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만 잘했어도"…스토킹법 '구멍'에 신변보호 여성 잇단 피살
전문가들 "처벌 강화, 범죄 억제효과 없어…가해자 '강제격리' 최선책"
- 한상희 기자, 이비슬 기자, 구진욱 기자
(서울=뉴스1) 한상희 이비슬 구진욱 기자 =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이 전 연인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지는 사건이 또 발생하면서 좀 더 실효성 있는 재발방지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도 16일 서면 브리핑을 통해 "스토킹 범죄에 대한 제도적 보호조치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사건이 발생해서 매우 안타깝다"면서 "스토킹 범죄의 피해자 안전조치의 실효성을 높이는 구체적인 방안을 검·경이 조속하게 강구하라"고 주문했다.
전문가들은 가해자에게 스마트워치를 채워 위치추적을 하는 등 피·가해자를 분리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봤다. 특히 스토킹 가해자의 경우 '내가 옳고 넌 틀리다'는 생각이 강한 만큼, 처벌 강화보다 '가해자 강제격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 "구속만 잘했어도 막을 수 있었다"
16일 경찰 등에 따르면 피해자는 직접 경찰서를 찾아가 신변보호를 요청해 스마트워치까지 받았지만 피살됐다. 경찰은 범행이 일어나기 이틀 전 긴급한 상황이라고 보고 검찰에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반려됐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3분 만에 출동했고 스마트워치를 지급했고 가해자를 현행범 체포해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등 경찰에서는 할 바를 다했다"면서 "구속만 잘 했어도 막을 수 있었던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를 다 하더라도 검찰에서 보기에 부족하면 보강수사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기준이 항상 모호하고 사건마다 달라서 곤란한 경우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또다른 경찰 관계자는 "구속영장이 반려될 경우 피해자 보호는 본인과 경찰의 몫"이라며 "피해자가 신체 피해를 당한 상황에서 별도의 행정적인 절차를 통해 안전조치돼야 하는데 이를 법제화했으나 현실적으론 적용이 어렵다"고 안타까워했다.
◇경찰, 가해자 유치장 입감했더라면…
결국 가해자에 대한 신병확보 불발로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지 못해 피해를 키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사건에서 신변보호 조치는 절차대로 이뤄졌다. 경찰은 피해자의 위험성을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정했다. 심각단계가 되면 경찰은 의무적으로 가해자를 유치장에 유치(잠정조치 4호)하는 등 강력한 대응이 이뤄진다.
그러나 경찰은 잠정조치 대신 스토킹처벌법상 긴급응급조치 1∼2호를 결정했다. 가해자가 100m 이내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고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촉도 금지하는 내용이다. 경찰이 가해자를 유치장에 입감해 피해자와 원천 분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나온다.
◇"스토킹 가해자 강제격리가 유일한 해법"
이번 사건을 포함해 신변보호 중 피해를 당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어 전면적인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작년 11월에는 서울 중구에서 김병찬(36)이 신변보호 중이던 여성을 살해했고, 12월엔 이석준(26)이 신변보호 대상 여성의 가족을 살해했다.
신청 건수도 해마다 늘고 있다. 2016년 4912건이던 경찰의 신변보호 건수는 2017년 6889건, 2018년 9442건, 2019년 1만3686건, 2020년 1만4773건까지 4년 만에 3배 급증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스토킹범죄의 경우 가해자가 공격하는 시간보다 국가 공권력이 피해자를 보호하는 시간이 더 짧아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려면 가해자의 위치정보를 국가가 알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승 연구위원은 "스토킹법상 긴급응급조에 피해자와 가해자의 위치정보를 알 수 있는 조치가 포함돼야 한다"며 "가해자 위치가 피해자 2㎞ 반경 안에 들어오거나 가해자가 위치추적장치(GPS)를 껐을 때 골든타임 내 경찰이 출동하는 것이 스토킹범죄를 막을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신변보호제도를 피해자 중심에서 가해자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며 "전자발찌처럼 스마트워치를 가해자에게도 채워 피해자와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실시간으로 알람이 울려 경찰이 출동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스토킹 범죄처럼 가해자의 확증편향이 강한 경우 처벌을 강화해도 범죄 억제효과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가해자 강제격리가 가장 확실한 대응책이라고 진단했다.
승 연구위원은 "벌금이나 과태료를 천문학적으로 올리지 않는 한 스토킹 범죄에선 큰 효과가 없다"며 "가해자 위치정보를 국가가 확보하는 것이 확실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도 "현행 접근금지 명령은 권고수준이라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하더라도 제지할 방법이 없다. 접근금지만 할 게 아니라 가해자를 감시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angela020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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