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병사 14년만에 국가유공자 행정심판

남부보훈지청 "본인 과실 있어, 인정 안돼"
권익위 "두차례 자살시도 등…조치 소홀"

(서울=뉴스1) 박응진 기자 = 당시 이씨는 선임병들의 괴롭힘으로 자살시도를 두 차례나 하고 전출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했는데도 군에서는 적절한 조치를 해주지 않았다.

이씨의 모친인 고모씨(59·여)는 2001년 9월 서울남부보훈지청에 아들에 대한 국가유공자유족 등록 신청을 했지만 자살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행정소송을 거쳐 대법원 소송까지도 갔지만 결국 유공자 유족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던 지난해 6월18일 또 다른 자살자의 유공자 인정과 관련한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고씨는 6월27일 고인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해달라며 남부보훈지청에 재등록을 신청했다.

대법원이 교육훈련 또는 직무수행과 사망 사이에 상당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군 복무 중 자살의 경우에는 자살이라는 이유만으로 국가유공자에서 제외돼선 안 된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남부보훈지청은 고인이 자살을 해서가 아니라 불가피한 사유도 없이 고충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은 본인 과실이 있다는 이유로 고씨의 신청을 재차 거부했다.

국민권익위원회 중앙행정심판위원회의 판단을 달랐다. 중앙행심위는 남부보훈지청의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고씨가 제기한 행정심판을 접수하고 고인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행정심판 결정을 내렸다.

중앙행심위는 남부보훈지청이 고인의 과실도 자살에 영향을 미쳤다는 이유로 국가유공자 등록을 거부한 것은 위법·부당하다고 26일 판단했다.

중앙행심위는 자살하겠다는 뜻을 비추거나 분위기가 무섭다고 전출을 보내달라는 의사를 전달했는데도 소속 지휘관이 이를 예방하거나 시정하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다하지 않은 점 등 사정을 고려할 때 고인의 자살이 본인 과실과 경합돼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또 상급자로부터 강요 등 가혹행위와 그로 인한 영향이 군대의 통제성과 폐쇄성으로 인해 일반사회보다 훨씬 크다는 점, 구타·가혹행위·욕설 등으로 인한 고인의 극심한 스트레스가 확인된 점 등을 들었다.

이번 중앙행심위 결정에 따라 남부보훈지청은 고씨에게 내린 처분을 취소함과 동시에 고인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하게 됐다.

pej86@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