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인가 국민의 알 권리인가…이선균 사망 사건이 남긴 것[기자의눈]

27일 서울 성북구에 주차된 차량에서 배우 이선균씨 숨진 채 발견…극단 선택 추정
무리한 공개 수사· 과도한 루머 확산에 심리적 압박감 느꼈을 가능성 커

마약 투약 혐의를 받고 있는 배우 이선균 씨가 23일 오전 인천 남동구 인천논현경찰서로 3차 소환조사를 받기 위해 도착해 착잡한 표정을 보이고 있다. 2023.12.23/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서울=뉴스1) 김예원 기자 = 누군가의 극단적 선택을 가리켜 흔히 '사회적 타살'이라고 한다. 그 사람을 둘러싼 인물들과 주변 환경이 죽음에 대한 지분을 나눠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다.

배우 이선균씨가 세상을 떠났다. 27일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매니저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당일 서울 성북구의 한 공용주차장 인근에 세워진 차에서 숨진 이씨를 발견했다. 사고 현장엔 극단적 선택 시도 정황이 확인됐다.

이씨의 사망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온라인 공간에선 그가 죽음을 택한 이유를 놓고 연일 책임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이씨는 지난 10월부터 마약류관리법상 대마·향정 혐의로 인천경찰청에서 조사받던 상황이었다.

최전선에서 화살을 맞는 집단은 경찰이다.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유흥업소 여자 실장의 증언 외엔 구체적 증거가 없음에도 여러 차례 공개수사를 이어가 이씨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가했다는 이유에서다.

이씨에 대한 세 차례의 경찰 소환은 모두 공개적으로 이뤄졌다. 이씨는 마약 투약 자체는 인정했지만 A씨가 준 약이 수면제인 줄 알았다며 줄곧 고의성을 부정하는 상황이었다. 1, 2차 조사 이후 나온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밀 감정 결과에선 음성 판정이 나왔다. 경찰은 최소 8~10개월은 이씨가 마약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이씨는 국과수 감정 이후 변호인을 통해 23일로 예정된 3차 조사는 비공개로 소환해달라고 경찰에 요청했다. 경찰 수사 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경찰은 수사 과정에 대한 언론의 촬영·녹화를 허용하지 않되 불가피할 경우 사건 관계인이 노출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 하지만 경찰은 일부 방송 등의 요구로 비공개 전환은 어렵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뉴스 콘텐츠 생산자들과 대중도 비판에서 자유롭진 않다. 혐의가 확정되지 않은 이씨가 카메라 앞에서 사과와 해명을 반복하는 모습은 계속 전파를 탔다. 그가 조사 과정에서 진술한 내용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하나둘씩 유출되며 많은 관심을 받았다.

'클릭 수' 수익을 노린 콘텐츠도 빠르게 불어났다. 녹취록 등 이씨의 사생활과 관련된 내용을 선정적으로 다룬 영상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유튜브 등 일부 채널에선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무분별하게 유포되며 루머를 양산하기도 했다.

비판 수위가 높아지자 경찰 측에선 "강압 수사는 없었다"고 선을 긋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폐쇄적이고 은밀하게 진행되는 마약 범죄의 특성상 확실한 혐의 확인을 위해선 불가피한 절차였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씨의 죽음 등에 대한 추측성 온라인 콘텐츠들은 지워지지 않은 채 여전히 활발히 확산고 있다.

이씨의 극단적 선택이 '사회적 타살' 논란에서 자유롭다고 말하긴 어려워 보인다. 이씨의 죽음이 알려진 후 "악플과 무관심 가운데 그 어디쯤"에 서 있는 것 같다는 한 방송인의 말처럼 그동안 우리 사회는 '알 권리'라는 명목으로 누군가의 사생활에 대한 과도한 침투를 정당화해 왔다. 세상을 등진 이씨의 선택 앞에서 우리 사회에 허용된 '알 권리'의 지분은 어디까지인지 합의할 때다.

kimye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