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나도 인간이고 힘들다' 슈퍼맨 아닌 소방관의 한숨

이태원참사 투입 소방관 잇따라 사망…'영웅'이란 호명의 뒷면
소방관 정신건강 지원 체계, 단기적이고 안일해

사진은 30일 사고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사고현장에서 소방 관계자가 이동식 침대를 옮기는 모습. 2022.10.30/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서울=뉴스1) 신윤하 기자 = 슈퍼맨의 희생엔 보상이 없다. 인류를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를 희생하고 나면 시민들의 사랑과 존경이 그에게 주어질 뿐이다. 불특정다수의 사랑으로 사람이 먹고 살 순 없는 건데, '영웅은 원래 그렇다'는 만화적 허용 속에서 슈퍼맨은 그걸 해낸다.

사람들이 대충 얼버무린 '영웅'이란 이름으로 희생을 떠안은 슈퍼맨, 나는 항상 그가 불쌍했다. 적절한 보상도 없는데 사람을 구해야 하고, 사람을 구하려면 자기 목숨도 내놓아야 한다니. 사명감에 일한다고 해도, 참사와 재난 현장에서 스스로도 심적으로 힘들 텐데 그를 위한 심리 치료 프로그램도 딱히 없다.

우리네 현실에도 비슷한 처지의 직업군이 있다. 소방관이다. 소방관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직업군으로 꼽히는, 남녀노소 인정하는 영웅이다. 하지만 재난·참사 현장에 반복적으로 투입돼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2022년 이태원 참사 현장에 투입됐던 소방관 두 명이 최근 잇따라 목숨을 끊었다. 30세 소방대원 A 씨는 지난 10일 오전 2시쯤 제2경인고속도로 남인천 요금소(TG)를 통과한 뒤 갓길에 차를 세워두고 소지품을 차 안에 남겨둔 채 사라졌다. 실종 열흘 만에 A 씨는 경기 시흥시 교량 아래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다음 날엔 경남소방본부의 한 소방서에서 근무하던 소방관 B 씨(44)가 지난달 29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두 사람 모두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입은 트라우마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8차례의 심리 상담과 약물 치료를 받았고, 우울증 치료를 받던 중 '미안하다'는 글을 남기고 사망했다. B 씨는 참사 때 받은 충격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호소하다 올해 고성소방서로 근무지를 옮겼다. 지난 2월 공무상 요양을 신청했지만 6월 업무상 연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인사혁신처로부터 불승인 통보를 받았다.

이태원 참사 현장 지원 이후 우울증을 앓던 30대 소방대원이 실종된 지 10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은 이날 오후 A씨가 숨진 채 발견된 경기도 시흥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 교각 아래의 모습. 2025.8.20/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우리 사회가 소방관을 영웅이라 부르면서 외면해 온 것들을 돌이켜 본다. 소방관은 사람을 구하는 게 직업이니까, 재난·참사 현장을 일상적으로 목격하니까, 그들이 '영웅'이니까 마냥 괜찮을 것이라 어물쩍 넘어가려 한 것은 아닐까.

이런 시선이 소방관 사회 내부에서도 아직까지 상담 등에 소극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한 현직 소방관은 기자에게 "시민들이 영웅이라고 우리 직군을 표현해 줄 때 참 감사하지만, 동시에 항상 참사 현장에서 덤덤해야 할 것 같다는 부담도 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방관은 "다들 재난 현장에서 일하는데 나만 예민하고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까봐 걱정됐던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소방관은 슈퍼맨이 아니라 인간이다. 대형 참사는 사건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닌 일반 국민의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하물며 최일선에서 피해자의 사망을 목격해야 했던 소방관들의 스트레스는 극심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소방 공무원 정신 건강 보호 체계는 직업군의 스트레스에 비해 매우 단기적이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 투입된 소방대원 1316명에 대해서 긴급심리 지원을 시행했지만, 이는 약 11개월의 기간으로 참사 직후 단기간에 그쳤다. 이후 '찾아가는 상담실'을 통해 심리 상담사의 도움을 받은 소방관들도 있지만, 상담을 위해서 소방관 개인이 휴가를 내야 하고 다른 대원들에게 업무를 가중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게 돼 적극적으로 상담에 임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참사 발생 후 시간이 지난다고 아픔도 자연스럽게 줄어들 거라 여기는 것도 이제는 멈춰야 한다. 인사혁신처는 B 씨의 공무상 요양을 불승인한 이유로 '사건 발생 2년 뒤 초진을 받았다'는 점을 들었다.

트라우마는 사건 발생 직후 생긴다고 여기는 국가의 안일한 인식이 드러난 것이다. 이미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이 심리적으로 취약한 상태에서 완전히 별개의 사건을 마주했을 때 겪는 트라우마를 '복합 트라우마'라고 한다. 재난 현장에 반복해서 노출되는 소방관의 경우, 참사 직후에는 괜찮다고 여겼을 수 있어도 스트레스가 누적됐을 때 트라우마 증상이 발현될 수 있다.

"나는 누구보다도 인간이야" 올해 개봉한 제임스 건 감독의 '슈퍼맨'에서 슈퍼맨은 자신도 두렵고 힘들다는 것을 이렇게 고백한다. B 씨가 공무상 요양을 신청했던 것도, A 씨가 지속해서 상담받으려 노력했던 것도 '나도 인간이고, 힘들다'는 나름의 고백이었을 텐데 국가가 외면한 것 같아 슬프고 아프다. 재난 현장에서 정신적 충격을 받은 소방관들을 위한 지원 체계를 국가가 구축할 때다.

sinjenny97@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