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가리 막걸리 재심 무죄에…인권위 "수사·재판서 약자 인권 보호"

"문맹·경계선장애 등 취약성 악용해 자백 강요…형사절차상 기본권 보장 안 돼"
"형사사법 절차 사회적 약자 인권 보장 체계 재정비 필요"

28일 오후 광주고등법원에서 가족과 마을 주민을 살해한 혐의에 대해 재심 재판을 받은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의 부녀가 16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후 발언하고 있다. 2025.10.28/뉴스1 ⓒ News1 박지현 기자

(서울=뉴스1) 유채연 기자 =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지난 28일 광주고등법원의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의 재심 무죄 선고 판결을 두고 "헌법과 국제인권규범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기본권 보장 및 적법절차 원칙 준수의 중요성을 되새길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했다.

안창호 인권위 위원장은 30일 성명을 통해 "수사 당시 자백의 임의성이 확보되지 않았고 강압수사로 인해 형사 절차상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았다는 점을 법원이 인정하면서 무죄를 선고한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안 위원장은 "수사기관의 수사와 법원의 재판, 형 집행 등은 국가의 공권력 행사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수준으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행위"라며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재심 무죄 판결을 계기로 형사사법 절차에서의 사회적 약자 인권 보호가 단순한 시혜적 보호정책이 아닌 헌법적 의무이자 사법 정의의 핵심 요소라는 점을 강조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의 기본적 인권이 충실히 보장돼야 한다"며 "특히 장애인, 아동·청소년 등 취약한 지위에 있는 사회적 약자는 단순히 법률적 절차를 안내받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 이해와 명확한 의사표시가 이뤄질 수 있도록 보호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에 대해서는 "상고 여부 검토에 있어 관행적 불복절차에 따를 것이 아니라 재심이 피고인의 권리 회복에 중심 가치를 둔다는 본질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며 "오판으로 야기된 부녀의 기본권 침해 회복을 최우선으로 상고 여부를 검토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인권위는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의 인권이 더욱 보호될 수 있도록 보다 면밀히 법 제도와 관행을 살펴보고 점검해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등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은 2009년 7월 6일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주민 4명이 청산가리가 혼합된 막걸리를 나눠 마시고 2명은 사망, 2명은 중상을 입은 사건이다.

당시 검찰은 숨진 여성 최 모 씨의 남편인 백 모 씨와 그 딸의 부적절한 관계를 범행동기로 보고 백 씨 부녀를 기소했다.

사건 당시 백 씨는 문맹, 딸은 경계선 지능 장애가 있었다. 이와 관련해 인권위는 "수사기관이 이에 대한 고려 없이 오히려 취약성을 이용해 자백을 강요했고 부녀는 수사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수갑과 포승줄에 결박된 상태로 장시간 수사관의 질문을 받아야 했다"고 설명했다.

또 "부녀는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규정하는 변호인 조력권, 불리한 진술거부권, 피의자신문조서 열람권도 보장받지 못했다"고 부연했다.

두 사람은 1심 재판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2심에서는 백 씨는 무기징역, 딸은 징역 20년을 선고받고 15년간 복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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