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수사, '코드1'도 무용지물…근본대책이 필요하다
"전담팀보다 '적극성' 절실…충분한 권한 필요해"
"인력과 권한 등 문제로 적극 수사에 한계 있어"
- 한재준 기자
(서울=뉴스1) 한재준 기자 =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을 두고 경찰이 실종 신고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실종 수사를 맡은 경찰 여성청소년과의 안일한 태도와 전문성, 인력 등 문제점들이 일거에 쏟아지면서 일선 경찰에 '실종 수사 전담팀'을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조직 개편보다는 실종 사건을 대하는 경찰의 적극성 등 조직 내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다. 실종 수사 부서를 분리하거나 다른 부서에 편입시킨다고 해도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부실 수사'가 지속된다는 것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전담팀을 하나 더 만든다고 경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는 것은 아니다"며 "실종 신고를 접수한 경찰이 얼마나 열심히 조사하려고 하는 지, 가족들의 마음에 공감하면서 실종 아동을 찾으려고 노력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경찰의 적극성 문제는 이영학 사건을 담당한 서울 중랑경찰서의 초동 대응과도 맞닿아 있다. 경찰이 지난달 30일 밤 11시20분쯤 피해 여중생 A양(14)의 실종신고를 접수했음에도 '단순 가출'로 판단, 신속하게 대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초 신고 접수 당시 경찰은 112 신고 대응단계 중 2번째로 긴급한 상황에 내려지는 '코드1'까지 발령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A양 휴대폰 위치추적만 했을 뿐 통화내역 조회를 하지 않았고 피해자 어머니와 통화 한 뒤에야 A양과 이영학의 딸 이모양(14)이 만난 사실을 인지했다. 그때는 이미 이영학이 A양을 살해하고 시신을 강원도 영월 소재 야산에 유기한 뒤였다.
애초 A양의 실종 신고를 단순 가출로 판단한 경찰은 A양이 살해된 다음날인 지난 2일에 가족을 통해 통화내역을 전달받았다.
이후에도 경찰의 미진한 수사는 계속됐다. 2일 오전 한차례 이영학의 집에 방문한 경찰은 사람이 없다고 판단했다가 당일 저녁에 사다리차를 이용해 강제로 진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사다리차조차 경찰이 아닌 피해자 가족들이 공수해온 것이었다. 실종 사건을 담당 경찰이 실종자 가족들과 전혀 공감하지 못한 채 수사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경찰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적극성'을 발휘하기 위한 수사 여건이 안 된다고 말한다. 적극적으로 수사하고 싶어도 인력과 권한 문제로 정보 수집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발생한 전국 18세 미만 아동 실종 신고는 평균 2만2000여건에 달한다. 올해 7월까지 접수된 실종 신고도 1만1538건이다. 이 중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문 데다가 신고 건수도 많아 경찰 기존 인력으로 적극적으로 수사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관련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경찰 관계자는 "경찰서 여성청소년과에 많게는 20명의 수사관이 근무하기도 하지만 보통 10명 내외"라며 "가정폭력, 성폭력 등 민감한 사건까지 다루다 보니 실종 수사에 집중할 만한 인력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여성청소년과에 야간에 4명이 근무를 한다"며 "부서 특성상 가정폭력, 성폭력 사건 발생 장소에 직접 나가야 해 시간과 인력 둘 다 여력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잦은 인사 발령으로 인해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윤재옥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17일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서울지방경찰청 국정감사에서 "(이영학 사건을 담당한) 중랑경찰서 여성청소년과 직원 16명 중 12명이 수사 경험 5년 미만의 경력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고, 그중 9명의 수사 경험은 1년에서 2년에 불과했다"고 밝힌 바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실종 수사를 맡은 경찰의 권한이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7조는 사람의 생명이나 재산에 위험한 상황이 임박했을 때 경찰이 영장 없이도 다른 사람의 토지나 건물에 들어갈 수 있다고 규정돼있다. 하지만 이후 경찰 행동 요령에 대한 내용은 없어 경찰이 쉽사리 강제 진입을 할 수 없는 실정이다. 막상 강제로 진입했다가 위험 상황이 아니면 손해배상까지 해야 해 현장에서는 무용지물 조항인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서울청 국감에서 "영국에서 (이영학 사건과)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당시 영국 경찰은 모든 집에 찾아가 수사를 진행해 범인을 검거했다"며 "한국의 경우 그랬다가 위해 있는 상황이 아닐 경우 손해배상 소송과 직권남용 고소 등 우려로 경찰이 (집마다 방문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통신 내역 조회 권한에 관해서도 현직 경찰은 "영장 없이 통신내역을 조회하려면 범죄 가능성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며 "실종 수사 초기에는 수사보다 수색에 가까워 섣불리 조회하기 꺼려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경찰 관계자는 "여성청소년과가 담당하는 사건들은 자칫 인명 피해로 직결될 수 있는 경우가 많다"고 인정하면서도 "민감한 사건을 다루는데도 막상 권한이 없어 '욕을 안 먹으면 다행'이라는 인식이 강하다"고 호소했다.
이어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선 경찰들이 아예 여성청소년과를 기피하는 경향도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실종 수사에서 경찰의 적극성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쉽게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충분한 권한이 요구된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실종 사건 발생 초기에 신속하게 범죄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도록 경찰에게 정보 수집 권한을 부여하는 게 필요하다"며 "제도가 뒷받침돼야 지금처럼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보고가 이뤄져 수사에 착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곽 교수는 "실종 수사의 경우 경험도 굉장히 중요하다"며 "경험이 많은 베테랑 경찰을 배치하고 보다 좋은 업무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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