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하게 울렸던 '극한호우' 문자…'물막이판' 설치 안 돼 발동동
"내년이나 설치"…물막이판 설치 지연되거나 집주인이 거부하기도
영등포구청 "제작 요청이 많아 물량을 다 충족하지 못하는 상황"
- 이기범 기자, 한병찬 기자
(서울=뉴스1) 이기범 한병찬 기자 = "시간당 72㎜ 이상 강한 비로 침수 등 우려, 안전확보를 위한 국민행동요령 확인 바람."
지난 11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는 정모씨(34·남)의 스마트폰은 요란하게 울렸다. '극한호우'를 알리는 긴급재난문자였다. 하지만 지하 주차장 침수를 피할 수 없었다. 구청에 신청한 '물막이판' 설치가 지연된 탓이다.
◇극한호우에도 물막이판 설치 안 돼…"불안해서 잠 설쳐"
극한호우란 1시간 누적 강수량 50㎜, 3시간 누적 강수량 90㎜의 강한 비가 내리는 경우를 말한다. 극한호우 긴급재난문자는 지난해 8월8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과 관악구 신림동에서 발생한 반지하 침수 참사 재발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이날 정씨가 거주하는 영등포구 신길동을 비롯해 대림동, 구로구 구로동, 동작구 상도·상도1·대방·신대방동에는 극한호우를 알리는 긴급재난문자가 처음 발송됐다. 그러나 해당 지역에는 물막이판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곳이 많았다.
5월에 물막이판을 신청한 정씨는 구청으로부터 내년에야 설비가 설치될 수도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예산과 물량이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정씨는 "(구청에서) 올해 설치가 안 되면 내년에 우선 순위에 넣어주겠다고 안내를 해줬고, 처음에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들다가 나중에는 공장에서 물건이 안 나와서 다들 대기하고 있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장 주차장이 잠겼는데 어떻게 하냐고 하니 주민센터에서 모래주머니나 양수기를 대여하라고 하더라"며 "지난해에도 침수됐던 지역인데 이번에 더 많은 비가 온다고 해서 (물막이판을) 설치하고 싶었는데 대비를 못 하게 돼 답답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곳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집중호우가 쏟아진 다음 날인 12일 오후 1시쯤. 영등포구에 있는 쪽방촌에는 계단과 길가 곳곳에 물기가 채 마르지 않아 웅덩이가 져 있었다. 쪽방촌 주민들은 지난해 악몽이 재현될까 잠을 설쳤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물막이판은 보이지 않았다.
쪽방촌 거주자인 80대 여성 이모씨는 "(11일) 갑자기 비가 팍하고 쏟아져서 주민들이 다 불안해서 잠을 못 잤다"며 "잠들려고 하면 불안해서 나와서 확인하고, 배수구 막힐까 봐 청소하고 그랬다. 지난해에도 집에 물이 무릎까지 차올라 더 걱정된다"고 불안감을 나타냈다.
◇세모녀 참사 신림동 반지하 주택…"물막이판 설치돼도 걱정"
지난해 세 모녀 참사가 일어난 관악구 신림동 주택가에는 반지하 빌라를 중심으로 물막이판이 설치돼 있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여전히 지난해 여름의 참상의 기억에 고여 있었다.
참사가 일어난 빌라에서 거주하는 C씨는 "어제(11일) 비가 엄청 왔었는데 괜찮았다"면서도 "물막이판 도움이 안 되는 거 같다. 거기서만 물이 들어오는 게 아니고 물이 차면 배수가 안 되고 역류해 버린다"고 손사래를 쳤다.
신림동 주택가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70대 D씨는 "물막이판을 신청했는데 아직 설치가 안 됐다"며 "(앞으로 장마가) 걱정되지만 하늘이 하는 일은 우리가 막을 수 없는 거 같다"고 말했다. 해당 미용실은 지난해 폭우 당시 침수 피해를 입었다.
집주인들이 물막이판 설치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신림동 지역 공인중개사인 전종근씨(46)는 "반지하 주택도 물막이판 설치가 대부분 안 됐다"며 "임대인들이 미관상 문제 등을 고려해 신청을 안 했다"고 말했다.
근처 반지하 상가에서 쌀국숫집을 운영하는 30대 김민우씨는 "상가는 물막이판을 설치하면 미관상 좋지 않고, 효과도 미미할 거 같아서 따로 설치하진 않았다"고 토로했다.
정부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기준 전국의 물막이판 설치 대상 반지하 3만3697가구 가운데 1만2012가구만 설치를 완료해 설치율은 36%에 머물러 있다.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이번 극한호우 지역이었던 영등포구는 올해 기준 물막이판 신청 가구는 580여곳, 설치는 284가구로 집계됐다. 관악구는 신청 4100가구, 설치 완료는 3000가구 수준이다. 각각 물막이판 신청 가구의 49%, 73%만 설치된 셈이다.
구청 관계자들은 물량 부족을 원인으로 꼽았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지난해 침수 피해가 컸던 탓에 올해 물막이판 신청이 집중돼 물량이 없다"며 "업체는 한정돼 있는데 제작 요청이 많아 물량을 다 충족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K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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