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룡 사퇴로 재현되는 '경찰청장 잔혹사'…임기 채운 비율 고작 '28%'

임기제 도입 후 경찰청장 12명 가운데 4명만 '완주'
"경찰법 유명무실화" 회의론…"법취지 강화 노력 필요"

임기를 한 달여 남기고 사의를 표명한 김창룡 경찰청장이 27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사퇴 입장을 밝힌 뒤 청사를 떠나고 있다. (공동취재) 2022.6.27/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김창룡 전 경찰청장(58·경찰대 4기)이 임기 종료를 18일 남기고 중도 퇴진하면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는 '경찰청장 잔혹사'가 재현됐다. 특히 지난 2003년 경찰청장 임기제 도입 후 경찰청장 12명 중 8명은 임기를 완주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청장이 임기를 지킨 비율(28.5%)이 30%도 되지 않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경찰 중립과 독립을 위해 경찰청장 임기제를 도입한 경찰법의 취지가 퇴색하고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임기 18일 남기고 제복 벗은 '수사개혁 원년 수장'

7일 경찰 등에 따르면 김창룡 전 청장은 경찰국 신설 등 행정안전부의 경찰 통제 방안에 반발해 지난달 27일 사의를 표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일 그의 면직안을 재가했다. 김 전 청장의 임기가 불과 18일 남은 시점이었다.

김 전 청장은 6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34년3개월6일, 경찰대학 4년2개월을 더하면 38년이 넘는 긴 세월"이라며 경찰생활을 회고한 뒤 "무력감, 자책, 부끄러움과 참담함에 동료 후배들 앞에 설 수가 없어 영원히 사라진 퇴임식의 꿈은 가슴에 묻으려 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지난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경찰 통제 논란이 거세지자 김 전 청장의 '압박감'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7월 취임 당시 수사구조 개혁 원년의 수장으로 주목받던 그는 퇴임식도 생략한 채 쓸쓸하게 경찰복을 벗었다.

김 전 청장의 사퇴 이후 '경찰법이 유명무실화했다'는 회의론이 확산하고 있다. 지난 2003년 12월31일 '경찰청장의 임기는 2년으로 하고, 중임(重任)을 할 수 없다'는 경찰법 제11조 5항이 신설되면서 경찰청장 임기제가 도입됐다.

경찰이 정치권력에 예속되는 데다 정부가 여론 전환용으로 청장을 자주 교체한다는 비판론을 수용한 데 따른 것이다. 실제로 1991년 경찰청이 내무부(현 행안부) 치안본부에서 독립한 후 2003년까지 임기 2년을 지킨 치안총수는 박일룡 전 청장과 이무영 전 청장 등 2명뿐이었다.

경찰청 ⓒ 뉴스1 황덕현 기자

임기제가 도입된 2003년 이후 현재까지 청장직을 맡은 총 12명 가운데 이택순·강신명·이철성 민갑룡 전 청장 등 4명만이 경찰법상 규정된 2년간의 임기를 채웠다.

최기문 전 청장은 지난 2003년 12월 취임해 1년10개월 만에 퇴임했다. 경찰 최초의 '임기제 청장'이었던 그가 갑작스럽게 사퇴해 여권과의 갈등 등으로 용퇴 압박을 받은 것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했다.

후임 허준영 전 청장은 경찰의 농민시위 과잉진압 논란으로 책임론에 시달리다가 취임 1년 만인 2005년 12월 물러났다. 당시 과잉진압 논란은 전용철씨가 쌀 협상 국회 비준에 반대하는 농민 시위에 참여했다가 숨지는 바람에 불거졌다.

이명박 정부 초대 치안총수인 어청수 전 청장도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를 대상으로 한 과잉 진압 비판에 휩쌓였고 종교 편향 논란과 용산 참사 책임론까지 더해지면서 1년 만에 물러났다.

◇"사퇴 종용" 폭로한 경찰청장도

2010년 8월 취임한 조현오 청장은 이른바 '오원춘 사건' 초동 조치와 부실 대응, 사건 축소·은폐 의혹 등에 책임을 지고 2012년 4월 사퇴했다. 임기가 불과 4개월 남은 상태였다.

조 전 청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경찰의 댓글공작을 지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가 지난달 30일 대법원에서 징역 1년6개월이 확정되는 판결을 받았다.

2012년 5월 조 전 청장의 후임으로 임기를 시작한 김기용 전 청장은 박근혜 정부 출범 한 달도 안 된 2013년 3월 물러났다.

김 전 청장은 당시 이른바 '김학의 동영상' 사건을 내사하던 경찰의 수장이었다. 그는 김학의 전 차관이 취임한 당일 사퇴해 많은 뒷말을 낳았다. 김 전 청장은 이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사퇴 종용을 받았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그의 후임인 이성한 전 청장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관련 부실수사 책임 논란으로 임기 완주에 실패했다. 2014년 8월 사퇴한 이 전 청장은 부산청장(치안정감)에서 치안총감인 경찰청장에 오른 첫 번째 사례였다.

10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경찰관 인권행동강령 선포식에서 민갑룡 경찰청장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2020.6.10/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이후 강신명·이철성·민갑룡 전 청장은 여러 논란과 비판론에도 임기를 지켰다. 특히 문재인 정부 시절 취임한 민 전 청장은 이른바 '버닝썬' 사건 관련 경찰의 비리유착과 부실수사 의혹으로 당시 여당한테도 강한 비판을 받아 고개를 숙여야 했다.

다만 그가 문재인 정부의 공약인 검경 수사권조정을 완수한 1등 공신이라 정부의 두터운 신임이 '방어막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민 전 청장은 최근 사퇴한 김창룡 전 청장과 경찰대 4기 동기로 가까웠다는 후문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법이 법으로서 안정적인 권위를 갖추려면 효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사문화된다"며 "임기제를 규정한 경찰법 도입 의 취지를 강화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mrle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