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 불균형이 암으로 가는 경로…줄기세포 단계에서 갈렸다
위·소장·대장 각각 다른 신호체계…대사산물 따라 재생·암 위험 바뀌어
남기택 교수 "미생물 기반 점막 재생치료에 이론적 토대될 것"
- 김규빈 기자
(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우리 몸의 위장관에서 장내 미생물이 줄기세포의 휴지기와 증식, 분화를 조절하며 조직 재생과 질병 위험을 좌우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대장에 국한됐던 기존 연구를 넘어, 위와 소장, 대장을 아우르는 위장관 전체에서 미생물과 줄기세포 간 상호작용 메커니즘이 체계적으로 정리된 셈이다.
연세의료원은 남기택 연세대 의과대학 의생명과학부 남기택와 정행등 한양대학교 ERICA 바이오신약융합학부 정행등 교수 연구팀이 위장관 전반에서 장내 미생물과 숙주 줄기세포가 어떻게 신호를 주고받는지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리뷰 논문을 발표했다고 31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장내 미생물이 생성하는 대사산물이 줄기세포의 운명을 결정하는 핵심 조절 인자임을 정리하고, 조직 부위별로 서로 다른 작동 원리를 제시했다.
위장관은 음식물 소화·흡수 기관인 동시에 체내 미생물의 대부분이 공생하는 생태계다. 인체에는 약 30조~100조 개의 미생물이 존재하며, 이 중 상당수가 위장관에 분포한다. 위장관 점막은 손상과 재생이 반복되는 조직으로, 이러한 항상성 유지의 중심에는 조직특이적 성체 줄기세포가 있다. 최근 연구에선 장내 미생물이 면역과 대사 조절을 넘어, 줄기세포의 행동과 조직 재생 능력에 직접 관여한다는 점이 밝혀졌다.
다만 그간 연구는 미생물이 가장 풍부한 대장에 집중돼 있었다. 강한 산성 환경으로 미생물 밀도가 낮다고 여겨졌던 위를 포함해, 위장관 전체를 하나의 연속된 축으로 바라본 통합적 분석은 부족했다. 이번 연구는 위, 소장, 대장을 모두 포함해 미생물–줄기세포 상호작용을 정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연구진은 장내 미생물이 생성하는 주요 대사산물로 단쇄지방산(SCFAs), 트립토판 유래 인돌(indoles), 숙식산(succinate), 2차 담즙산, 레티노산(retinoic acid) 등을 제시했다. 이들 물질은 줄기세포의 휴지기 유지, 증식 전환, 분화 방향을 결정하는 신호 분자로 작동한다. 같은 물질이라도 농도와 조직 환경, 반응하는 세포 유형에 따라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는 미생물 유래 부티레이트가 핵심 신호로 작동한다. 연구진은 위 점막 깊은 곳에 위치한 주세포(chief cell)가 평상시에는 소화효소 분비 세포로 기능하지만, 손상 시 예비 줄기세포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장내 공생 미생물이 생성한 부티레이트는 GPR43 수용체를 통해 이 주세포를 휴지기 상태로 유지시키고, 불필요한 증식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무균 마우스에서 주세포 증식이 과도하게 증가한 반면, 특정 미생물이 존재할 경우 이러한 증식이 억제된다는 실험 결과도 함께 정리됐다. 이는 위암의 기원 세포로 알려진 주세포의 비정상적 활성화를 미생물이 조절할 수 있다는 의미다.
소장에서는 미생물 대사산물이 줄기세포 주변 '니치'(niche) 환경을 매개로 간접 조절하는 경로가 두드러졌다. 소장 줄기세포는 파네스 세포, 간질세포, 면역세포 등과 복합적인 신호망을 형성한다. 연구에 따르면 유산균과 비피도박테리움 계열 미생물이 생성한 젖산과 단쇄지방산은 파네스 세포를 자극해 Wnt 신호를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Lgr5 양성 줄기세포의 증식과 분화를 조절한다. 또 트립토판 대사산물은 선천성 림프구(ILC3)를 자극해 IL-22 분비를 유도하고, 이 사이토카인이 줄기세포 재생을 촉진하는 경로도 제시됐다.
대장에서는 미생물 밀도가 가장 높고, 대사산물 농도 역시 크다. 정상 대장 상피세포는 부티레이트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지만, 줄기세포는 상대적으로 보호된 위치에 있어 고농도 부티레이트에 직접 노출되지 않는다. 연구진은 이를 '부티레이트 역설'로 설명했다. 정상 환경에서는 부티레이트가 장벽을 강화하고 염증을 억제하지만, 특정 조건에서는 오히려 세포 주기 정지나 노화 유사 반응을 유도해 종양 발생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동일한 대사산물이 조직 환경과 세포 상태에 따라 상반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뜻이다.
연구는 미생물–줄기세포 상호작용이 암 발생과도 연결된다는 점을 정리했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는 위 점막 줄기세포에 직접 작용해 증식을 촉진하고, 특정 병원성 균이나 대사산물은 줄기세포의 유전체 안정성을 해쳐 종양 발생 위험을 높일 수 있다. 반대로 일부 공생균은 줄기세포 과증식을 억제하거나 손상 후 재생을 돕는 보호적 역할을 수행한다. 연구진은 이러한 양면성이 미생물 기반 치료 전략을 설계할 때 핵심 고려 요소라고 밝혔다.
이번 논문은 장내 미생물이 줄기세포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를 '미생물→대사산물→니치 환경→줄기세포'라는 연쇄 구조로 제시했다. 단일 균종이나 단일 물질이 아니라, 미생물 군집과 대사 환경 전체가 줄기세포 행동을 결정한다는 관점이다. 또한 위장관 부위별로 미생물 구성과 줄기세포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치료 전략 역시 부위 특이적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기택 교수는 "이번 연구는 위장관 전체를 관통하는 미생물–줄기세포 상호작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첫 시도 중 하나"라며 "상대적으로 연구가 적었던 위 점막에서 미생물이 줄기세포의 휴지기와 재생을 조절한다는 점을 정리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생물 불균형과 대사산물 신호 이상이 위암·대장암 등 소화기암의 발생과 연결될 수 있는 구조를 제시함으로써, 향후 미생물 기반 점막 재생 치료나 암 줄기세포 표적 전략의 이론적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다만 대부분의 기전 연구가 동물 모델이나 오가노이드 실험에 기반해 있으며, 개인별 미생물 구성 차이와 식이·환경 요인이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한계도 함께 언급했다. 향후에는 무균동물 모델, 단일세포 분석, 미생물–오가노이드 공배양 등 정밀한 접근을 통해 인과 관계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장내 미생물 학회지(Gut Microbes) 12월 호에 게재됐다.
rnkim@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