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해봐야지" 78세 만학도 수험생의 수능 각오…손주·며느리도 응원

일성여중고 고령학생 60명 수능 치러…"잠도 잘 오지 않아"
수능 이후 계획 묻자 "하늘이 부를 때까지 공부하고 싶어"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3일 오전 서울시교육청 12지구 제22시험장인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사범대학부속여자고등학교에서 일성여자중고등학교 최고령 수험생 서해숙(78) 씨가 학우들의 응원을 받으며 시험장으로 향하고 있다. 2025.11.13/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서울=뉴스1) 한수현 기자 = "택시가 안 잡혀 늦을까 봐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어요. 아무리 해도 안 잡히길래 112에 전화해 경찰차를 타고 왔어요."

13일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 홍익대부속여자고등학교 정문에는 기존 수험생과는 다른 모습의 수험생들이 몇 명씩 무리를 지어 모여들었다. 어린 시절 개인 사정으로 인해 제때 학업을 끝맺지 못한 '여성 만학도'들이다.

중·고교 과정을 공부하는 2년제 학력 인정 평생학교인 일성여자중고등학교 재학생 중에는 60명이 이날 수능을 치른다.

오전 7시 50분쯤 수험장에 도착한 75세 늦깎이 수험생 김칠선 씨는 "아현동에서부터 왔는데 지하철로는 갈아타야 하고 헤맬 것 같아 도저히 안 되겠고, 택시가 안 잡혀 112에 전화해 수험생이라고 하니 와줬다"고 말했다.

김 씨는 "수험표를 꺼내놓고 있으니 경찰관이 한 번 더 보시더라"라며 "늦을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잘 도착했다"고 했다.

이어 "손주가 4명인데 할머니 응원한다고 난리가 났었다"며 "며느리들도 잘 보라고 응원해 줬다"고 밝혔다.

2남 3녀 중 장녀로 태어난 김 씨는 어린 시절 가난을 이유로 국민학교(현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됐다.

김 씨는 "국어국문학과 진학을 희망하고 있다"며 "늙어서도 힘이 없어서도 글은 계속 쓸 수 있으니 평생 공부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날 수험장 주변에는 일성여중고 후배들의 응원 열기도 이어졌다. 후배들은 '엄마도 대학 간다', '여보 화이팅', '술술 풀려라'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수험생 선배들을 응원했다. 후배의 "만점 받고 오세요"라는 응원에 한 수험생은 "파이팅"이라며 주먹을 쥐어 보였다.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3일 오전 서울시교육청 12지구 제22시험장인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사범대학부속여자고등학교에서 일성여자중고등학교 수험생들이 시험장으로 향하고 있다. 2025.11.13/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이날 오전 7시도 되기 전인 오전 6시 50분쯤 수험장에 도착한 엄 모 씨(66)는 "어제 일찍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잘 오지 않았다"며 "설레는 마음과 걱정되는 마음인데 잘 치르고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성여중고 수험생 중 최고령인 서해숙 씨(78)는 "경기 고양시에서부터 와서 1시간 넘게 걸려 아침 4시에 일어났다"며 "오늘 점심 도시락으로는 김밥을 가져왔다"고 했다.

서 씨는 "공부 시작할 때 '나도 해봐야지'라는 굳은 의지를 각오한 만큼 잘 해내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들을 응원하러 나온 일성여중고 고등학교 3학년 담임 교사들은 재차 "고사장에서 휴대전화 전원을 끄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며 "시험 중 허리가 아파도 일어나시거나 하는 것도 안 된다"고 당부했다.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3일 오전 서울시교육청 12지구 제22시험장인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사범대학부속여자고등학교에서 일성여자중고등학교 수험생들이 학우들의 응원을 받으며 시험장으로 향하고 있다. 2025.11.13/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수험생 김경란 씨(65)는 "수원에서부터 오느라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났다"며 "4년 학교 다닐 때도 이른 아침부터 나왔던 만큼, 일어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녀들의 응원을 받았는지 묻자 김 씨는 "데려다준다고 아침부터 고생할까 봐 수능 보는 것을 밝히지 않았다"며 미소를 지었다.

사회복지학과와 심리학과 진학을 희망한다는 김 씨는 "가능하다면 계속 공부하고, 또 도울 수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며 "하늘이 부를 때까지 공부하고 싶다"고 밝혔다.

고사장에 입실했다가 정문에 다시 나온 수험생도 있었다. 김순자 씨(73)는 "(살펴보려고 가져온) 모의고사 시험지를 흘리고 갔다"며 "잘 치고 오겠다"고 말했다.

입실 시간이 임박하자 수험생들은 응원을 빠르게 받고 정문으로 들어갔다. 70대 이 모 씨는 "감사함으로 임하겠다"고 말하며 응원하는 후배에게는 "화이팅"이라며 크게 외쳤다.

shhan@news1.kr