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벅 논란' 속 1987 현장 찾은 학생기자들…"교과서보다 더 아파요"
[르포]영성중, 민주화운동기념관서 일일 기자 체험
교육부, 역사체험학습 확대…내년 300회 이상 지원
- 조수빈 기자
(서울=뉴스1) 조수빈 기자 =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논란 등을 계기로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국가폭력의 역사가 재조명되는 가운데 학생들이 직접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찾아 6월 민주항쟁의 현장을 체험했다.
경기 성남 영성중학교 역사동아리 '피스메이커스' 소속 학생 14명이 지난 1일 '추적 90분, 그곳이 알고 싶다!' 활동 속 '일일 기자'가 되어 서울 용산구 민주화운동기념관을 찾았다.
이 기념관은 과거 국가폭력의 상징이었던 남영동 대공분실 자리에 조성된 역사 공간이다. 1987년 6·10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고(故)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한 장소이기도 하다.
학생들은 이날 직접 취재 수첩을 들고 전시관 곳곳을 둘러보며 민주화운동의 흔적을 기록했다. 실제 연행자들이 대공분실에 도착한 뒤 겪었던 동선을 그대로 따르며 당시 상황을 체험했다.
눈이 가려진 채 후문으로 끌려온 연행자들은 나선형으로 설계된 계단을 통해 조사실로 이동했다. 계단은 자신이 어느 층에 있는지 알 수 없도록 좁고 가파르게 설계됐다.
학생들은 성인 5명이 겨우 탈 수 있는 호송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 조사실로 향했다. 이곳에는 남영동 대공분실 조사실이 원형 그대로 복원돼 있었다. 특히 509호는 박종철 열사가 고문을 당한 공간으로 현재는 추모 공간 형태로 조성돼 있다.
5층에는 15개의 조사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복도 양쪽으로 조사실이 지그재그 형태로 배치돼 서로 마주 보지 않도록 설계됐다. 벽은 두껍고 창문은 폭이 20~30㎝에 불과했다. 탈출을 막기 위한 구조였다.
의자와 책상은 모두 바닥에 고정돼 있었고 조명에는 철망이 씌워져 있었다. 벽면에는 흡음판이 설치돼 외부로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했다.
학생들은 조사실에 직접 들어가 벽을 두드리고 욕조를 살펴보며 당시 수감자들이 겪었을 환경을 꼼꼼히 취재했다. 조사실에 홀로 들어가 문을 닫아보는 학생도 있었다.
시끌벅적하던 학생들은 509호실 앞에 이르자 자연스럽게 말을 줄였다. 박종철 열사가 고문을 당했던 현장을 마주한 공간은 무거운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이어 학생들은 박 열사를 비롯한 민주화운동 기록이 전시된 공간과 국가폭력의 실상을 보여주는 각종 자료, 고문 기구 등을 둘러보며 당시 시대상을 살폈다.
체험에 참여한 3학년 대표 강현준 학생은 "책이나 영화처럼 직접 보고 만져볼 수 없는 매체로만 접해서 심각하다는 정도만 알았다"며 "직접 체험해보니 훨씬 비극적이었고 당시 민주화를 향한 사람들의 열망이 얼마나 강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영화나 유튜브를 통해 접했던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실제 공간에서는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고 입을 모았다.
2학년 대표 김수현 학생은 "스타벅스 논란과 관련된 표현들이 민주화의 비극적인 역사와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역사 선생님께서도 여러 번 강조해주셨고 얼마나 비극적인 사건인지 배웠지만 실제로 보는 것과는 달랐다"고 소감을 밝혔다.
동아리 담당 교사인 이종관 영성중 교사는 "학생들이 역사에 관심이 많다고 보기는 어렵고 쉽게 느끼는 과목도 아니다"며 "그렇기 때문에 현장체험학습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교과서와 교실을 넘어야 진짜 역사를 공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현장에 와봐야 아이들이 몸으로 기억한다. 나중에 성인이 돼 '남영동'이나 '6월 민주항쟁'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몸의 기억으로 남는 역사 경험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안전 문제에 대한 부담이 크고 교육과정 운영상 평일에 현장체험학습을 진행하기 쉽지 않은 현실도 있다. 이 교사는 "학생들은 학원 일정이 있고 교사들도 별도 시간을 내야 해 현장체험학습 추진이 쉽지 않다"고 부연했다.
교육부는 이러한 점을 고려해 올해 발표한 '학교 역사교육 활성화 방안'에 따라 역사 체험활동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학생들이 교과서 중심 수업을 넘어 박물관과 기념관, 독립운동 유적지 등을 직접 찾을 수 있도록 체험 경비와 동아리 운영비 등을 지원한다.
교육부는 올해 전국 학교의 역사 체험활동을 200회 이상 지원하고 내년에는 300회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민주화운동기념관과 국립박물관, 5·18기념재단 등과 협력해 체험처도 늘릴 예정이다. 또한 올해 전국 100개교를 대상으로 역사 심화 탐구동아리 운영비를 지원하고 학생 주도 역사 프로젝트 활동도 확대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민주화운동 체험뿐 아니라 독립운동 유적지, 박물관 등 다양한 역사 현장을 학생들이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며 "시도교육청과 협의를 거쳐 2학기부터 역사 체험활동이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ch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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