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초고속 승진 '꽃길' 뒤 혹독한 '가시밭길'…윤희근의 '역대급 과제'
검찰·행안부와 새로운 관계 정립 '시험대'…내부결속도 숙제
공안직화·복수직급제·수사 인프라 강화 '3대 숙원' 해소
(서울=뉴스1) 대담=서명훈 사회부장 정리=이승환 김성식 기자 = 윤희근 경찰청장(54·경찰대 7기)은 약 7개월 만에 세 단계 계급을 승진해 윤석열 정부 초대 치안총수가 됐다. 경찰 77년 역사상 전례를 찾기 힘든 초고속 승진이다.
밖에서 보기엔 찬란한 '꽃길'이다. 하지만 경찰을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의 눈엔 정반대인 '가시밭길'로 보인다. 지난 10일 취임한 윤 청장 앞에 놓인 과제들이 모두 '역대급'이어서다.
그는 후보자 시절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설치 논란으로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국회와 언론은 물론 경찰 내부의 극심한 반발에 시달렸다. 여기에 '공안직화 및 복수직급제 도입'이나 '경찰 중립·독립성 확보' 등도 풀어야 할 숙제다.
경찰대 출신인 윤 청장은 "순경 등 일반 출신의 고위직 비율을 높이고 입직경로별 차별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복수직급제 도입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경찰대 출신의 고위직 쏠림 억제 방안인 복수직급제는 고위직 자리 및 인원을 확대해 순경 출신 고위직의 승진 비율을 높이는 것이 골자다.
경찰을 향한 곱지 않은 여론도 윤 청장이 해소해야 할 당면 과제다. 최근 3개월간 격해진 경찰대 논란으로 여론은 악화하고 구성원들의 사기는 저하했다. 윤 청장은 단기간 내 국민 신뢰 회복과 조직 장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경찰국 논란 등으로 ) 어느 청장도 경험하지 못한 후보자 시절을 혹독하게 치렀습니다. 개인으로서나 조직으로서나 담금질하는 시간이었죠. 취임한 지 얼마 안 됐으나 이제 다시 한 방향으로 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듭니다."
윤 청장은 지난 25일 서울시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장 접견실에서 진행된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인터뷰는 예정된 시간을 20분 초과해 약 1시간20분 동안 진행됐다. 윤 청장은 주요 현안이나 논란을 피하지 않았고, 청장 취임 전후로 찾아온 심적 고뇌도 털어놨다.
◇"담금질하는 인내와 시련의 시간"
- 지난 6월27일 경찰국 설치에 반대한 김창룡 당시 경찰청장(58·경찰대 4기)이 사퇴했습니다. 당시 경찰청 차장이자 후보자였던 윤 청장이 이후 40여일간 청장 대행을 했지요. '청장 대행'과 '청장' 간 차이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 "대행과 청장은 달라도 확실히 다릅니다(웃음). 청장 지명 당시만 해도 '초고속 승진이다' '기수 파괴다' 등 별의별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당시 경찰국 이슈로 경찰 조직은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냈어요. 개인으로서나 조직으로서나 담금질하는 인내와 시련의 시간이었죠. 이제 와 보면 '담금질'로 조직이 단련됐기 때문에 비상하는 시기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임명장 받은 지 보름 정도 됐네요. 청장이 되니까 확실히 책임의 무게가 다릅니다. 조직원들도 비슷한 느낌일 거예요. 조직 숙원인 몇 가지 과제가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14만 경찰 조직이 한 방향으로 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듭니다."
- '경찰은 수사만, 검찰은 기소'만 하는 수사·기소 분리가 경찰의 숙원이 아닙니까.
▶ "그것은 전통적인 숙원이죠. 아직 상당 부분 완전하지는 않지만 (지난해 검경수사권 조정과 다음 달 시행 예정인 검수완박법으로) 경찰이 엄청난 권한을 받았다고 평가하잖아요. 경찰 입장에선 그렇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면이 있지만 앞으로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현재 차관급인 경찰청장의 '장관급' 격상도 숙원인데 이것은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해서 이뤄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 전통 숙원 말고 현시점 경찰의 '숙원'은 무엇인가요?
▶ "1번이 공안직화입니다. 그다음이 복수직급제고요. 마지막은 수사 인프라 및 역량 강화입니다. 이 세 가지가 현재 우리 경찰의 숙원이지요."(공안직공무원은 공공의 안전 및 질서관리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을 포괄하는 단어다. 검찰직과 마약수사직, 철도경찰직, 교정직 등이 대표적이다)
- 경찰의 '공안직화'는 처우 개선과 관련 있습니다. 경감·순경을 제외한 경찰 직급의 기본급은 공안직과 비교해 평균 3.9% 낮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경찰을 공안직 공무원으로 분류해 일선 경찰관의 기본급을 높이는 것이 공안직화의 취지입니다. 대통령도 앞서 19일 중앙경찰학교 신임 경찰 졸업식에 참여해 '경찰의 기본급을 공안직 수준으로 상향할 것'이라고 밝히셨죠. 사실 조직원들은 아직도 반신반의합니다. 하지만 경찰을 대표하는 청장으로서 말하자면 결과를 기대해도 좋습니다. 공안직화를 적극 추진 중입니다."
- 경찰대 출신 특혜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논란은 해소하기 위해 복수직급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보시는 건지요?
▶ "경찰대 논란은 사실 제가 말씀드리기 쉽지 않고 민감한 문제입니다. 아시다시피 40여년 전인 1981년 경찰대가 개교했을 당시 우수한 인재를 발굴해 국가 발전에 기여한다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대상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역차별 얘기도 나오는데 개교 당시 경위와 지금의 경위는 실제로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당시 경찰대를 졸업해 경위로 임용되면 파출소장을 하거나 경찰서 계장을 했습니다. 이제는 경찰대를 졸업해도 일선에서 실무를 해야 합니다. 순경 출신과 똑같이 순찰을 합니다.
- 실제로 '경찰대 역차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잖습니다.
▶ "경찰대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후배들이 로스쿨 등으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꿈을 갖고 조직에 왔는데 조직이 그것을 받쳐주지 못하고 비난도 받으니 마음이 아픕니다. 다만 청장으로서 다양한 구성원이 공정한 환경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최소한의 경쟁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승진 인사 과정에서 경찰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우대받는 것은 잘못된 일이죠. 마찬가지로 비경찰대 출신이 무조건 우대받은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공정이 제대로 작동한지는 늘 살펴야 합니다. 출신 균형을 맞추기 위해 복수직급제는 필요한 것이죠."
- 복수직급제가 꼭 도입돼야 한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 "경찰관들에게 가장 민감한 것은 승진입니다. 특히 경찰 서열 다섯 번째 계급인 총경과 네 번째 계급인 경무관 등 고위직으로 가는 과정이 매우 민감합니다. 자리는 한정됐는데 일반 출신에 무조건 30%를 배정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역차별 얘기가 나올 것입니다. 결국 (복수직급제로) 승진 자리를 늘려야 역차별 논란 없이 순경의 고위직을 확대할 수 있는 것이지요."
정부가 계획한 대로 복수직급제가 도입되면 고위직 인원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복수직급제의 핵심은 한 보직을 다양한 계급이 하는 것이다. 가령 경찰청 계장직은 현재는 경정만 맡을 수 있는데 복수직급제 시행시 경정 바로 위 계급인 총경도 맡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자리와 인원이 늘면서 순경 출신의 고위직 승진 기회가 확대된다는 논리다.
복수직급제는 경찰대 출신의 고위직 쏠림을 개선해야 한다는 현 정부의 기조와 맞닿아 있다. 순경에서 경위까지는 통상 근속 기존으로 15년이 걸리지만 경찰대 졸업생은 임용과 동시에 경위에서 출발한다.
경위보다 두 계급 높은 경정(경찰서 과장급·시도경찰청 계장급)까지는 그나마 사정이 낫다. 전국 경찰 경정 가운데 순경 등 일반 출신 비율은 55%로 절반 이상은 된다. 그러나 경정 위 계급으로 '경찰의 꽃'이라는 총경 이상 경찰관 가운데 경찰대 출신은 61.6%에 달한다.
'군의 장군'에 해당하는 경무관은 10명 중 7명 정도가 경찰대 출신이다. 대통령은 3.6% 수준인 일반 출신의 경무관 이상 고위직 비율을 20%까지 확대한다는 공약을 내놓은 바 있다.
- 경무관이 되려면 그 아래 계급인 총경이 먼저 돼야 합니다. 그러나 총경 이상부터 순경 출신의 비율이 크게 낮아집니다.
▶"총경이 되느냐 마느냐는 경찰관들에게 굉장히 실존적인 문제입니다. 50세 전후로 총경이 못돼 옷을 벗고 나가느냐, 총경이 돼서 안 나가느냐는 얘기거든요. 경찰은 계급 정년이 있어 인사 대상자는 어떻게든 총경이 되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이 심화하면 조직 문화 자체가 왜곡됩니다. 능력 중심의 조직 풍토가 훼손될 수 있죠.
공악직 다음으로 복수직급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입니다. 앞으로 3~4년 안에 복수직급제가 도입되면 조직 문화도 업무 중심으로 바뀌고 직원들도 승진에 집착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와 비슷한 구조인 국세청 등 다른 부처에서는 경찰의 총경 이상 같은 고위직 비율이 경찰보다 4배 정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단언컨대 경찰 중립 훼손 직 걸고 막겠다"
충북 청주 출생인 윤 청장은 청주 운호고와 경찰대를 졸업한 후 중국사회과학원에서 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1년 경위로 임용된 그는 △충북경찰청 정보과장 △경찰청 경무담당관 △서울 수서경찰서장 △서울경찰청 정보1과장 △서울경찰청 정보관리부장 △경찰청 자치경찰협력정책관 △경찰청 경비국장 등을 역임했다.
경찰 내 대표적인 정보통인 그를 놓고 "정무 감각과 현안 이해도 모두 높다" "진정성 있는 리더다" "무색무취하지 않는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그러나 경찰국 사태에서 제 역할을 했는지 의문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현 수뇌부 인사에 크게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조직 그립(장악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 일각에서는 경찰대 선배 기수들이 수뇌부에 포진했는데 윤 청장이 리더십을 보일지 회의적이란 반응이 나옵니다.
▶ "경찰은 후배 기수가 총장이 되면 선배들이 옷을 벗는 검찰과 다릅니다. 전임 청장님들도 경찰대 선배들을 수뇌부에 두고 직무를 수행하셨고요. 제가 청장이 되는 과정에서 일부 우려가 있었던 것은 압니다. 하지만 (수뇌부인) 경찰청 국장들이나 시도경찰청장의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저는 대학 시절부터 리더십을 고민했습니다. 취임 보름밖에 안 됐으나 조직이 빠르게 안정화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물론 저는 자만하지 않고 진지하게 직무에 임할 것입니다."
- 경찰 생활을 30년 이상 했는데 경찰이라는 업의 본질을 말씀하신다면.
▶"경찰대에 들어갔더니 대운동장에 문구 세 개가 있었습니다. 조국, 정의, 명예였습니다. 학창시절엔 명예를 더 크게 봤습니다. 이제는 계급과 자리가 높아지면서 조국이 가장 중요해졌고 이어 정의와 명예 순이 됐습니다. 결국 국가와 국민을 위해 숙원 과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윤 청장은 취임사에서 "참으로 사연 많은 길을 달려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이 대목을 언급하자 윤 청장은 후보자 시절 겪었던 번민을 떠올렸다. 그는 "어느 청장도 경험하지 못한 후보자 시절을 혹독하게 치렀다"며 "역사의 평가를 받겠다는 각오로 임했다"고 말했다.
경찰 구성원들이 그에게 가장 확인하고 싶은 얘기도 들려줬다. 윤 청장은 "경찰 중립을 훼손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단언컨대 직을 걸고 막겠다"고 밝혔다.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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