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대자보 철거, 표현의 자유 침해"…인권위, 시정 권고

"건전한 의견표명·자치활동 과도하게 제한"
인권위, 관련 규정 개정 및 대자보 공간 마련 권고

국가인권위원회 전경

(서울=뉴스1) 권준언 기자 = 대학 내 대자보 게시를 학교의 사전 승인 대상으로 삼거나 미허가를 이유로 철거하는 것은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 것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판단이 나왔다.

29일 인권위는 이달 3일과 4일 각각 A 대학과 B 대학 총장에게 학내 대자보 철거 및 게시 제한 규정과 관련해 시정조치를 권고했다고 밝혔다.

앞서 A 대학 재학생인 진정인은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8주기 추모' 포스터를 교내 게시판에 부착하고자 학교 측에 승인을 신청했으나 거부당했다. 학교는 해당 포스터 내용이 정치·종교·성 관련 사안으로 면학 분위기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며 자체 규정에 따라 승인을 불허했고, 진정인은 이 조치가 부당하다며 지난해 5월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A 대학은 인권위에 "면학 분위기를 해치는 요소가 없는 게시물만 학내 게시판 부착을 승인하고 있으며, 승인되지 않은 게시물은 확인 즉시 철거하고 있다"며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 포스터는 성 관련 내용으로 논쟁의 여지가 다분해 규정에 따라 학생처에서 승인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B 대학 재학생인 진정인은 비상계엄 사태를 비판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학교 캠퍼스 내 3개 건물에 부착했으나 학교 측이 내부 규정을 근거로 이를 철거했다. 진정인은 지난해 12월 인권위에 B 대학의 행위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지난해 12월 진정을 제기했다.

B 대학은 인권위에 "학생의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고 있으나, 미허가·미지정 장소에 게시된 게시물과 미관상 교육환경을 해할 수 있는 게시물은 예고기간을 거쳐 철거하고 있다"며 "진정인이 게시한 대자보도 교내 규칙과 시설물 관리의 일환으로 철거할 필요가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권위 아동권리위원회는 두 대학의 조치가 학생들의 정치적·사회적 의견표명을 과도하게 제한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위원회는 "두 사례 모두 학생들이 정치·사회 현안에 대한 의견을 표현하기 위해 대자보를 게시했음에도 대학이 이를 철거함으로써 건전한 의견표명과 자치활동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결과가 초래됐다"며 "특히 내부 규정에 게시물 사전 허가와 학생의 사회·정치적 활동에 대한 검열과 다를 바 없는 내용이 포함돼 대학 내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이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두 대학 총장에게 학생들이 사전 승인 없이 자유롭게 의사를 개진할 수 있는 게시 공간을 마련하고, 관련 규정을 개정해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가 과도하게 제한되지 않도록 조치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e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