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백화점 희생이 만든 재난안전법…"이젠 생명안전기본법 제정해야"
[더(The)후]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30주기…④법망 바깥의 '사고'
삼풍 이후에서야 국가와 지자체 재난 관리 책임 법으로 규정돼
- 이기범 기자
(서울=뉴스1) 이기범 기자
"이 법은 재난을 예방하고 재난이 발생한 경우 그 피해를 최소화하여 일상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기본적 의무임을 확인하고, 모든 국민과 국가·지방자치단체가 국민의 생명 및 신체의 안전과 재산보호에 관련된 행위를 할 때는 안전을 우선적으로 고려함으로써 국민이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함을 기본이념으로 한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에 담긴 기본 이념이다. '국민이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사회'와 이를 위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의무와 책임'은 우리 사회의 '기본'이 됐지만, 30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사망 502명, 부상 937명, 실종 6명. 건국 이래 최악의 참사라 불리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에서 국가와 지자체는 의무에서 벗어나 있었다.
당시 참사의 원인과 책임은 삼풍백화점 사주에게 돌아갔다. 삼풍백화점의 모기업인 삼풍건설산업의 이준 전 회장은 업무상 과실치사상죄 혐의로 징역 7년 6개월이 확정됐으며, 이한상 전 삼풍백화점 사장은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뇌물을 받고 백화점 설계 변경을 승인해 준 이충우·황철민 전 서초구청장은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이로 인해 최악의 참사로 불리는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의 책임자들이 받은 처벌로는 너무 약하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국가와 지자체는 면책됐다. 서초구 공무원들의 뇌물수수가 확인됐지만, 파면된 사람은 1명에 불과했다. 공무원들에게도 붕괴 사고 책임이 있다며 서초구청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관할 구청에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참사 예방 및 관리, 초기 대응에 실패한 정부에게는 책임이 지워지지 않았다. 미흡한 법과 제도, 그리고 이에 뒤따르는 사회적 인식으로 일부 공무원들에게만 책임이 한정됐다. 재난 수습의 문제를 보상의 문제로만 귀결시킨 정부의 태도는 유가족들이 보상금을 노리고 '시체 장사'를 한다는 일부 여론으로 이어졌다.
참사의 교훈과 기억을 상기시킬 위령탑은 참사 장소인 서초동도, 실종자들의 시신이 묻혔을지도 모르는 난지도도 아닌 양재 시민의 숲 한구석에 덩그러니 놓였다.
유해정 재난피해자권리센터장은 "당시에는 모든 재난 관련 법제들이 자연재해 중심이었고 성수대교,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면서 재난관리법이 만들어졌다"며 "재난피해자 지원이나 권리 회복에 관한 관점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만 하더라도 재난이 발생하면 위로금을 줘 문제를 해결하는 게 관행이었는데, 당시 언론들도 피해자가 뭘 요구하고 있는지보다는 위로금을 얼마나 받는 건지에 초점을 맞췄다"며 "생존자가 구조되는 모습에는 열광했지만 희생자에 대해선 오래, 깊이 슬퍼하지 못했다. 재난에 대한 무지가 피해자의 고통을 증가시켰다"고 강조했다.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은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이후에서야 법으로 규정됐다.
재난과 관련한 법과 제도는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는 법'으로 만들어져 왔다. 삼풍백화점 붕괴를 계기로 1995년 재난관리법이 제정됐다. 해당 법안은 국가와 지자체의 재난 관리에 대한 책무를 규정하고 있다.
자연재해가 아닌 화재·폭발·붕괴·교통사고 등 인위적 원인에 의한 재난을 적용 대상으로 하며, 재난 관리를 위해 국가는 재난 수습·복구를 위한 계획, 지자체는 관할 지역의 재난 관리 계획을 수립·시행하도록 했다.
또 정부의 재난 관리 총괄 기구로서 국무총리가 위원장이 되는 '중앙안전대책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했다. 재난이 발생한 경우 효율적인 수습을 위해 지자체에 지역사고대책본부를 설치 및 운영하도록 했다.
사회적 참사는 반복돼 왔지만, 이를 막기 위한 제도적 방안도 정비돼 왔다. 재난관리법은 2003년 '대구지하철 방화' 이후, 2004년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으로 개편됐다. 현행 재난안전법의 근간이 되는 이 법은 국가와 지자체의 새로운 재난 대응 관리 체계 확립하는 내용을 담았다.
당시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재난 관리 전담 기구인 소방방재청이 신설돼 자연재해와 인적재난을 통합 관리하는 '통합재난관리시스템'이 만들어졌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재난안전법'은 분산된 재난 안전 기능을 통합하고, 재난 대응 체계를 정비하도록 대대적으로 개정됐다. 대규모 재난 발생 시 특별재난지역 선포에 관한 사항은 국무총리가 책임지도록 했고, 재난 대응과 복구 총괄·조정 기능은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맡도록 했다.
그러나 현행법과 제도는 시민의 안전권, 피해자의 권리, 재발 방지를 위한 진상규명 등의 내용을 담지 못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시민사회에서는 '생명안전기본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해 왔다. 해당 법안은 피해자의 권리로 안전권을 규정하고, 사회적 참사가 발생하면 원인과 수습 및 대응 과정의 적절성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독립적 조사 기구를 설치하도록 하며, 안전영향평가를 사전에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로 2020년 국회에 발의됐다. 그러나 21대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같은 내용이 담긴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일 취임사에서 "안전이 밥"이라며 "세월호와 이태원, 오송지하차도 등 우리의 민낯인 사회적 참사의 진상을 명확히 규명하고, 다시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위협받지 않는 안전사회를 반드시 건설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 센터장은 "재난안전기본법, 재해구호법 등 현행 재난 관련 법의 가장 큰 문제는 재난 피해자를 수동적 존재, 시혜 대상으로 본다는 점"이라며 "생명권, 안전권의 관점에서 봐야 하며, 피해자를 문제 해결 과정의 참여자, 협력자로 봐야 한다. 재난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K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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