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 맞았으면" 캄보디아 범죄 한국인 송환에 피싱 피해자들 분노

진척 없는 수사에 '한숨'…"캄보디아 사태로 괴롭지만 희망도"
피해 보상은 사실상 포기…범죄 수익 환수 대책은

캄보디아 송환 피의자들이 20일 충남 홍성 대전지법 홍성지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이송되고 있다. 이날 홍성지원에서는 충남경찰청에서 사기 혐의로 수사받는 캄보디아 송환자 45명의 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된다. 2025.10.20/뉴스1 ⓒ News1 김기태 기자

(서울=뉴스1) 유채연 기자

"저는 그 사람들이 길 가다 벼락이라도 맞았으면 좋겠어요."

지난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저신용자 대출이 가능하다'는 말에 토스 통장을 만들었다가 계좌가 대포통장으로 쓰였던 A 씨는 "돈은 필요 없으니 (감옥에 들어가) 나오지 말아라"며 분노를 표했다.

A 씨는 지난해 하반기 대출을 알아보던 중 대포통장 제공자가 됐다. A 씨는 "(대출한) 돈을 받는 계좌라고 해서 토스 계좌를 만들었는데, 이틀 사이 1억7000만 원 정도가 통장을 통해 오갔다"고 설명했다.

상대 업체는 A 씨의 신상 정보를 쥐고 각종 협박을 일삼기도 했다. A 씨는 "(돈이 오간 명세를) 보는 순간 눈물이 미친 듯이 났다. 너무 무서워서 경찰에 신고하고 변호사를 선임했는데, 토스에 로그인한 이후 카톡으로 '왜 로그인했냐'고 협박이 왔다"며 "부모님께 전화가 와서 'A 씨 아냐'는 협박이 오고, 직장에도 전화해서 협박하고 저한테도 '장기를 팔아버리겠다. 인신매매로 그냥 보내버리겠다'고 했다. 집 주소까지 다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A 씨는 "지난주 목, 금쯤 '최근 사건과 관련이 있다', '다시 조사한다'고 연락이 왔다"면서 "캄보디아가 터져서 저로서는 다행"이라고 말했다.

22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18일 캄보디아에서 송환된 한국인 64명을 지켜본 사기 범죄 피해자들은 복잡한 심경이다. 이들은 보이스피싱, 로맨스 스캠, 노쇼 사기 등에 연루된 범죄 피의자로 알려졌다.

지난 6월 중순 검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으로 8200만 원의 대면 편취 피해를 본 B 씨는 "캄보디아 사태로 보이스피싱이 사회적으로 이슈화된 점은, 저에게 괴로운 기억이지만 동시에 하나의 희망"이라고 했다.

그는 "(캄보디아 사태로) 정부가 피해자에게도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라며 이유를 설명했다.

B 씨는 "검사를 사칭한 여자 사칭범 음성이 10년 전 금융감독원 유튜브 영상에도 그대로 존재하는 것을 발견했다"며 "10년 전 피싱범이 여태 버젓이 활동하고, 한국인을 상대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정부가 그동안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저를 절망하게 했다"고 했다. B 씨의 사건은 6월 19일 접수된 뒤 3개월 넘게 조사 중이다.

지난 8월 금융감독원·대검찰청·사이버수사대·은행연합회 등 사칭에 넘어가 총 3억 원가량의 금융 갈취를 당한 C 씨는 "캄보디아 사건에 의해 이런 범죄조직이 수면위로 떠올라서 다행"이라며 "범죄조직이 갈취한 자산들을 피해자에게 돌려주고 통신사와 은행에 무분별한 통장, 번호개통에 의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C 씨는 "수사기관은 피해 금액을 돌려받기는 힘들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고 은행도 당신이 직접 이체했기 때문에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은 없다고만 한다"고 하소연했다.

칠순이 지난 어머니가 카드사, 경찰, 검찰, 금융감독원을 차례로 사칭하는 조직적 사기에 당해 총 9000만 원의 피해를 보았다는 D 씨도 "저는 원래 캄보디아 사건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다. 억울한 사람도 많고, 납치·실종된 사람도 많지만, 한편으론 성실하게 생활하지 않는 분들이 범죄인 걸 알면서 가는 사례도 많다"고 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이 한국 사람을 등쳐 먹으려고 그렇게 운영되고 있는 것인데, 가족이랑 연관이 있는 일이 돼버리니 더 와닿게 됐다"고 털어놨다.

윤창렬 국무조정실장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보이스피싱 TF 출범식 및 당정협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5.9.25/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지난 15일 정부는 경찰청을 중심으로 금융위원회·과학기술정보통신부·방송통신위원회·한국인터넷진흥원 등에서 파견된 인력들이 함께 근무하는 '전기통신금융사기 통합대응단'의 출범을 공표했다.

통합대응단 내 가장 많은 인력(71명)이 배치된 신고대응센터는 △신고 및 제보 접수 및 상담 △피해금 환급 등 상담 △통합대응시스템 운영 등을 맡고 있다.

다만 현재 사기 범죄 피해자가 피해를 구제받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D 씨는 "피해 구제가 그래봤자 최대 300만 원이라고 확인을 받았다"며 "국가에서 해줄 수 있는 건 현재는 없고 그마저도 이제 예산이 소진되면 끝나기 때문에 빨리 연락해 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마저도 상황이 나은 편으로, 대부분 피해자는 보상받은 사례가 거의 없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보이스피싱 주체들이 전부 다 외국에 있으면 공조 수사를 하거나 인터폴에 수배하는 정도지 우리나라에서는 (수사를) 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범죄자들도) 알기 때문에 외국에다가 사이트를 두고 하는 것"이라며 "피의자를 잡았더라도 돈이 그 사람에게 없기에 현실적으로 피해에 대한 회복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내다봤다.

오 교수는 "(캄보디아 사태의 경우) 보이스피싱에 어떻게 관여됐다고 하는 것에 관해 얘기를 안 하려 할 것이기 때문에, 안 알려주는 내용들에 대해 수사를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배상훈 우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결국 고질적인 수사관 부족을 해결해야 한다"며 "보이스피싱을 국제 범죄로 보고, 보이스피싱만 수사하는 전문적인 사람들을 50~60명을 모아서 아예 중국의 산둥성이나 캄보디아 범죄 단지 등의 국제 범죄를 수사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존 인력을 차출하거나 겸임시키는 형태가 아닌, 전담 인력의 충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범죄 수익을 위해서도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문이 나온다. 배 교수는 "지금 검찰청 내에 1개 부서 정도가 범죄 수익 환수를 하고 있는데, 미국, 영국 등에는 범죄수익 환수청 같은 곳이 따로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FBI나 금융회계원 등에도 금융 환수 조직이 따로 있는데, 그런 곳들과도 공조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여기에도 그와 비슷한 형태의 조직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범죄 수익의 상당수가 암호화폐이기 때문에, 금융 관련된 암호화폐 전문가나 회계 관련된 전문 수사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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