋은 건데, 그렇지 않고 아파트가 들어서면 곤란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상인들도 인근에 높은 빌딩이 세워지면 유동 인구가 늘어 상권이 활기를 띨 거라며 환영했다.

세운상가에서 23년간 전자상가를 운영해 온 양병학 씨는 "여기 있는 사람들 다 40여년간 버티고 있는데, 재개발을 아직 안 하니까 이쪽 상가도 다 죽어 있는 상태"라며 "고층 건물이 들어오든 저층 건물이 들어오든 우리는 별 상관이 없지만, 일단 사람이 많아져야 (장사가 잘) 되니 뭔가 들어온다고 하면 좋은 소식"이라고 했다.

재개발 구역 바로 앞에서 20년 넘게 장사 중인 박 모 씨(67·남)는 "건물을 올리면 우리는 유동 인구가 늘어나니까 좋다"며 "유동 인구가 좀 있어야 담배 한 갑이라도 더 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찬반 의견이 엇갈리는 만큼 합리적인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무조건 건물을 높이 못 짓는다는 것도 그렇지만, 높이를 마냥 올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며 "충분한 설득이나 합의를 위한 공정한 절차를 거쳐 의사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문화재 주변에 과도하게 위압적인 건물이 들어서는 건 공간 특성에 있어서 그렇게 바람직하진 않을 것"이라며 "지금 상황에선 유네스코와의 관계와 기존 기준의 유효성 등을 신경 써 정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문화유산청은 유네스코 권고 절차인 세계유산영향평가(HIA)가 선행되지 않은 채 초고층 건물이 지어질 수 있게 고시한 서울시에 깊은 유감을 표한 바 있다. 서울시는 세운4구역이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서울 기준 100m) 밖이므로 세계유산법 등으로 규제할 수 없단 입장이다.

sinjenny97@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