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력가 장부 '사본 없다'던 경찰, 결국 거짓말

장부 속 등장 검사 로비 정황 두고 檢 수사 혼선 책임
강서 '보고 누락', 서울·경찰청 '수사지휘 허술' 책임 불가피

(서울=뉴스1) 조재현 기자 = 줄곧 송씨가 생전에 기록한 금전출납장부인 '매일기록부'의 원본 및 사본이 경찰에는 없다고 밝혀온 경찰청과 서울지방경찰청 고위 관계자의 발언이 무색하게도 송씨 피살사건을 담당했던 서울 강서경찰서가 장부 사본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음에도 이례적으로 장부 관련 수사 확대에 나서며 검찰과 대립각을 세웠던 경찰은 결국 검찰 수사에 혼선을 준 것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또한 강서서는 보고누락·허위보고, 서울청과 경찰청은 수사지휘를 허술하게 했다는 점에서 관계자에 대한 문책도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력가 살인교사'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남부지검은 15일 "경찰로부터 넘겨받지 못한 매일기록부 별지 등을 확인한 결과, A검사의 이름이 10차례 발견됐고 총 1780만원을 받은 정황이 있다"고 밝혔다.

또 송씨 가족은 매일기록부 맨 뒷장에 붙어 있던 '별지'를 훼손해 별지 내용에 대해 파악하지 못했는데 경찰로부터 확보한 별지 사본에는 송씨가 특정 용도로 A검사에게 총 9차례(본문 중복 4차례) 돈을 건넸다는 내용이 정리돼 있었다고 검찰은 전했다.

14일 까지만 해도 경찰은 해당 장부 사본의 존재를 부정했다.

경찰 최고 상급기관인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현재 (장부와 관련)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살인교사 혐의를 받고 있는 김형식(44) 서울시의회 의원과 숨진 송씨 사이의 토지 용도변경에 관련된 (사본) 1페이지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검찰과 따로 매일기록부에 등장하는 A검사, 전·현직 경찰관 5명 등에 대한 내사 착수 소식을 알렸다.

그러면서 검찰과 경찰은 A검사가 송씨로부터 돈을 받은 기간과 금액 등을 놓고 상이한 내용을 밝히는 과정에서 상대방에 대해 반박과 재반박을 하는 우스운 광경을 연출했다.

이날 서울청은 숨진 송씨가 자신의 거주지인 강서구를 관할하는 서울남부지검에 근무했던 A검사에게 2005년부터 2011년까지 10여 차례에 걸쳐 최소 1000만원 이상의 금품을 준 정황이 장부에 포함돼 있다고 했다.

경찰은 송씨 장부 내용 중 정관계 로비 의혹과 관련된 부분을 따로 메모 및 발췌하는 방식을 통해 보고받았다며 이같이 전했다.

경찰이 파악한 내용이 보도되자 검찰은 즉각 "매일기록부 원본에 따르면 '2007년 1월27일 A검사 200만', '2009년 10월10일 A 100만' 외에는 동일인으로 추정될 만한 사람에 대한 금품기재 내역이 없다"고 재반박했다.

아울러 검찰은 "경찰에 관련된 원본 및 사본 자료 일체를 송부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경찰이 '원본 자료는 없다'고 확인해 줬다"며 자신들의 조사 내용이 맞다는 데 힘을 실었다. 장부를 둘러싸고 검·경의 진실공방이 펼쳐지는 모양새였다.

그럼에도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자 검찰은 15일 수사 혼선을 막기 위해 경찰에서 확보한 증거나 자료에 대하 추가로 제출해달라고 재요청했고, 결국 경찰이 장부 사본을 검찰에 제출하면서 A검사에 대한 의혹은 명확해졌다.

그러나 경찰의 이같은 행태로 인해 검찰은 A검사에 대한 의혹과 관련 하루 만에 말을 바꾼 셈이 됐다.

이와 관련 검찰은 "경찰에 최초 원본에 대한 사본을 넘겨 달라고 요청했는데 경찰은 14일까지도 공식적으로 없다고 말을 하다가 오늘 오전에 매일기록부와 별지 사본을 전달해 줬다"며 "중요 증거가 훼손된 경위에 대해서는 엄정수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서울청과 경찰청은 하나같이 '강서서가 사본을 따로 갖고 있었는지 몰랐다'는 입장이다.

서울청 관계자는 "허영범 수사부장은 재력가 송모씨의 '매일기록부' 사본 보유 사실을 보고받지 못했다"며 "그래서 14일 '경찰은 사본을 갖고 있지 않다'고 얘기했지만 결과적으로 사실과 다른 얘기를 한 것"이라고 잘못을 시인했다.

cho84@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