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수급, '숫자' 보다 '전제'가 중요했다…막판까지 계산법 논쟁
의사 근무일수·임상 이탈률·AI·은퇴시점 등 변수 채택두고 '격론'
추계위 "코로나, 의정갈등 '비정상적 상황' 논의…기존 연구 인용 안해"
- 김규빈 기자
(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가 중장기 의사 수급 전망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수요·공급 계산에 적용할 변수와 모형을 두고 막판까지 조정을 이어갔다. 위원회는 특정 모형이나 가정을 '정답'으로 확정하기보다, 예측 오차와 불확실성을 고려해 복수의 접근을 병행하는 방식을 택했다.
김태현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 위원장(한국보건경제정책학회 회장)은 30일 오후 열린 브리핑에서 "여러 모형을 놓고 검토했지만, 예측 오차가 상대적으로 큰 모형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며 "최종 결과는 하나의 모형을 고집하기보다 검증을 거친 접근만을 남기는 방식으로 도출했다"고 말했다.
회의 과정에서 위원들이 끝까지 의견을 좁히지 못한 지점은 수요와 공급을 계산하는 핵심 변수들이었다. 그간 열린 위원회에서는 의료 이용 증가 추세를 어디까지 미래로 연장할 것인지, 요양병원과 장기입원 구조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의사의 은퇴 시점과 근무일수를 어떤 기준으로 설정할 것인지 등을 두고 격론이 오가기도 했다.
이는 의사 수급 추계에서 변수 설정은 단순한 계산 방식의 차이가 아니라, 의사 부족 규모와 정책 방향을 직접적으로 바꾸는 기준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즉, 같은 데이터라도 어떤 변수를 기본 가정으로 두느냐에 따라 '부족'과 '균형', 혹은 '과잉'이라는 정반대의 결론이 나올 수 있다.
추계위 논의의 출발점은 의사 수요를 어떻게 계산할 것인가였다. 그간 위원회는 의료 이용 증가 추세를 통계적으로 연장하는 방식과, 인구 구조 변화를 중심에 두는 방식을 병행 검토해 왔다. 의료 이용 증가 추세를 반영하는 ARIMA 기반 모형은 과거 의료 이용이 얼마나 빠르게 늘어왔는지를 토대로, 그 증가 속도가 앞으로도 이어진다고 가정해 미래 수요를 예측하는 방식이다. 반면 조성법 기반 모형은 과거 증가율보다 현재 인구의 연령·성별 구조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를 기준으로 의료 수요를 계산한다.
ARIMA 모형을 두고는 의료 이용이 빠르게 늘어온 과거 구간이 미래에도 그대로 반복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요양병원 증가, 고령층 입원일수 급증 등 특정 시기의 정책·제도 변화가 과거 데이터에 포함돼 있어, 이를 장기 추계에 그대로 적용할 경우 수요가 과도하게 확대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단기 예측에서는 ARIMA가 비교적 안정적인 결과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이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도 무리라는 의견도 나왔다.
조성법을 둘러싸고는 인구 구조 변화가 의료 수요에 미치는 영향을 명확히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장기 추계에 적합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다만 조성법 역시 의료 이용 행태의 변화나 제도 개편 효과를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지적됐다. 이 때문에 추계위 내부에서는 두 방식을 병행해 비교하고, 특정 하나를 '정답 모형'으로 채택하지 않는 방향으로 논의가 정리됐다. 일부 위원들은 조성법을 기본 틀로 삼되, ARIMA를 단기 추세 검증용 보조 모형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의료 이용 증가를 어디까지 미래로 연장할 것인지를 두고도 논쟁이 이어졌다. 의료 이용은 고령화와 수가 구조로 인해 구조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과, 일정 수준에서 포화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는 의견이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증가 속도를 그대로 적용할 경우 2040년 이후 의료 이용이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입원일수를 수요 추계에 어떻게 반영할지도 핵심 쟁점이었다. 요양병원은 장기 입원이 많아 입원일수가 급격히 늘어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를 급성기 병원과 동일하게 반영할 경우 의사 수요가 과대 추정될 수 있다는 지적과, 고령 환자의 실제 진료 부담을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충돌했다. 이에 따라 추계위는 병원 종별 진료 구조 차이를 별도 가중치로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해 왔다.
김 위원장은 "중장기 수급 추계는 미래 의료 이용 행태와 기술 변화를 완전하게 예측할 수 없다는 한계를 전제로 한다"며 "하나의 모형에 모든 변수를 억지로 집어넣기보다는, 현재 시점에서 검증 가능한 방법론을 중심으로 정리하는 것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공급 추계에서는 은퇴 연령을 어떻게 설정할지가 가장 큰 쟁점으로 떠올랐다. 기존처럼 65세·70세·75세 등 특정 은퇴 시점을 일괄 가정할 경우 현실과 괴리가 크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최근 60대 이후에도 임상 활동을 지속하는 의사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연령별 유입·유출 데이터를 기반으로 활동률을 계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사 실제 근무일수 역시 공급 규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논의됐다. 추계위 관계자는 "평균 근무일수는 약 289일 수준"이라며 "그러나 전일제 비중 감소와 파트타임 근무 확산, 여성 의사의 근로 형태 변화 등을 고려할 때 이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두고 격론이 오갔다"고 밝혔다. 반면 또 다른 위원은 "근무일수를 265일이나 245일로 낮출 경우 같은 인원이라도 실제 공급량은 크게 줄어든다"며 "시나리오별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임상 이탈률을 어디까지 반영할지를 두고도 의견이 갈렸다. 면허를 보유한 의사 가운데 산업계·연구직·행정 분야로 이동하거나 임상을 떠나는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보다 높은 이탈률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과, 관측된 범위를 넘는 상향 조정은 근거가 부족하다는 의견이 오갔다.
AI에 따른 의사 생산성 변화는 수요·공급 전반을 가르는 가장 민감한 변수였다. 일부 위원은 AI를 도입함에 따라 의사 1인당 진료량을 크게 늘릴 수 있다고 봤지만, 다른 위원들은 국내 의료 현장에서 그 효과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기본 모형에 반영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진료지원인력(PA)과 전문의 보조인력(SA)을 어떻게 반영할지 여부도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PA는 주로 전공의 업무를 대체하는 방향으로 작동해 왔다는 점에서, 이를 의사 전체의 생산성 향상으로 단순 반영하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도 있었다. 의사 집단을 전공의와 전문의로 나눠 각각 다른 생산성을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코로나19와 최근 의정 갈등도 추계에 새로 반영됐다. 추계위 간사인 신정우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 선임연구위원은 "코로나와 의정 갈등이라는 비정상적 상황을 어떻게 반영할지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다"며 "추계에 지난해까지 최신 의료 이용 자료를 포함해 분석을 수행했지만, 코로나 기간과 의정 갈등 시기를 별도 '더미 변수'로 처리해 배제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또 "해당 기간을 제외할 경우 오히려 모형 적합도가 떨어진다는 기술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쟁점이 누적되면서 추계위 내부에서는 단일한 '의사 부족 숫자'를 제시하기보다, 수요와 공급을 각각 여러 가정으로 계산한 결과의 범위를 정책 판단 자료로 제공하자는 방향에 공감대가 형성됐다.
다만 추계위는 지난 정부에서 활용된 국책 연구기관의 추계 결과와의 관계도 분명히 선을 그었다. 추계위는 KDI와 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 등 선행 연구에서 사용한 모형과 변수는 검토했지만, 해당 연구에서 제시된 '의사 부족 규모 숫자'는 이번 추계에 직접 인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신정우 센터장은 "선행 연구들은 모형과 접근 방식을 검토하는 참고 자료로 활용했다"며 "다만 기존 연구에서 나온 수치를 그대로 인용하거나 그 결과에 의존해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다"고 강조했다.
rn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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