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 폭탄' H-1B 비자 준비하던 시민들 "1.4억 내줄 회사 어딨냐"

유학업계 "H-1B 문의 완전히 없어질 것"…실리콘밸리도 '술렁'
"H-1B 생각도 말자는 분위기, 비자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열린 골드카드 비자 행정명령 및 전문직 고용 비자(H-1B) 비용 부과 포고문 서명 행사에서 문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2025.09.19. ⓒ 로이터=뉴스1 ⓒ News1 류정민 특파원

(서울=뉴스1) 신윤하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문직 취업 비자인 'H-1B' 비자에 매년 10만 달러(약 1억4000만 원)가 넘는 거액 수수료를 부과한다고 밝힌 가운데, 국내 고급 인력이 미국으로 나가려는 수요가 줄어들 거란 전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날(19일) H-1B 비자 신청 수수료를 10만 달러로 인상하는 포고문에 서명했다. 이는 현재 H-1B 비자 추첨 등록비 215달러와 고용주 청원서(I-129) 제출비 780달러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인상이다. 새 수수료 규정은 현지시간 21일 0시 1분부터 발효될 예정이다.

H-1B 비자는 미국 기업이 과학자, 엔지니어, 프로그래머 등 전문 직종의 외국인을 최대 6년간 고용할 수 있도록 할 때 사용하는 전문직 취업 비자다. 한국인은 1년에 약 2000명 수준이 H-1B 비자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실적으로 개인이 10만 달러를 지불하거나 채용하는 기업이 비용을 내기가 쉽지 않은 만큼, 앞으로 국내에선 H-1B 비자 신청이 급격히 줄어들 거란 게 유학업계의 설명이다.

그간 H-1B 비자는 배우자와 가족에게 H-4 비자가 발급돼 초중고등학교까지 학비가 싼 공립학교에 다닐 수 있는 혜택이 주어져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수수료가 10만 달러에 육박하면, 이 비자를 통해 자녀와 배우자를 동반해 미국에 입국해 교육하려 했던 인력들에겐 비자의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김기동 대한유학협회 사무국장은 "미국에 있는 거의 모든 외국인들이 일반적으로 몇만 달러씩 하는 사립학교에 다니는데, H-1B 비자를 받은 이의 자녀는 일반 공립학교에서 미국의 교육을 무료로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니 한국에서도 신청자가 굉장히 많았다"며 "하지만 H-1B 비자 수수료가 10만 달러로 증가한다면 당연히 지원자가 많이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사무국장은 "자녀가 2명인 가정에서 약 4만 달러씩의 사립학교를 보낸다고 가정해도, 10만 달러를 내야 하는 H-1B 비자로 공립학교를 보내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더 이득이지 않냐"며 "H-1B 비자와 관련한 고객 문의는 완전히 없어질 거라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조지아 구금 사태'에 미국 비자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가운데,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시민들이 미국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2025.9.8/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트럼프 대통령의 포고문 서명 소식이 알려진 후 H-1B 비자를 준비하던 한국인들은 "사실상 H-1B 비자는 포기해야 하는 것"이라는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주재원 비자인 L1 비자를 발급받아 미국에서 일하고 있는 지연우 씨(가명·30·남)는 H-1B 비자로 전환해 영주권을 취득하려 했으나, 이 계획은 사실상 무산됐다고 말했다.

지 씨는 "L1 비자를 받고 5년 안에 영주권을 따는 게 일반적이지만, 혹시라도 못 땄을 경우에는 3~4년 차에 H-1B 비자로 바꿔서 영주권 취득을 진행한다"며 "그런데 이제 H-1B 비자가 사실상 막혔으니 나같이 주재원 비자를 받은 이들이 5년 안에 영주권이 해결되지 않으면, 무조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 백악관이 기존 H-1B 비자 보유자에게는 수수료 인상 정책이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현지 IT 업계 한국인 종사자들은 불안에 휩싸여 있다. 지 씨는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한국인들끼리 'H-1B 비자는 생각하지 말아야겠다'고 술렁이는 분위기"라며 "당장 쫓겨나지는 않겠지만 비자 정책이 어떻게 될지 다들 불안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 체제에서 비자 정책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유학을 준비하거나 해외 취업을 준비하는 한국인들이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를 택하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미국 유학을 준비하던 강 모 씨(34·남)는 "최근에 유학 국가를 미국에서 영국으로 바꿨다"며 "트럼프가 비자 정책에서 압박을 강화할 거라 생각해서 그런 거였는데, 잘한 결정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미국 유학·취업 관련 국내 최대 커뮤니티인 네이버 카페 '미준모'에도 "유학생 입장에서 H1-B 수수료 인상 때문에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음주에 이직하는 회사 변호사에게 서류제출 해야 하는데 갑자기 이 일이 터져서 멘붕 상태다" "일회성이라도 10만 달러 내고 취업비자 신청해 줄 회사가 얼마나 될까" 등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전문가는 이번 조치로 인해 미국 기업에 취업하려는 우리나라 인력이 위축되고, 미국으로 향하던 국내 고급 인력들의 미국 선호도가 낮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 교수는 "미국 기업에 취업하려는 우리 인력도 위축이 되면서 결국 미국의 인력 수급에 영향을 미칠 텐데, 이는 결국 고급 인력들이 중국 같은 또 다른 나라로 빠져나가게 하는 미국의 자충수가 될 수 있다"며 "핵심 인력들을 더 불러들여야 할 때 오히려 쫓아내는 격이라, 미국에 대한 선호도가 약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sinjenny97@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